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둘렀다.
금요일 오후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해서 일단 차를 마을 입구에 내려놓았다.
토요일 아침 걸어 내려가 차를 타고, 함양 터미널에 가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동서울행 버스를 탔다.
12월 14일.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
서울에 도착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 이미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은 무정차한다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논현역에서 9호선을 타려고 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찰구로 가는 곳이 지그재그 여려 겹의 줄이 이어졌다.
개찰구를 통과하기까지 30분 넘게 걸렸다.
거의 반평생 서울에 살면서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샛강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는 데도 30분 넘게 걸렸다.
그렇게 지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국회의사당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걷지 못해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냥 서 있는 곳이 광장이었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당연 젊은 여자 사람들이 많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과 함께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젊은 사람들 속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보면 드문드문 우리 같은 늙수그레 사람들도 보였다. ㅎㅎ
멀리서 들리는 노래는 손담비의 '토요일밤에' '님을 위한 행진곡' '아파트'.
아파트 노래는 처음에는 로제의 아파트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윤수일의 아파트가 함께 나왔다.
나름 배려 차원? ㅋㅋㅋ
걸어가면서 구호는 외쳤지만 나도 신세대 노래 부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노래 부르는 곳까지 가지도 못했다.
함께 걷는 사람들의 손에는 다들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응원봉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트리도 있고 산타도 있고 토끼도 있고 재미있는 자체 제작 깃발도 많았다.
나도 다음부터는 아무 깃발 하나 만들어 들고나가야겠다.ㅋㅋ
그렇게 조금 움직이다 보니 4시가 되었다.
통신 장애가 있어 국회 소식을 알 수 없었지만 앞에 있던 20대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어 유튜브를 보여 주었다.
손을 조금만 내리면 버퍼링이 걸리는데 딱 그곳에서만 유튜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 옆에 붙어서 탄핵이 가결되는 것을 보았다.
앞에서부터 웅성거리고 함성이 들렸다.
뒤쪽 사람들은 우리도 좀 같이 알자고 뭐냐고 하고, 이어서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에서 탄핵 가결 속보 자막을 확인하고 다들 함성을 질렀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움직이며 구호를 외쳤다.
처음에는 '탄핵하라!' 나중에는 '체포하라!'.
너무 늦지 않게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대략 난감...
근처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구불구불 몇 백 미터 줄이 있었다.
지하로 들어가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릴 듯...
여의나루역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걸었다.
여의나루역에도 이미 백 미터 넘는 줄이...
고민하다가 걸어서 한강 다리를 넘기로 했다.
마포대교를 넘어가면 언니네서 픽업 나와 주기로 했다.
마포대교를 걷기 시작했다.
20분 정도면 넘어갈 수 있을 줄 알고 언니에게 전화했는데 형부의 차를 탄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후였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게다가 강북강변로로 빠지는 램프가 있어 신호가 걸리는 것이다.
열 걸음 걷고 멈추고, 열 걸음 걷고 멈추고....
처음에는 언제 이렇게 한강 다리 걸어서 건너 보냐고.. 달도 이쁘게 떴다고... 야경 좋다고... 낭만적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점점 말이 없어갔다.
나도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바람 맞으면 걷는 것은 너무 춥고 힘들었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고 움직여 그 피곤함이 쌓여 다리가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허리와 고관절이 아파서 혼났다.
마포대교가 이렇게 긴 다리였던가...
한 시간 넘게 걷다 서다를 반복했는데도 반도 못 왔다.ㅠㅠ
게다가 춥기는 왜 이리 추운지.... 여의도에서는 이렇게 춥지 않았는데...ㅠㅠ
그래도 사람들이 나눠 주었던 핫팩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마웠다.
참 사람들이 고맙다.
다들 힘들고 추운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아무도 밀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걷고 있었다.
지쳐 나가 떨어진 우리와는 달리 젊은 아이들은 여전히 재잘재잘 활기가 넘쳤다.
아...이런 거 하기에 우리는 너무 늙었다.ㅠㅠ
드디어 마포대교를 넘었다.
마포역도 무정차 통과하고 있었다.
언니네가 나와주지 않았다면 또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함께 여의도에서 만나기로 했던 언니네가 후방 지원조로 남기를 잘했다.^^
형부는 그날 발렌타인 30년 산을 열었다.
미리 주문해 둔 최고급 방어회와 한 병을 모두 비우고 다시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땄다.
우리는 취했고 노무현 대통령님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얼마나 나쁜지 알지 못하는데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알고 있다.
조국 교수님도 생각하면서 조금 울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겼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 싸워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단 하루 서울 다녀왔는데 며칠 동안 긴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숙취도 있으니 일단 좀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