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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부답

나도 그래.

by jebi1009 2024. 6. 13.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어떤 변곡점을 지나는 것 같은 그 시점에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다.

나는 힘들고 외롭고 슬펐다.

그 힘들고 외롭고 우울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항상 우울함에 쩔어 있지는 않았다.

나는 내 생활이 감사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또 다른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슬픔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랜 기간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던 지인들과 그것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간청재 산골로 내려오고 한동안은 그 지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그런데 모든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간청재의 날라리 같은 생활이 진짜 생활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또 다른 나를 알게 되었다.

나와 모든 것을 공유했다고 내가 생각한 지인들은 나의 이 감정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근원에서 올라오는 슬픔과 우울감을 그들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내가 공허할 때 그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외로울 때 그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나는 행복해. 나는 잘 지내고 있어.'

그런 그들에게 내가 징징거릴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서울 가서 만나고 오면 마음이 더 가난해졌다.

나는 더 위로받고 포근해져서 돌아오고 싶었는데 더 가난해졌다.

 

 

내가 읽던 블로그들의 글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인스타나 다른 sns로 자신들의 일상을 남긴다.

나는 그런 것도 좀 서글프다.

sns는 자랑하는 것에는 특화되어 있지만 외로움과 슬픔을 남기기에는 좀 그렇다.

'나도 그래.'

슬픔과 외로움을 남기는 글이 이제는 많이 없어졌다.

'나는 잘 살고 있어. 나는 행복해, 나는 복 받았어.'

이런 글들만이 남아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잘 살고 있고 나는 이 생활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날마다 벅찬 행복감도 느낀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다른 면에 슬픔과 외로움이 깔려있지 않은가...

아닌가? 나만 그런가?

왜 그런 것을 나눌 수 없을까?

어렵게 말을 꺼내도 '그건 니가 시골 가서 사람 없는 데서 살기 때문'이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외롭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게 슬프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게 힘들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그에게 

'나도 그래.'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을 열고 싶다.

사람 때문에 지치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간청재 생활 8년. 

'나도 그래'.

이 말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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