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모든 것이 쑥쑥 자라는 것 같다.
간청재에 가면 작은 텃밭부터 살피게 된다.
매일 들여다 보고 살펴줄 수가 없으니 혹시 잘못 되었나...별 일은 없나....
차에서 내리자 마자 텃밭을 살피다 오이 넝쿨을 보다 깜짝 놀랐다.
팔뚝만 한 오이가 달려 있는 것이다.
지난번 봤을 때 꽃 끝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꼬투리가 달려 있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게 정녕 마땅히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란 말인가!
마치 요술을 부린 것만 같았다. 정말 쑤욱쑤욱 크는구나..
호박은 넝쿨의 기세가 대단해 주변을 다 제패하고 짱 먹고 있었다.
이 기세로 자란다면 집 안까지 쳐들어 올 것 같다 ㅎㅎ
토마토는 탁구공만 했던 것이 주먹만큼 자라서 가지가 옆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가지는 예쁘게 꽃이 피고 작은 가지가 달린 것이 보였고
고추는 여전히 쭉쭉 뻗은 자태 자랑하며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곰보배추도 잘 크고 있고..
그런데 상추는 잎들이 짓물러버렸다.
잎을 뜯어주지도 않고 비까지 내려 녹아버린 것 같다 ..흑흑..
옥수수는 이제 거의 내 키에 육박하게 쑤우욱쑤우욱 자랐다.
내 생각에 두시간 마다 키를 재어 보아도 아마 변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ㅋㅋ
애네들 못지 않게 정말 잘 자라는 것이 있다. 바로 풀이다.
지난번 정리하고 갔지만 한 뼘 이상 자랐다. 새로운 풀들도 모양을 뽐내고..
정말 쑤우우욱쑤우우욱 자란다. ㅠㅠ
다채로운 풀들의 향연
이번에 또 나를 놀래킨 것은 아침에 마주하게 된 생명체(?)들 때문이다.
이제 마당을 걷다가 튀어 오르는 개구리 정도는 '엄마야'하는 정도로 끝나고 벌레나 지렁이도 '엄마' 하고 만다.
그런데 아침 잠에서 깨어나 쉬하러 가다가 눈 앞에 매달린 거미를 보고는 '헉' 잠시 쉬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했다.
방 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와 있는 거미를 내 눈 높이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놀랬다가 찬찬히 보니 거미는 크지도 않았고 무섭기는 커녕 만화 속에 나오는 아이 같았다.
거미가 아마 놀랐을 것이다. 내 얼굴 보고 ㅎㅎㅎ
두번째 날 나를 놀래킨 아이는 작은 새다.
아침에 방에서 나와 마루를 지나는데 뒤쪽 툇마루에 작은 새가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새가 놀랄까 가만히 다가가 살펴 봤는데 신기하게도 새는 날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놀랠까봐 사진도 살살 찍었는데 그 후로도 한참을 마루에 앉아 있었다.
용가리와 나는
어디 아픈가? 아님 혹시 알 낳는거 아니야? 알 낳으면 어쩌지?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어 메세지를 남기려 왔나? 하면서 시시덕 댔지만
그 새가 떠난 자리에는 새똥만 두덩이가 남아 있었다.
똥 누느라 가만히 있었나보다....쩝...
간청재 살림이 늘었다.
지난번 결심했던 대로 예초기를 샀다.
거금 들여 장만했다.
토요일 도착해서 예초기 조립에 들어갔다.
조립해서 휘발유 넣고 엔진오일 넣고 줄 당겨서 시동을 거니 부릉~~
칼날과 줄, 안전 도우미라는 것을 차례로 끼우고 시운전을 해 봤다.
안전도우미는 칼날에 돌이 튀거나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받침 같은 것이다.
그 플라스틱 위에 칼날이 얹히니 사실 풀은 잘 잘리지 않았다.
칼날이 제일 성능이 좋으나 위험하고 줄을 이용한 것을 일단 사용하고 차차 요령을 익히기로 했다.
조립해서 시운전 하는데 3시간이 훌쩍 넘었다.
수월암 다녀오고 옆 골짜기 스님께 인사드리러 다녀오니 저녁 때가 다 되었다.
본격적인 풀 처리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저녁은 찬거리가 풍성했다.
팔뚝만 한 오이에 풋고추에 옆골짜기 스님이 따 주신 상추....
고추장 하나면 완성되는 밥상이다.
오이와 상추를 넣고 달걀 후라이를 두 개나 넣고 참기름 듬뿍 넣은 상추비빔밥과 오이무침, 풋고추
그리고 막걸리 한 잔...누마루에서 해가 기우는 산그림자를 본다.
수월암 텃밭의 토마토는 키가 엄청 크다. 윤기 흐르는 텃밭과 범부채꽃
범부채꽃은 우리 토종꽃이란다. 우와~ 저렇게 키가 훤칠한 토종꽃이 있었다니..
범부채꽃은 예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이렇게 꽃잎이 말려서 떨어진단다.
스님께서 씨 받아 주신다며 간청재에 심으라 하셨다.
수월암 도라지꽃. 도라지도 키가 하도 커서 도라지 아닌 줄 알았다. 내 눈 앞에 꽃이 있었다.
옆 골짜기 스님의 상추는 고추밭 사이 사이에 심으셨는데 상추가 꽃다발처럼 예쁘다.
예초기를 활용할 날이 왔건만 비가 내린다 ㅠㅠ
뭐 어때?
나는 새로 장만한 물방울 무늬 주황색 때깔 나는 비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장화를 신고 호미를 손에 불끈 쥐었다.
용가리는 예초기를 둘러 메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각자의 전투지역으로 가서 빗속에서 전투를 치렀다.
꽤 오랜 시간 (나중에 보니 9시 쯤 나온 것 같은데 1시 가까이 되었다) 작업을 하다보니 일단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고 체력이 떨어졌다. 용가리는 휘발유까지 한 번 채웠다.
서로의 합의 하에 작업 종료를 결정하고 몸 버린 김에 고추와 토마토 줄 치는 것까지 하자고 했다.
고추는 한 줄을, 토마토는 많이 자라 두 줄을 더 감아 주었다.
일을 끝내고 장화를 벗자 비가 딱 그치는 것이다. 아예 해까지 뜰 기세다..이런...이건 배신이다 배신...
라면 끓여 먹고 솥단지나 살까 해서 장에 갔다.
장날도 아니고 일요일이라 문 연 가게가 없었다.
막걸리만 한 병 사 들고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찬거리는 동일하나 상추는 겉절이를 하고 고추는 부침개(?)를 했다.
그냥 고추만 부쳤다. 나의 상상력으로 만든 고추부침개다...ㅎㅎ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이 멋지다.
때깔 나는 내 비옷. 개시했다.
원래 돌아오는 날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커피 마시고 음악 듣고 뒹굴대다가 정리하고 오는데
비 내린 다음 날 풀 뽑기도 좋고 어제 미진했던 전투 지역을 다시 공격했다.
용가리는 또 연잎을 홀랑 먹어버린 고라니와 머리 싸움을 하고 있다.
다른 재료가 없어 일단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 했다 ㅎㅎ
용가리 왈, 내가 고라니와 머리싸움 할 줄은 몰랐다....
거미, 작은 새에 이어 잠자리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네...
집 뒤 윗단의 땅에는 온통 개망초(맞나?)가 점령했다.
이제 다시 내려가야 할 길, 서울로 돌아가야 할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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