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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먹는 봄

by jebi1009 2025. 4. 18.

아차 하는 순간 엄나무 잎이 폈다.

엄나무순을 따서 먹으려고 했는데, 며칠 돌풍이 불어 집에 있었더니 엄나무까지 살피지 못했다.

봄이면 엄나무순 살짝 데쳐 소주 한잔 하는 맛이 있는데 엊그제 뒷창문으로 보니 엄나무 잎이 돋았다.

분명 푸른 기미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틀 사이에 세상은 연두연두하게 변했다.

무채색의 나무와 들판이었는데 파릇파릇 연두연두...

밤나무 밑 비탈에도 머위가 지천으로 나왔다.

얼마 전까지도 어린 머위들만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하루 사이에 세상이 휙휙 바뀐다.

한 뼘씩 크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잎사귀가 짙어지고 있다.

언제 이렇게 연두 세상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머위를 잘랐다.

조금만 잘라먹으려고 했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한 바구니 잘랐다.

엄마만 생각하면 반칙이지...

시어머니도 생각났다.

머위 한 바구니를 더 잘랐다.

보내는 김에 다른 것도 보내야지...

지천으로 돋아난 돌미나리를 한 바구니 잘랐다.

엄나무 근처로 가서 아직 잎이 다 피지 않은 엄나무 순도 땄다.

같은 자리에 나란히 있는 엄나무인데 순이 나고 잎이 피는 것은 다 제각각이다.

사위도 주지 않는다는(나는 사위가 생기면 반드시 사위 줄 것이다.ㅎㅎ) 첫 부추도 끊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봄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서울로 보냈다.

 

 



오랜만에 우리도 엄나무순과 머위를 살짝 데쳐서 향긋한 봄냄새를 맡았다.

물론 소주 한잔이 빠질 수는 없다.

나는 술을 빼놓고 음식을 생각할 수는 없다.

새우깡 하나를 먹더라도 어떤 술과 먹을지 결정해야 한다. ㅋㅋㅋ

이렇게 한 번씩 봄은 먹어 줘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도 연두연두 푸릇푸릇...ㅎㅎㅎㅎ

 

노무현 술잔에 술을 마시면 꼭 과음하게 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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