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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햅쌀과 사과 2014/09/25

by jebi1009 2018. 12. 26.






주문했던 쌀과 사과가 왔다.
가을 냄새가 팍팍 풍긴다.
전에는 햅쌀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 이제는 왜그런지는 몰라도 '햅쌀'하니까 뿌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전에도 극찬했었던 홍옥!!
홍옥을 보면서 어쩌면 하나님은 이렇게 예쁜 과일을 만드셨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백설공주도 이 자태에 홀랑 넘어가 독사과를 덥석 먹지 않았을까..
백설공주가 먹었던 사과가 왠지 부사나 아오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
이제 고구마, 밤, 호두, 감....이렇게 맛난 것들이 줄줄줄 나올테니 요놈들 먹어줄 생각에 기분이 벌써 좋다.ㅎㅎ

엊그제 우연히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대충 보니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인 듯....
시작 단계라서 어떤 이야기에 중심흐름을 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노론이 꽉 잡고 있는, 노론의 정치판이라는 느낌을 잘 전달해 주었다.
노론이 세운 왕이 노론 정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예나 지금이나 노론(새누리)은 역쉬 쎄다!
성깔은 있으나 약점잡히고 컴플랙스가 있는 영조는 장성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나 마지막까지 손끝에서 권력을 놓지 못한다. 아니 나눌 마음조차 없다.
사도세자의 마누라 역시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차가운 여인네로 등장한다.
사사건건 사도세자의 행동을 간섭하는 마누라에게 사도세자는 말한다.
'나를 걱정한다 하는데 진정 그대가 걱정하는 것이 나요, 아니면 내 용포요?'
장인 역시 처음에는 선위파동에 골병드는 사위를 위해 돌에 머리를 찧으며 사위의 체력 낭비를 막아보려 하지만
노론의 영수가 한마디 날린다.
'세자의 장인은 누가 만들어 주었지?'
깨갱~~
결국 아버지도, 장인도, 마누라도 사도세자를 버릴 것이라는 분위기는 초반에 감지된다.
사도세자...
역시 이번에도 영조의 선위파동으로 대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한다.
서너살 아기였을 때 자고 있던 동궁을 동궁상궁이 급히 깨운다.
잡이 덜 깬 아기를 상궁은 냅다 업고 달린다.
자다 일어나 대전 앞에 꿇어 앉은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운다.
옆에서 상궁이 속삭인다.
'마마 더 크게 우십시오...더 크게...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동궁의 성장 과정은 석고대죄를 위해 밤이건 낮이건 눈이 내리건 비가 내리건
상궁의 등에 업히거나 손을 잡히거나 냅다 뛰어와 대전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이다.
현재 장성한 지금도 선위파동으로 또 대전 앞에서 울부짖고 있다.

나는 옛날에 학교에서 국사를 배울 때 영정조를 묶어서 이야기하며 아주 훌륭한 왕이라 배웠다.
오히려 정조 보다 영조의 업적과 훌륭함을 더 강조하는 듯 했다.
정조는 그저 공부 잘 하는 왕 정도?
내가 뭐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학교 졸업하고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런 찌질이가 없다.
누구? 영조말이다.
시험문제에도 많이 나왔던 탕평책...
탕평은 개뿔...결국 노론의 손에서 놓여나지도 못해 아들까지 죽이지 않았는가...

딸내미가 사과를 먹다가 말한다.
'엄마 난 조선 왕 중에서 영조가 제일 찌질한 것 같아'
'왜? 인조나 선조도 있잖아'
'그야 그렇지...그래도 인조나 선조는  대놓고 찌질하니까 좀 짠한 것도 있어
그런데 영조는 아닌 척하면서 찌질한 짓을 하니까 더 밉상이야..그리고 오래 살면서 젊은 왕비 얻고..
세자들은 다 불쌍해 소현세자도 그렇고...'

얼마전 한국사 수행평가로 소현세자에 대해 역사신문을 만들었던 딸아이가 그런다.
결국 나이 먹은 세자들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아버지 아니냐고..
영조가 오래 산 것도 찌질함에 한 몫을 했다.

여지껏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대부분 비슷했다.
영조는 훌륭한 아버지, 사도세자는 미친 아들, 혜경궁홍씨는 남편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는 비련의 여인..
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런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도 전혀 시각이 바뀌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지금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살짝 기대된다.
한석규가 영조로 나오는데 얼마전 드라마에서 세종으로 나왔던 터라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걸리적거린다.

드라마 속에서 노론들 작당하는 모습이나 소론들 찌질대는 모습이나 어찌나 지금이랑 비슷한지....
딸아이와 사과 먹으면서 오랜만에 드라마도 보고..
끝나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살짝 잔소리쪽으로 빠질 무렵
딸이 나에게 한방 먹였다.
'엄마 자꾸 그러면 나 확 일베랑 사귄다'
헉~
요 근래 내가 들어본 협박 중에 제일 큰 한방이었다.
딸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쩝....
나도 딸에게 날릴 큰 한방을 새롭게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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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퐁 2014/09/27 03:22

    뭐 이에는 이... 너 자꾸 그러면 나 확 일베해 버린다...?
    옛날 왕들이 그렇게 큰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서 일찍 죽은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영조는 그리 오래 산 거 보면 강심장?
    원래 남 괴롭히는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보다 오래 살죠 (일반화의 오류 경고 - 괴롭히려고 애쓰실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 제비 2014/10/02 14:41

      알퐁님도 곧 그 귀여운 따님으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날이 멀지 않았어요 ㅎㅎ

  2. 무등산 2014/09/28 11:06

    티비 드라마는 구린 듯 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가 있어서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늘 한 드라마에 꽂혀 또 보게 될 것 같아요.
    주연 배우인 감우성씨 연기도 좋지만 사랑 이야기인데 뻔해 보이지 않아서 끌리네요.

    참 제비님도 유시민씨 좋아하시죠? 저는 유시민씨 오랜 팬인데
    며칠전에 저희 동네에서 강연하셨거든요.
    최근에 산 책 못 갖고 가서 싸인은 못 받았지만
    질문시간에 제법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는데 저를 콕 지목하시고 질문의 기회를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제비님, 따님이 제 딸보다 아직 어려서인지 한방치곤 귀엽고 약하네요.
    제 딸은 통보없이 결과로 한방을 먹여요.

    • 제비 2014/10/02 14:43

      우와~ 유시민씨하고 직접 대화를? 부러버라...

      제 딸도 곧 언젠가는 큰 놈으로 뒤통수를 한 방 먹일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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