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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부답

비가 온다.

by jebi1009 2024. 6. 29.

작은 창문을 열어 놓았더니 하루종일 빗소리가 들린다.
가끔 쏟아붓는 소리가 들릴 때는 조금 불안하지만 빗소리는 참 예쁘다.
오늘 용가리가 울었다.
나는 티슈를 주고 구들방 방문을 닫아 주었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많이 안 좋아지셨다.
5월 어버이날 올라가 뵙고 식사도 같이 했었는데 이게 뭔 일인가 싶다.
그저 혈당 조절이 좀 안되나 싶었는데 병원 입원하시면서 모든 기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엊그제 시댁 작은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서울 조문 다녀왔다.
집안에서는 막내 작은 아버님이시다.  조금은 충격이었다. 아니다. 죽음은 당연하지만 언제나 충격이다.
어머니도 뵙고 왔는데 일주일 전에 가서 뵈었을 때보다 많이 나빠지셨다.
사람이라면 가야 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되면서도 침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머니를 뵙고 더 나빠지시기 전에 딸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어쩌면 소용없을지도 모르겠다. 알아보지 못하실 것 같다.
 
남편은 무던한 사람이다.
감정 기복이 없고 편안한 사람이다.
아버님이 10년 넘게 치매를 앓다 돌아가실 때도 차분하게 잘 겪어 냈다.
그런데 지난주 어머니를 뵙고 와서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정말 많이 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는 울 것 같다고...
가족 단톡방으로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큰누나와 통화하고 엄마가 더 안 좋아지신 것을 알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다졌다.
누구나 가는 길이고, 어쩔 수 없는 길이고, 우리도 가야 하는 길이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저녁 먹고 상 치우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런 용가리의 모습을 처음 봤다.
그런 감정 표현은 처음 본 것이다.
우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엊그제 딸아이에게 할머니 보러 가자고 통화했을 때 딸아이는
'아빠가 많이 슬프겠다. 엄마가 아빠 많이 위로해 줘.'
나는 딸아이가 할머니 아프셔서 걱정이라는 말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아빠의 감정을 더 많이 살폈다.
 
나는 이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한다.
나는 어째야 하나...
나중을 위해서 모르핀이라도 조금씩 사서 모아야 하나...
나이 먹고 죽는 것이 너무도 힘들구나...
 
빗소리가 하염없이 좋은데 휴대폰 호우주의보 재난문자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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