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만에 우리 집에 있는 군자란이 꽃을 피웠다.
우담바라도 아닌 것이 우리 집에 온 이후에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도 거의 주지 않고 관심 밖으로 제쳐 두었는데도 푸른 잎사귀를 달고 죽지도 않고 연명해 왔었다.
나는 계속 거부했는데도 사람 사는 집에 꽃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우리 엄마 때문에
불쌍하게 우리 집에 와서 험한 꼴을 당한 것이다.
나와 동거하는 두 생명체만 해도 부담 백배인데 또 다른 생명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죽지도 않은 것을 버릴 수도 없고 그냥 저냥 있었는데 세상에나...꽃을 피운 것이다.
물론 우리 엄마네 군자란은 거의 매 해 꽃을 피웠다.
같은 뿌리에서 난 것이지만 우리 집 것은 그냥 연명하는 정도...
미안했다.
그냥 방치하고 거의 말라 죽기 직전까지 가는 고생을 하면서도 꽃까지 보여주다니..
미안해..그리고 잘 해주려고 노력은 해 볼게...
드디어 턴테이블을 샀다.
저렴하고 단순한 것으로...
막상 물건을 받아보니 조잡스럽고 허접스럽기까지...
그래도 그게 어디냐...
안에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는데 소리가 조악하다.
미니오디오 스피커에 연결시켰지만 뭐 그 스피커도 알만한 수준...
그래도 엘피를 돌리니 감격스러웠다.
볼륨을 한껏 올리고 신세계 교향곡을 들으니 눈물도 찔끔 났다. 주책...
80년대 들국화 라이브 판을 들으니 참 담백했다.
요즘에는 그렇게 콘서트하지는 않을 것이다. 촌티? 가 줄줄...
앞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건전가요도 빠지지 않는다.
오래된 엘피는 살짝 휘어져서 소리가 늘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탁탁 튀는 소리도..아 좋아라...
딸내미는 보더니
이거 축음기야?
엘피 돌아가는 것을 한참 들여다 보고는
이 바늘로 어떻게 소리가 날까...정말 신기하다..그치?
조잡스럽고 소리도 조악하면 어떠랴...한껏 추억에 빠져 가슴이 벅찼다.
우리 사는 세상...나름 세상의 불평등함, 착취당하는 자와 그것을 딛고 누리는 자를 말하려는 듯...
동영상은 음악이랑 잘 어울렸다. 귀여우면서도 약간 기괴하고....말하려는 것을 알듯도 하고 모를듯도 하고..
딸내미 학교에서 동계방학전이 열렸다.
전시 기간에 학부모 회의를 한다.
잠시 고민하다 '그래 백수 주제에 딸내미 2학년 시작하는 마당이니 게으름 부리지 말고 가자'
전시의 주제는 '우리 사는 세상'이란다.
딸은 유화 한 점과 동영상 하나를 걸었다.
1인 당 두 점. 드로잉과 채색화를 내야 한단다.
동영상 만든다고 며칠 켬퓨터에 붙어 있었다. 음악도 고르고...
동영상 그림을 약 300컷 그렸다나?
어쟀든 제출하고 홀가분하다더니...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이것은 시작이니 여름에 있을 진짜 미전을 준비해서 화끈하게 보여준단다.
그러시던가...
'다른 엄마들은 꽃도 붙여주고 꽃바구니도 놓고 초콜릿도 놓고 하는데 엄마는?'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갔으니 미전을 기대해라.
내가 이벤트에 강하잖니...엄마가 시루떡 해서 한복 입고 시루째 가져가 니 그림 밑에 놓을게 ㅎㅎㅎㅎ'
'엄마 쫌...'
'취중진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과 노동 2014/05/14 (0) | 2018.12.26 |
---|---|
똥멍청이 2014/04/01 (0) | 2018.12.26 |
대추에 빠지다 2014/03/13 (0) | 2018.12.26 |
봄동, 오빠 2014/03/04 (0) | 2018.12.26 |
생일? 2014/03/03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