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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탄핵 버거

by jebi1009 2024. 12. 19.

안산 롯데리아에서 내란 계엄 모의가 있었다는 뉴스를 듣고 '탄핵버거' '내란버거세트'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정말 웃픈 일이지만 오랜만에 햄버거가 땡겼다.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자.
읍내에는 롯데리아만 있다.
사실 롯데리아는 맛이 없어서 생전 먹지 않았었는데 간청재 오고는 그런 음식들이 땡길 때는 할 수 없이 롯데리아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버거킹을 좋아하는데 시골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제 읍내 나갔을 때 저녁거리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샀다.
나름 외식이니 햄버거 봉지 들고 기분 좋게 돌아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용가리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딘가에 흘린 것이다.
주차할 곳이 없어 롯데리아에 나를 내려 주고 용가리는 차를 돌리고 있었다.
용가리 지갑을 들고 내려 햄버거를 사고 다시 차에 탔는데, 집에 와서 차에서 내리니 내 손에도 차 안에도 지갑이 없었다.
일단 차 안을 살펴봐도 지갑이 없어 롯데리아에 전화해 알아보니 지갑이 없다는 것이다.
망연자실..... 그냥 있을 수 없어 다시 차를 돌려 읍내로 갔다.
마지막 카드를 결제한 곳이 롯데리아니 그곳으로 가서 다시 살폈다.
매장 안도 살피고, 문 앞, 내가 차를 탔던 도로변도 다 살폈지만 없었다.
집까지 다녀왔으니 벌써 1시간은 지난 후였다.
분명 손에 들고 있었는데, 들고 차에 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ㅠㅠㅠ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 근처 함양 경찰서에 들러 혹 분실물 들어온 것이 없는지도 살폈다.
그때가 학생들이 학교 마치고 롯데리아에 많이 들렀던 시간이라 혹 학생들이 근처에서 봤으면 경찰서에 맡겨 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없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일단 신용카드부터 정지했다.
현금도 많지 않고 신분증도 다시 발급받으면 되는데 지갑이 아까웠다.
딸아이가 용가리 생일 선물로 거금 들여 사 준 명품 지갑이었다.
엄마가 띨띨해서 아빠 지갑 잃어버렸다고 어떻게 말하지? ㅠㅠ
용가리와 나는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말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자책하고 있어서 당사자 용가리는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사실 마구 구박해도 되는데 말이다..
 
아니, 내란 모의 하려면 이왕이면 '버거킹'가서 할 일이지 쪼잔하게 롯데리아가 뭐야?
왕 되려고 내란 일으킨 거 아냐? 그러면 '킹'으로 가야지 뭔 롯데리아?
버거킹 가서 했으면 읍내에 버거킹이 없으니 햄버거도 안 먹었을 것 아냐?
 
나중에는 이런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면서 죄 없는 햄버거도 미워했다.
둘 다 완전 시무룩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아까 왔을 때와는 달리 라이트를 켜고 왔는데 주차하려고 차를 언덕길로 올리는 순간 불빛에 무언가 보이는 것이다.
길바닥에 까만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설마????
내려가서 살펴보니 지갑이었다!!!
이게 뭐지?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읍내에서 돌아와 주차하려고 차를 돌릴 때 뒤에 돌이 있어 내가 내려서 치웠었다.
그때 내리면서 무릎에 있던 지갑을 흘린 것이다.
그러니 차를 주차하고 내릴 때는 지갑이 없어 난리가 난 것.
아이고...
그래도 만세를 불렀다.
오도재 넘어 읍내를 두 번 다녀오면서 그 무거웠던 마음이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만세만세만세!!!
살면서 기억하는 가장 기분 좋은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첫 번째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은 한밤중에 용가리가 관정(지하수 우물)을 고쳐 물이 나왔을 때다.
갑자기 밤중에 물이 나오지 않아 엄청 당황하고 걱정했는데 용가리가 나가서 무슨 스위치를 갈아서 물이 다시 나올 때였다.
그때도 나는 만세를 불렀었다.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좀 허접스러운 것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고 앞으로 더 강렬한 기억이 없다면 계속 그럴 것 같다.ㅋㅋ
 
그 난리를 치고 집에 들어와 차 뒤쪽에 던져두었던 롯데리아 햄버거를 주섬주섬 챙겨 맥주와 먹었다.
지갑 못 찾았어도 햄버거는 먹었겠지? 먹다가 체했을지도..ㅋㅋ
맥주를 많이 마셨다.
탄핵버거 내란버거에 이어 체포버거 파면버거 구속버거까지 먹었으면 좋겠다.
 

문제의 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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