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김미옥 작가는 너무나도 가난한 환경에서
독서를 통해 자존감을 지키고
독서를 통해 고단하고 힘든 삶을 긍정정적이고 당당하게 살아낸 사람이다.
활자 중독자, 1년에 800권 정도의 책을 읽는 사람이란다.
그 집중력과 이해력이 대단하다.
[미오기전]은 자전적 에세이,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길지 않은 독서감상평이다.
나는 sns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너무나 좋은데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책들'을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미오기전]
김미옥 작가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공무원 생활을 30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친정 빚을 다 청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싱크대 앞에서 밥을 하며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으로는 지도 위에 부동산 투자 지역을 표시했다고 한다.
공무원도,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것도 다 내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과자 공장으로 가야만 했던 어린 시절.
엄마는 막내딸에게 오빠들 뒷바라지를 하라며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게다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수양딸로 삼아 대학까지 공부시키겠다고 엄마에게 설득했지만 엄마는 그녀를 공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이후 엄마와 오빠들은 계속 그녀의 업으로 남는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들이 자세히 다뤄지지는 않지만, 여러 에피소드에서 잠깐씩 드러나는 부분을 보면 엄마와 가족들에게 미움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진한 애정이 드러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16살에 집에서 나와 스스로 '평범함의 기준'에 이르기 위해 온갖 힘들고 서글픈 시간들을 보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끊임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고생스러웠던 시절을 이겨낸 감동적인 생애와 그 의지, 그것들이 가능하게 한 것이 독서의 힘이라는 데 집중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더라도 책을 읽으면 당당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고
더 나가서 그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물론 책은 그런 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지는 않다.
독서의 힘은 누구에게나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녀가 독서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지식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면 티가 나고 갈라치기가 되고 사회에서 소외된다'라고 말하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길러주는 매개가 바로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김미옥 작가는 명석했고 집중력이 뛰어났으며 남다른 의지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명석한 두뇌와 집중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으니 그 내용을 소화하고 저장한 내용도 어마어마하다.
모든 분야에서 두루 박식하고 통찰력도 있다.
음악을 듣는 귀, 그림을 보는 눈도 갖게 되었다.
독서를 통한 지식으로 더 많고 깊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압박으로 작동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가난이나 소외, 차별의 문제가 독서의 힘으로 극복되는 것일까.
작가는 독서의 힘으로 이겨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책머리에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지만 어쩐지 나는 더 아플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절 책을 읽으며 자존감을 지키려 했던, 결국은 그렇게 되었던 작가의 삶이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따뜻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의 삶에서도 스스로 누추해지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 중 하나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작가가 이 책에서 소개한 많은 책 중에서 읽어 보고 싶은 책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찾아본 책도 있었다.
그중에서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오'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존 러스킨)이 기억에 남는다.
성경에 나오는 '포도밭주인'과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성경에는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속 시원히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따지고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한다 해도 그 대답이 신통치 않았던 적이 더 많았다.
어쨌든 성경에 나오는 '포도밭주인'과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의 계산법에 대해 정말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준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도밭주인은 아침부터 일한 자와 오후 늦게 와서 일한 자의 품삯을 똑같이 지불한다.
세상의 셈법으로 이해될 수 없는 내용이다.
포도밭주인의 셈법은 동정과 연민,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다. 정당한 품삯은 모든 이가 존엄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세속의 경제 논리를 넘어선다.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상반된 이 불평등한 셈법은 비판을 받았다.
'돌아온 탕자'도 마찬가지다.
유산을 미리 챙긴 작은 아들은 방탕하게 살다 거지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며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한다.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큰아들이 돌아와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아버지를 섬기며 열심히 살았던 큰아들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준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작은 아들에게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 것이다.
세상의 셈법으로 볼 때 이 계산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 계산이 엉터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의 계산법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실직하거나 다치거나 역병이 돌거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재앙과 맞닥뜨렸을 때 어떤 성실한 인간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정당한 품삯은 사회의 그늘에 있는 인간일지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정함'을 의미한다.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효율성만 앞세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했다고 한다.
연민과 도덕이 결여된 자본주의의 해악이 얼마나 큰지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나는 존 러스킨의 책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셈법에 대해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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