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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이틀 간의 사투와 소주 2013/08/23

by jebi1009 2018. 12. 25.


       

뜻하지 않은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와 냉동실 분해 청소 때문에 이틀 연속 죽을 뻔 했다.
매일 저녁 콩국수 아니면 오이 냉국으로 버티다 폭염이 누그러진다는 뻥에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그래...달걀 말고 단백질 좀 먹자.
99.9퍼센트 잔 가시까지 제거했다는 손질 고등어가 냉동실에서 얌전히 잠자고 있어 그것을 먹기로 했다.
집에서 생선을 먹는 것은 조림이 아니고는 냄새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보통 그릴을 사용하는데 그릴 닦기가 너무 귀찮아서 나도 남들처럼 후라이팬에 구워보기로 했다.
나는 옛날부터 후라이팬에 구운 생선은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항상 직화구이 생선만 먹었다. 아빠가 싫어해서 그랬는지 아님 엄마가 싫어해서 그랬는지 어쨌든 그랬다.
고등어에 레몬즙을 뿌려놓고 물기도 잘 닦아서 후라이팬에 넣었는데 장난이 아니다....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은 채반 같이 생긴 생선구이용 뚜껑을 덮었는데도 난리다...
기름도 튀고 냄새도 ㅠㅠㅠ
고등어 굽고 후라이팬 닦고 가스렌지 정리하면서 맥주를 두캔이나 마셨다.
거기서 끝나야 했다...
근데 갑자기 가스렌지를 닦다 눈을 위로 돌렸더니 후드 망이 보였다.
뭐가 잔득 끼어 있었다. 손잡이 같은 것을 만졌더니 떨어진다.
두개를 떼어내서 다용도실로 가져가 미친듯이 닦았다.
땀이 뚝뚝....다음날 잘 말린 후드 망을 가져다 다시 장착하려는 순간, 그 주변이 또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그랬다...안돼..그냥 넘어가자..또 땀을 뺄 수는 없어...
결국 살살 닦기만 하자고 맹세했지만 또 땀 범벅이 되었다. 어제 닦아 놓은 가스렌지 위로 구정물이 뚝뚝...
가스렌지도 다시 닦았다..내가 미쳐...



그날 저녁 날도 더워 가스불 생략. 오이냉국비빔면(?)을 먹기로 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온 것인데 오이냉국에 시중에서 파는 비빔면 소스를 풀고 면은 삶아서 말아 먹는 것이다.
청량고추도 썰어 넣고 얼음 띄워 먹으면 꽤 괜찮다.
라면을 삶는 동안 시원해지라고 오이냉국을 냉동실에 잠깐 넣어 두었다.
그런데 냉동실에서 틱..하는 소리가..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치면서 냉동실 문을 열자 이게 무슨 날벼락!
아이스크림 위에 살짝 얹어 두었던 그릇이 옆으로 넘어갔다.
국물이 주루룩...두번째 칸에 넣었으니 그 밑에 서랍까지...으악!!
일단 남은 국물에 라면 면발 말아주고 나는 냉동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행주로 국물만 닦아내면 되는 줄 알았다.
닦을수록 밑에까지 점점 더 지역이 넓어진다.
결국은 냉동실 음식 꺼내고 선반도 다 빼고 서랍까지 다 뺐다.
그래서 닦았는데 서랍 걸리는 받침대(?)에서 자꾸 국물이 나온다.
닦아도 닦아도 나온다..그 틈새에 국물이 고여서 계속 나오나부다..
공구함을 가져다 드라이버로 십자 나사를 빼서 받침대 두개까지 모두 떼어냈다.
냉동실에서 분리해낸 것들이 마루에 한가득이다. 다 닦았다. 국불 방울이 튄 봉지는 다 새로 갈았다.
비빔라면 먹자던 딸은 괜히 미안해서 눈치 보인다며 안절부절...
물기까지 모두 닦아 다시 분해한 것들을 제자리에 맞추고 내용물 넣고 하니 입맛도 없다.
그릇 가질러 가기도 귀찮아 작은 빈 접시에 소주 부어 마셨다. 면발 건져 먹은 오이냉국이랑...
이틀 간의 예상치 못한 노동이 가져다 주는 것은 술이구나 ㅠㅠ
술 마시고 자면 너무 더워 안 마시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거의 매일 마시는구나..
더워서 맥주 한 잔 하다가 부어라마셔라..또 땀흘렸다고 한 잔...또 이렇게 난데없는 노동을 해서 한 잔..

접시에 부어 놓은 소주를 보니 아빠가 생각난다.
이래저래 먹는 것과 추억되는 것이 사람...
여름 가장 생각나는 것은 밥그릇에 가득 담긴 하얀 쌀밥에 젓가락으로 고추장을 떠서 살짝 밥 위에 놓고
살살 젓가락으로 비벼 한 입 드시는 거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젓가락만을 사용한다는 것.
옆에서 보면 그 색깔이나 촉감이 무지무지 맛있어 보여 한 입만 달래서 막상 먹어보면
어렸을 적에는 별 맛도 없었다..근데 지금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그리고 풋고추에 열무 물김치(우리집은 하얀 국물이 자작작한 열무김치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를 감아서
와삭 베어 드시는 것.
그러면서 냉장고에서 소주 꺼내라..하시더니 밥그릇 뚜껑에 소주를 부어 쭉....
참 소주 좋아하셨는데...
우리 아빠와 관련된 음식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아빠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켜도 손대지 않으셨다.
소박한 음식부터 고급스러운 음식까지 하여간 제대로 된 음식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 같았다.
그 덕에 나도 따라다니며 맛난 것 많이 먹었는데 그때는 다 맛있지는 않았다.(입맛이 덜 영글어서)
근데 지금 먹어보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엄마도 음식을 참 잘하시는 편이라 제철에 난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엄마가 해 주었던 갑오징어 양념구이(연탄불에 석쇠 놓고 구워주셨다)와
생멸치 조림(상추에 밥이랑 싸 먹으면 정말 맛있다)이 먹고 싶지만 이제는 먹기 힘들다.
그때는 서울에서도 어떻게 생멸치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갑오징어도 흔하게 먹었는데...

이제 주말이니 또 한 잔 해야겠구나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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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3/08/23 22:16

    드디어 내일이 상량식이라는 정보를 너도님 블로그에서 알았습니다.
    상량식, 부디, 부디, 좋은 상량식이 되시길요.

    • 제비 2013/08/29 15:14

      네..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감사..

  2. 너도바람 2013/08/24 00:38

    목욕탕에 가면 10분을 넘기지 않고 튀어나오던 항우 생각나는구먼. 때 불면 감당이 안된다고...항우의 지혜를 배워야혀.

    • 제비 2013/08/29 15:15

      ㅎㅎㅎ 내 친구도 때 나올까봐 잘 다독여주고 나온다고..

  3. chippy 2013/08/24 21:34

    생선 굽는 일이 번거로운 이유가 주변 정리 때문이죠. 에그그...고생 많이 하셨네요.
    상량식에 날이 좋았겠죠? 무사히 집이 잘 지어지기를... 축하드려요. ^^

    • 제비 2013/08/29 15:15

      상량식에는 비가 왔지만 비가 와서 좋았어요..감사..

  4. 알퐁 2013/08/25 09:44

    저도 생선 굽거나 튀기는 냄새가 싫어서 우유를 자작자작하게 붓고 오븐에 넣어 익히기도 합니다. 물론 소금 후추 뿌리구요. 그럼 비린내가 안 나요^^

    • 제비 2013/08/29 15:16

      그냥 고춧가루 넣고 지져 먹어야겠어요~

  5. 나무 2013/08/26 10:38

    사무실에서 읽다가 배꼽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요. @@
    옆사람이 무슨일이냐고... ㅋㅋ

    • 제비 2013/08/29 15:17

      나무님이 이렇게 가끔 들러주시니 넘 반가워용~

  6. 美의 女神 2013/08/28 16:02

    쉽게 기름때 빼는 세정제가 있어요. 뿌리기만 하면 묵은 때 기름때 다 빠져요.
    조금 독하지만 담엔 그걸로 쉽게 하셔요. 랜지 후드 짱 빠집니다. ^^
    상량식 포스팅 기다립니다. 궁금 ^^

    • 제비 2013/08/29 15:17

      여신님...감사드려요..먼 곳에서 찬조해 주시고..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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