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공항을 출발한 지 32시간 만에 간청재 우리 집에 도착했다.
환승 시간 포함하여 20시간 비행하고 인천공항에서 동서울 터미널로,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4시간 만에 마천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우리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았다면 7시 막차를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후 5시 넘어 도착했으니 7시 차는 포기하고 하룻밤 지내고 내려갈까 어쩔까 공항에서 고민했다.
힘든 일은 빨리 끝내는 것이 낫다.
조금 더 힘들더라고 이것을 내일까지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12시 심야 버스를 타기로 했다.
금요일인데도 다행스럽게 표가 있었다.
지리산행 금요일 12시 심야 버스는 새벽에 내려 산에 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대부분 매진이다.
처음으로 12시 심야 버스를 타봤다.
새벽 4시 넘어 도착하여 먼동이 트는 것을 보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착실히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다.
스페인 쪽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그리 의욕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유시민의 '도시기행 스페인 편'이 출간되면 읽고 가야지.. 했었는데 책 출간은 자꾸 늦어졌다.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그것을 핑계 삼아 일을 추진하고 싶지 않았다.
먼 여행을 생각하면 설렘보다 귀찮음이 더 먼저 찾아왔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 들어가니 뭐 하나 하려면 설렘보다 귀찮음이 먼저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미루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은 넓으니 일단 그 옆에 있는 포르투갈부터 시작해서 시동을 걸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빨간 옷 입은 여인의 '포르투'라는 발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2018년이 마지막 여행이었으니 여권부터 가방까지 가물가물하고 감도 없었다.
이왕 말 꺼낸 김에 흐지부지 만들기는 싫고 내키지 않았지만 비행기표를 샀다.
비행기표를 사면 게임 끝이다.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 비행기에서 꾸겨져 있다가 낯선 포르투갈에 내렸다.
다녀오길 잘했다.
완벽한 여행, 가성비 좋은 여행, 운이 좋은 여행,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런 여행을 하지 않기 위해 떠났다.
꼭 가야 하고, 꼭 봐야 하고, 꼭 먹어야 하는 것들을 정하지 않았다.
어떤 곳도 미리 예매하지 않았다.
어떤 곳이든 미리 티켓을 구매한다고 해도 줄은 서야 한다.
가 봐서 줄이 너무 길면 포기했고 적당히 기다릴 만한 줄이면 줄 서면서 온라인으로 티켓을 샀다.
떠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여행자 블로거들이 말하는 곳을 대충 저장하고 숙소에서 그날그날 행선지를 정했다.
리스본 교통수단과 유명 관광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리스보아 카드'도 만들지 않았다.
그 카드를 만들면 본전 뽑기 위해 마구 돌아다녀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그냥 싸돌아 다니기 좋은 곳이다.
숙소를 잘 잡으면 웬만한 곳은 그냥 걸어 다닐 수 있고 조금 멀면 택시가 편하다.
온라인으로 부르기 쉽고 택시비도 정말 저렴하다.
경험 삼아 버스와 트렘도 한 번씩 타고 푸니쿨라도 탔다.
포르투갈은 모든 도시가 평지보다는 언덕이 많다.
그래서 전망대도 많고 엘리베이터 같은 올라가는 수단이 많다. 물론 돈을 내야만 탈 수 있다.
적당히 타고 적당히 걸었다.
걷다가 힘들면 까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떠나기 전에는 쫄보처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포르투갈은 만만하고 친근했다.
딸아이가 떠나기 전에 말했다.
'둘이 얼마나 싸울까...싸우지 말고 잘 다녀와'
늙어 기운 빠져 그런지 서로 측은해서 그런지 싸우지 않고 잘 다녀왔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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