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어둠을 재현하는 어느 만화가의 세계'라고 쓰여 있다.
처음에는 그래픽 노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박건웅 에세이'를 보지 못했다.
중간중간 만화의 장면들이 섞여 있지만 작가의 에세이였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인혁당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국가 폭력에 의한 학살과 독재군부에 의한 고문 사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나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 등을 만화로 그린 작가의 이야기다.
직접 만화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분위기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검은색, 흑백으로 만화를 그린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색감에 민감했던 작가였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위해 동양화 물감을 사용하려 했지만, 가격이 비싸 포스터칼라를 햇빛에 말려 그 가루를 사용해 채색했었다.
하지만 출판을 위해 인쇄와 스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채색 작업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컬러 인쇄의 비용도 너무 비싸서 결국은 흑백을 선택했다고 한다.
색에 대한 고민 대신에 다른 부분에 집중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들을 만들어 냈다.
한지와 먹을 이용하기도 하고 목판화의 느낌을 살리기도 하고 아주 가는 펜을 이용하기도 했다.
흑백만화가 주는 깊은 느낌을 작가는 고수하고 있다.
이 책의 여러 이야기 중에 [어떤 육아 일기]가 마음에 남는다.
어떤 할머니의 오래된 육아일기.
독립운동가 최선화와 양우조 지사의 육아일기다.
아이의 이가 자라나는 것을 기념비적인 일로 여기며 기뻐하는 부모의 모습과
갓난아기'제시'가 성장해 가는 모습과
임시정부 사람들의 고된 모습이 함께 담겨 있는 일기장.
양우조 지사의 유언 중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전체 동포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 법이다.'
총칼이 오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임시정부 사람들은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나서서 약을 구해오고 정성을 다해 병간호를 해 주었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가슴 먹먹하게 감동을 주는 것은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또 '골령골'유해 발굴 과정에서의 '교회'의 행태도 마음에 남는 이야기다.
물론 [어떤 육아 일기]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1950년 6월, 국민들에게는 안심하고 남아 있으라는 거짓 방송을 하고 대전으로 피신한 이승만은
당시 대전 형무소에 있던 수감자들을 골령골로 끌고가 대량 학살한다.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 관계자들, 여타 정치범들을 위협적으로 느껴 학살한 것이다.
추산 희생자 수가 약 7000명.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중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2007년 7월 첫 유해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이곳에서 잃은 자녀들은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는데, 아버지의 뼈 하나라도 찾으려고 매일같이 현장을 찾으셨다. 학살터 옆에는 낡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이 교회를 지을 당시에도 수많은 유골이 나왔다고 한다. 그때 발견된 뼈들을 모아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교회 옆 한 곳에 묻었다고 하는데 여기 교인들은 불경하다며 매번 그들을 기리는 현수막을 찢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들 토대로 마침내 발굴을 시작할 무렵 교회는 막대한 보상금을 요구했고 결국 지자체의 의지로 보상을 해 주었다고 한다.
발굴된 유해들은 교인들이 떠나간 낡은 교회 안에 임시로 보관되어 있었다.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해들을 비추었다. 마치 원혼들이 비로소 주님의 품 안에서 잠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교인들이 떠나니 진짜 교회가 되는 것일까?
유독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뻔뻔하고 참담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과연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교인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에 분노가 치민다.
솔직히 박건웅 작가의 작품집을 찾아서 보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버겁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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