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 permanent : 머리를 전열기나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하게 하거나 곧게 펴 그런 모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한 머리.
나도 몰랐는데 '파마'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말이다.
더 재밌는 것은 비슷한 말이'전발'이라는 것. ㅎㅎㅎ
비슷한 말 電髮 : 전기로 머리를 지지는 일. 또는 지진 머리.
20년 넘게 관계를 맺어 온 미용사와 이별하고 간청재로 내려온 후 적당한 미용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며칠 전 과감하게 읍내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했다.
미용실이라는 것이 그저 동네 편의점이나 김밥집처럼 아무 데나 들어가기가 참 쉽지 않은 곳이다.
산골에 살지만 그래도 머리는 어떻게 해야만 한다.
앞머리는 길어지면 대충 혼자서 자르지만 뒷머리까지는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파마 없이 내버려 두는 것도 참 힘들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뭐 정 안 되면 쫑쫑 땋고 있으면 되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아직 사회와의 완전한 단절은 아니니까 최소한의 비주얼 관리를 완전히 내팽개칠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일년에 한 번 정도 진주에 나갈 때 대형 마트에 있는 미용실을 이용했었다.
그래도 많이 들어 본 브랜드 미용실이고 분위기도 낯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왕 최소한의 관리 차원에서 하는 파마니까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불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가격이 높았다. 그래서 회원 할인과 생일 쿠폰 적용가를 이용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생일이 있는 달에 가서 파마를 했었다.
그런데 머리를 한지 7,8개월쯤 되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고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추석 때 서울에 가면 엄마나 언니는 너 머리 좀 하라며 항상 질타를....
그럼 나는 생일 때 파마할 거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ㅎㅎ 내 생일은 11월이다.
오죽했으면 형부가 미장원 가라며 용돈을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었다.
올해도 11월까지 버티려고 했었는데 지난번 파마를 너무 약하게 말아줘서(내가 그렇게 짱짱하게 말아달라고 했건만) 컬이 금방 풀려버린 데다가 머리도 더 빨리 자란 것 같고 날씨도 덥고 습하니 온 몸에 머리가 들러붙는 것만 같았다.
머리숱도 많아서 긴 머리를 묶고 있어도 늘어지고 감긴다.
그래. 결심했어!
읍내 미용실이 적어도 20개는 넘는 것 같으니(작은 읍내에 미용실이 정말정말 많다.) 한 번 도전해 보자.
예전에 이웃 둥이엄마에게 들었던 미용실로 갔다.
용가리도 머리를 잘라야 했기 때문에 둘이 함께 갔다.
일단 가격을 물어보고 시작했다.
미용사는 의자에 앉자마자 가격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ㅎㅎ
가격은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빠글빠글하게, 오래 가게 파마해 달라고 했다.
머리 뿌리까지 말면 머리가 부 해 보인다며 말렸지만 그래도 그렇게 다 말아달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10년 간 한 머리 중에 제일 빠글거리게 나왔다.
옛날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난 마음에 든다.
몸에 들러붙어 있던 머리카락들이 이제 공중부양을 조금 하는 것 같다. ㅋ
함께 가서 머리를 자른 용가리와 미용실을 나와서 나눈 말, '미용사 언니 정말 대단하다!'
정말 멀티테스킹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 외에도 손님들이 계속 왔는데 혼자서 모든 작업을 다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손님들에게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듯 내 머리를 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시키고 안부 묻고,
그 와중에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보면서 또 코멘트하고, 날씨도 살피고 전화도 받고... 게다가 가게 밖 지나가는 사람까지 살펴 인사를 건넨다. 우와~~~
손님 순서도 적절히 안배한다.
불쑥 들어온 할머니 손님이 빨리 가야 하니까 간단히 뒷머리만 만져달라고 하니 처음에는 기다리라고 했다가 안될 것 같으니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할머니 뒷머리를 잘라 주었다. 물론 공짜로... 단골 찬스?
내 머리 말고 재빨리 다른 할머니 염색해 주고, 그러면서 용가리 순서가 밀리니 계속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바쁜 일 없으니 괜찮다고 했다.
단지 우리는 혼이 빠진 듯 너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무슨 말을 엄청 많이 했는데 말이 빠르고 사투리도 있어 잘 알아들을 수도 없고 나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아님 다른 손님에게 하는 말인지 잘 몰라서, 말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거나 동의를 구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 같으면 최소한의 대답과 그저 웃음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신이 없었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계속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능력자!
두어 시간 미용실에 있으면서 아주 유용한 정보도 하나 건졌다.
옆자리 할머니 머리 잘라주면서 나누는 말을 들으니 무슨 벌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보건소 직원이 와서 머리를 했는데 무슨 벌레가 올해 유난히 많다고... 할머니네는 안 그러냐고...
그 벌레를 잘 들어보니 우리 집 '릴리'였다.
릴리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은 '노래기'. 검색해 보니 노래기가 맞다.
처음 우리 집에 나타났을 때 지네 새끼인 줄 알고 질겁을 했는데 아니었다.
올해 처음 보는 벌레라서(올해 벌레가 많아서 처음 보는 것들도 많다) 무슨 벌레인지 궁금했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어찌나 많이 나타나는지... 처음에는 징그럽고 질겁했는데 하두 자주 보니 좀 순해 보이는 듯도....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올해 유독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딸아이가 왔을 때 그 벌레가 여러 번 나타나자 딸아이가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고 릴리라고 부르자고 했다.
그다음부터 '아빠 릴리가 나타났어. 빨리 처리해 줘..'
자주 봐서 조금 여유가 생기자 '릴리는 어디를 저렇게 가는 것일까... 항상 어디론가 바쁘게 가네... 목적지가 있나...'이러면서 살펴보기도 했다. ㅎㅎ
노래기는 잘못 만지면 심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다행히 처리를 잘했는지 냄새를 맡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냄새까지....ㅠㅠ
역시 미용실은 정보의 바다다. 어느 떡집이 약밥을 잘한다는 정보도 들었다. ㅎㅎ
95프로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중요한 두 개는 얻어 들었으니 두어 시간 혼이 빠지면서 앉아 있었던 보람이 있다.
게다가 머리도 빠글거리게 말았고 가격도 맘에 들고 용가리 머리도 괜찮고... 이번 파마는 꽤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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