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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봄동, 오빠 2014/03/04

by jebi1009 2018. 12. 26.


  저 주전자는 차 주전자인데 차는 한 번도 먹은 적이 없고 항상 술을 담아 먹는다.

수요일 아파트 장이 설 때 먹고 싶어서 봄동 천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냉장고에 들어갔는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마음을 짖눌러 드뎌 봄동겉절이를 해서 먹었다.
나는 겉절이 종류를 모두 좋아한다.
푸릇푸릇한 푸성귀를 고춧가루에 버무려 먹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게 버무리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가는, 김치 종류처럼 보이기 때문에
달걀 후라이 해 먹듯이 해 먹기는 힘들다.
그래서 약간은 큰 맘을 먹고 시작해야 한다.
펄펄 날라다니는 푸른 잎들을 진정시켜 어찌어찌 버무려 먹었다.
풋내가 풀풀 나는 푸른 잎사귀가 너무 맛난다...
바지락 조개를 사서 조개술찜도 해서 먹었다.
심야식당2에 나오는 음식인데 나는 홍합으로 종종 해 먹었던 것이다.
모시조개나 바지락도 괜찮지만 홍합이 더 나은 것 같다.
홍합이 더 먹을 것이 많고 또 지근거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개류는 아무리 잘 해도 지근거리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데 홍합은 그런 것에서 자유롭다.
조개와 봄동겉절이,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사케로 한 주일을 마감한다.
사실 한 주일을 마감한다는 것도 웃기다...매번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기 때문이다 ㅎㅎㅎ

'야 너는 왜 내가 너 보다 세 살이나 많은데 오빠라고 안 그러냐?'
뜬금 없이 용가리가 말한다.
'**오빠~ 하고 한 번 해봐..'
'어디 아프냐?'
나의 한 마디 ㅋ
나이도 세 살이나 많은데 결혼해서 손해 본단다.
부부는 원래 동등한거잖아...

용가리와 나는 서로 각자의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나서 오빠나 누나 혹은 형이나 언니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도 나는 용가리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남자 선배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 보니 내 바로 밑에 학번 애들은 오빠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하나 있는 오리지날 오빠도 없애버리고 싶은 판국에 무슨 오빠타령?

아는 오빠, 동네 오빠, 교회 오빠...
오빠 화이팅(휴게소에 있는 야구볼 치는 기계에서 사람이 타석에 들어서자 흘러나오는 멘트)
오빠 한 잔 해..
오빠 오빠...

난 우리 나라에서 오빠라는 말이 썩 내키지 않게 들린다.
그 치근덕거리는 느낌이란...쩝...

지리산 둥이엄마는 나이 사십이 넘어 아직도 둥이아빠를 오빠라고 부른다.
둥이엄마가 오빠라고 하는 것은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리산으로 내려왔다니...
아직도 오빠가 너무 좋단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 할 수 있다니 정말 남편을 사랑하나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둥이아빠 부담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쫌 그런가?

용가리와 나는 그냥 막 산다.
만일 용가리가 나더러 너무 사랑한다고 그러면 부담되고 싫을 것 같다.
오리, 돼지, 또라이, 꼴뚜기, 찌질이, 정신병자, 방구쟁이, 멍충이....
이렇게 부르고 산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말했더니 깜딱 놀란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며...
그런데 그렇게 부르고 막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걸 어떡하랴...
갑자기 좋은 말 하면 너 왜그러냐며 걱정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ㅎㅎ
우리는 서로 듣기 좋은, 오글거리는, 말 대접해 주는 그런 말들을 나눠 본지가 없는 것 같다.
또라이랑 찌질이랑 사니까 그런 것 같다.
꼴두기면 어떻고 돼지면 어떠랴...힘들 때 서로 쌩까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을...
서로 험한 꼴 다 보고 험한 말 하는 사이라 쌩까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다 ㅎㅎㅎ

봄동겉절이 한 젓가락 집어 먹으며 사케 한 잔을 따라줬다.
오빠 한 잔 받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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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퐁 2014/03/08 21:04

    봄동은 우리엄마가 최고로 잘했는데... 제비님 봄동 사진에 결국 김치를 사고 말았습니다. 김치가 있으면 밥을 많이 먹어서 안 사고 버티려 했는데 ㅜㅜ

    • 제비 2014/03/11 17:30

      과자를 많이 먹는 것은 나쁘지만 밥 많이 먹는 것은 착한(?)일인디요...울 엄마가 옛날부터 그랬어요 ㅎㅎ

  2. 무등산 2014/06/18 13:56

    우연히 둘러보게 되었어요.
    저랑 식성도 비슷하시고
    저만큼 술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정겹습니다.
    최근 글을 보니 이사 하신 것 같은데
    저도 이사했는데.
    이사해서 제일 아쉬운 것이 술친구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인데
    앞으론 혼자 마시지 말고 이리로 와야겠군요.
    아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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