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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風茶雨酒 2013/07/11

by jebi1009 2018. 12. 25.





예술가도 아니고 고단한 육체적 노동을 업으로 삼지도 않은 내가
요즘 오락가락 하는 빗소리에 술잔을 들 때가 많다....
맛난 것 먹으며 마시는 술은 배꼽이 뒤집어지도록 먹고 마시며 헤헤거리지만
비오는 날 잘못 걸리면 저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만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일당 받으며 막노동 하는 사람들은 그날 그날 일당을 현금으로 받지 않으면 화를 낸다.
고단한 몸을 풀 수 있는 술잔을 들려면 손에 쥐어지는 현금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나야 일하는 사람들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해봤지만, 그래서 비웃음을 사겠지만
그래도 커피집 알바 했을 때 커피집 마감(뒷정리 청소 등등)하고 퇴근하면 전신이 푹 젖은 솜처럼 무겁다.
집에 오면 밥이고 뭐고 그냥 술이나 한 잔하고 잠들기 일수였다.
입은 깔깔하고 술 몇잔 하면 나른해지며 음식도 좀 들어간다...

한때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녁 식사가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 볶음요리 비슷한 일품요리 하나와 동네 도매점에서 대 먹는 맥주를 한 두병 마시는 것이 저녁식사다.
내가 아는 일본 사람들은 정말 맥주를 좋아한다.
동네 주류도매상에서 떨어지지 않게 맥주를 대 놓고 마시는데 대부분 기린 맥주를 많이 마신다.
아침 식사 반주로 맥주 먹어보기는 일본에서 처음이었다 ㅎㅎ

술을 마시면 점점 배가 고파지는 경향도 있다.
'운수 좋은 날'의 인력거꾼 김첨지가 비오는 날 오랜만에 찾아온 횡재에 온 몸이 땀과 비로 흠뻑 젖어 선술집에 들어가 술 마시는 장면...나는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물론 현진건도 유명한 주당이다.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저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 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들었을제 데우던 막걸리 곱빼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히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 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조지훈 선생의 수필 '술은 인정이라'에서
주도유단(酒道有段)을 말하기를...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현사(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네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음주에는 무릇 18의 계단이 있다.

부주(不酒)......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외주(畏酒)......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민주(憫酒)......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은주(隱酒)......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상주(商酒)......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색주(色酒)......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수주(睡酒)......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반주(飯酒)......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학주(學酒)......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애주(愛酒)......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酒從]
기주(嗜酒)......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탐주(耽酒)......술의 진경을 채득한 사람[酒豪]
폭주(暴酒)......주도(酒道)를 수련(修鍊)하는 사람[酒狂]
장주(長酒)......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酒仙]
석주(惜酒)......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낙주(樂酒)......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관주(觀酒)......술을 보고 즐거워 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
폐주(廢酒:열반주(涅槃酒))......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진경,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9급이니 그이하는 척주(斥酒) 반(反) 주당들이다. 애주, 기주, 탐주, 폭주는 술의 진미, 진경을 오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임운목적(任運目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道)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에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확고한 것이니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 금이 들것이요, 수행년한이 또한 기십년이 필요할 것이다(단 천재는 차한에 부재이다)..

수필에 보면
술이 취해 모르는 집에 들어가 친구 방인 줄 알고 잠들었으나 따끈하게 데운 술과 뜨거운 해장국을 대접한  노인의 이야기와 
1.4후퇴때 다른 짐은 다 팽개치고 약주 여섯병을 싸가지고와 부산까지 가는 길에 아침 저녁으로 마시는 중년신사의 이야기를 통해 멋과 인정을 이야기한다.

역시 조지훈 선생은 시에서 술까지 모든 면에서 나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배운 상춘곡 한 구절이..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으로 밧타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먹으리라

그러니 또 정철의 장진주사가 생각나네..

한盞(잔) 먹새 그려 또盞(잔) 먹새 그려
곳 것거 算(산) 노코 無盡無盡(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주근 後(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가나
流蘇寶帳(유소 보장)의  萬人(만인)이 우러 네어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白楊(백양)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제  
뉘 한 盞(잔) 먹쟈 할고.  
하믈며 무덤 우에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들 엇더리

나오는대로 주절대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시드니 마기자'의 글로 마무리한다.


온라인이프' 마기자의 시드니통신' 2011. 2. 28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new_femlet_global&category_no=177&no=18573&u_no=186&pg=4&sn=&s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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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퐁 2013/07/11 19:58

    전 관주의 경지에 이미 ㅜㅜ
    저도 우리나라에서는 맥주를 좋아했는데 이젠 우리나라 맥주, 너무 맛이 없어요.
    뉴질 맥주는 특색이 없으나 은근히 맛나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기니스가 최고!
    라스베리액(?)을 똑 떨어뜨린 기니스!

    • 제비 2013/07/17 17:11

      저는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어요^^

  2. huiya 2013/07/11 21:04

    저는 기본적으로 부주인데요.
    분위기와 같이 마시는 사람에 따라 조금 마실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요...

    • 제비 2013/07/17 17:14

      저는 척주 수준에서 꾸준히 노력하여 거의 학주의 반열까지 오른 사람도 봤답니다 ㅎㅎㅎ

  3. chippy 2013/07/12 00:38

    두부김치는 마크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요리중 하나예요. ㅎ...물론 술 안주로 먹진 않고 밥 대신으로. 이곳 사람들은 술 안주라는 개념이 없으니 술은 그냥 술인 거죠. 술은 잘 못해도 술자리는 좋아했었는데, 그럴 일이 없어진지도 13년이 넘어갑니다. 우리 집안과 내력이 술과는 안 친해요. 그래서 비사교적인 성격이 점점 굳어져 편안한 옷처럼 느껴지는 단계지요. ㅎ...그러다가 변할 수도 있으려니, 아니면 말고...합니다. 한국보다는 술을 못해도 사람 사귀는 데 문제는 덜하지요. 한국에선 술 못하면 관계 유지가 참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요.^^

    • 제비 2013/07/17 17:15

      저랑 친한 설님도 술 한 잔도 못하셔요
      그래도 저는 술 먹고 설님은 물 먹고 건배! 하면서 잘 놀아요 ㅋㅋ

  4. 美의 女神 2013/07/12 09:33

    음....저도 부주? 간에서 거부하니까요. ㅠㅠ
    그래도 가끔은 ... 맥주 한 캔정도는.

    • 제비 2013/07/17 17:16

      주변에서 많이 마셔주니 쌤쌤이네요 ~

  5. 먹방지기 2013/07/12 13:48

    조지훈 선생의 수필은 언제 읽어도 재밌네요.
    제비님과 지척에 있었으면 상당히 많은 술잔이 오고갔을 듯 합니다.
    저는 장주에서 석주로 넘어가는 단계인 듯 합니다만
    그 기간이 상당히 기네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취필이 제 글씨의 3할정도를 차지했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8할을 넘어가네요. 이젠 취필이 맨정신에 쓴 글씨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네요. ㅋㅋ

    • 제비 2013/07/17 17:21

      오~~ 상당한 경지에 이르셨네요..
      酒仙이 가장 맘에 들어요
      그러자면 수업료가 앞으로도 기백만 금이 들것이고, 수행년한이 또한 기십년이 필요할 것이네요 ㅎㅎ

  6. 무명씨 2013/07/12 20:52

    흠~~~
    저는 부주군요.
    저는 술을 잘 넘기시는 분들이 부럽답니다.

    • 제비 2013/07/17 17:24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술 마시는 친구들이랑만 놀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술 못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그래도 노는데는 문제 없던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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