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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119 출동하다 2014/07/25

by jebi1009 2018. 12. 26.



지리산 간청재에 119가 출동했다.
말벌집 제거를 위해서다.
지난번 왔을 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2주 사이에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큰 벌집이 입구 쪽 높은 지붕 밑에 달린 것이다.
지붕 사이사이에 붙어 있던 말벌집은 크기가 작았었는데 이번 것은 심상치 않게 크고 색깔도 다르다.





고민하다 119에 신고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19에 전화했다.
신고가 접수되고 출동 문자도 받았다.
119 대원 두 분이 오셨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사다리에 올라 벌집을 제거했다.
벌집의 잔해와 벌의 사체와 애벌레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으아~~
안전복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은 거의 찜질방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집 주변 다른 곳도 살펴 주시고 작은 벌집도 떼어주셨다.
이런 산 속에서 119의 보살핌(?)을 받으니 안심도 되고 나름 사회 안전망(?) 속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119 아저씨는 우리 둘의 꼬라지를 보시고 이런 저런 좋은 말씀도 해 주셨다.
시골에서 살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그러려면 동네 분들과 잘 지내야 한다.
제초제나 농약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사용 설명서에 있는 대로만 사용하면 문제 없다...등등..
우리가 땡볕 에서 풀을 뽑는 것을 보시고는 제초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벌 보다 무서운 것이 예초기라는 말도 하셨다.


  옥수수가 영글어간다. 기대 만땅...


  지난번 녹아버렸던 상추를 조금 사이를 띄워 솎아주었더니 아주 탐스럽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빨간 토마토 발견! 잽싸게 따 먹었다. 정말 맛있다.


곰보배추. 정식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심어주신 분이 그렇게 불렀다. 약간 쌉싸름하고 아주 매력적인 맛이다.


  고추와 같이 있어서 몰랐는데 키작은 고추가 아니라 피망이었다.


  새로운 찬거리들...상추와 곰보배추와 피망, 가지가 합세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감자전을 부쳤다. 막걸리 한 잔과 감자전, 텃밭의 채소들...훌륭한 우리들의 저녁식사.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으면 가끔 위쪽 밭으로 가시는 동네분들이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신다.
'그래가지고는 안돼..제초제를 좀 뿌려야제...'
119 아저씨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신다.
제초제나 농약이 많이 좋아져서 선별적으로 풀을 잡을 수도 있고
땅에 닿으면 중화가 되어서 다른 나쁜 영향이 거의 없다고...약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말씀하신다.
도시 사람들은 그저 약 친다고 하면 무슨 독약 치는 것 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물론 우리도 '약'에 대해 뭐 딱히 알러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대충 살자'이므로 유기농 웰빙 이런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
가끔 내가 지리산 가서 살 것 이라고 하면 안심할 수 있는 유기농 먹거리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아무거나 먹는다. 화학첨가제, 항생제, 농약...이런거에 민감하지 않다.
대충 먹는다...
나도 필요하다면 약을 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용법 용량에 맞추어서..
그러나 그럴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무슨 대단위 농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골프장 같은 잔디를 만들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그런데 우리 마당의 이 억센 풀은 뽑는다기 보다는 캐내야 한다.
예초기로도 자를 수가 없다...게다가 성장 속도은 점광석화와 같다...
도대체 너 이름이 뭐니?



  이 아이는 학명이 무엇인가?  뿌리가 어찌나 튼실한지 흙 구덩이가 생긴다...


보통 여름에는 해가 확 뜨기 전, 아침 일찍 일하고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에 해야 하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온 몸이 거부하고 있고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에는 술 한 잔 하는 타임이라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내려가 있는 2,3일 동안 대충이라도 흉가 같은 꼴을 면하려면 한낮 땡볕에서라도 해야 한다 ㅠㅠ
그래도 찜질방 고온 사우나 같은 열기와 땀 속에서 한 줄기 살랑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어찌나 시원한지...
옥수수 잎들은 바람결에 사각거려 가끔 누가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구름이 지나가 태양이 살짝 가려지기라도 하면 온 몸이 서늘해지는 것 같이 일 할 맛이 난다.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금 하다 보면 서너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손끝이 아프고 무릎과 허리를 움직이기 힘들어지면 대충 정리하고 땀에 절은 옷을 벗고 씻는다.
그리고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누워서 옥수수라도 뜯어 먹으면 금상첨화...

  누워서 옥수수 먹는 거 구경하러 온 아이...


이번에는 딸아이가 내려왔다.
하루 늦게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
마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딸아이를 보니 새삼 반가웠다.
나도 그렇고 우리 딸도 옥수수를 무지 좋아한다.
딸내미 오는 기념으로 솥단지도 장만하고 동네 아주머니에게 옥수수도 100개 샀다.
아주머니 마당에서 옥수수를 받아 오는데 커다란 양파망을 내어주신다.
가져가서 나눠 먹으라고....이런 감사감사...
딸내미 온다고 오전부터 마당에 솥단지 걸고 옥수수를 삶았다.
마당에서 이런 일을 하니 완전 짱이다.
옥수수 껍질 벗기는 것 삶는 것...
아파트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자면 여간 번거롭지가 않다. 게다가 삶는 동안의 가스불 열기는 온 집안을 달군다.
옥수수 100개도 금방 삶았다. 아무데나 널어 놓을 수 있으니 좋다.ㅎㅎㅎ





저녁에는 특별 서비스로 삼겹살을 구웠다.
마천석에 삼겹살을 구우니 어디선가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집고양이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딸내미와 짝꿍이 되어 밤 깊도록 돌아가지 않는다.
고양이와 노는 딸아이의 모습이 예쁘다.




참 수박도 사서 먹었다.
올 여름 들어 처음 맛 보는 수박이다.
요즘은 수박이 하도 커서 서울에서 사기는 쫌 부담스럽다.
주구장창 수박만 먹을 수도 없고 남은 수박은 냉장고에서 나를 압박하기 일쑤다.
게다가 수박 껍질을 처리하는 것도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때문에 작은 봉투에 넣기도 귀찮고...
그러나 간청재에서는 수박이 나를 압박하는 일이 없다.
큰 수박을 어떻게 냉장고에 넣는가 고민하지 않고 통째로 엄청 차가운 지하수 물을 받아 담가 놓기만 하면 된다.
일하고 풀 뽑다가 먹는 차가운 수박은 어떤 음료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틀만에 그 큰 수박 한 통을 거의 다 먹었다.
게다가 수박물 줄줄 흘리면서 먹어도 마당에서 먹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씨도 막 뱉어 버리고 ㅎㅎㅎ
수박 사서 먹는 것이 이런 큰 과업이 될 줄이야.....ㅋㅋ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계곡에 발 담그러 갈까?
딸내미는 다 싫다고...마루에 누워 옥수수 먹으며 뒹굴거린다.
3일 동안 딸내미는 간청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월암에 인사드리러 간 것만 빼고...


  딸아이와 내가 고추 따는 것을 용가리가 도촬했다.ㅎㅎ


  비가 한바탕 지나가고 난 후 지리산 능선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여름에는 뿌연 날이 많아 능선을 잘 볼 수 없었는데....



마당에 심어 놓은 옥수수가 영글어 솥단지에 한 번 삶으면 가을이 올 것 같다.
가을이 오면 집 주면에 떨어진 밤도 줍고 툭툭 떨어지는 감도 주워 먹고...
무엇보다 더 짙어진 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보이는 천왕봉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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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씨 2014/07/26 21:43

    저위의 토마토를 따먹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두길 잘했군요.ㅋㅋㅋ
    사실 며칠전 창원 마을 뒷편의 땅이 귀농사이트에 매물로 등장(?)했지요.
    그래서 회사도 조퇴하고 마눌님과 창원마을로 달려갔더랬어요.그런데...앵?
    간청재 바로 입구의 땅이더군요. 그래서 지주분께 계약할려고 전화했더니만 그새 다른분과 계약이 되었다고 해서 그 허탈함이란....
    그래도 간청재 마루에 앉아 오랜만에 구름 덮인 지리산 능선을 실컷 보고왔어요.

    • 제비 2014/07/29 18:33

      이웃이 될 뻔 했네요...아이구 아쉬워라...
      다음에 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토마토 드셔도 됩니다 ㅎㅎㅎ

  2. 무등산 2014/07/28 20:00

    제가 사는 곳은 오늘 비가 내려요.
    얼마전 아주 우연히 제비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어 들락거렸어요.
    지금 사람 건드리는 비 때문에
    부침개 한 장 부쳐서 무등산 막걸리랑 먹는데
    제비님 글 보니 술맛이 제대로 붙어서 술이 부족하네요.
    제가 일관성이라곤 없는 사람이라 변덕이 죽 꿇듯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제비님처럼 살고 싶네요.





    • 제비 2014/07/29 18:35

      무등산 막걸리 먹어본 적이 없는데 맛날 것 같아요..
      비오는 날 부침개에 막걸리로 시작하셨으니 쉽게 끝낼 수 없겠는걸요 ㅎㅎㅎ

  3. huiya 2014/07/29 12:08

    저도 옥수수를 좋아하지만, 옥수수 100개를 한꺼번에 삶으시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시나요? 초대형 냉동고에 저장?

    • 제비 2014/07/29 18:39

      초대형 냉동고 아니고 그냥 냉장고 냉동고에 넣어 둡니다.
      삶은 날 기본 20개 이상은 먹으니까 남는 것은 두세개 씩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고에 두었다가 살짝 쪄서 먹어요...
      원래 냉동 냉장고가 비어 있어서리 옥수수 들어갈 자리는 충분합니다 ㅎㅎ

  4. chippy 2014/07/30 23:01

    저희 마당에도 저 지독한 잡초가 있어요. 말벌집은 작을 땐 호스로 물을 뿌려서 제거해도 되요. 고압력 세척기도 용이하고, 여기선 덱크 청소할 때 필요해서 갖고 있는 집이 많지요. 집을 관리하려면 장비들이 다양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저도 캐나다에 와서 배웠어요. 시내에 사는 것보다 타운 밖 컨트리에 살면 더 많은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다보니, 없어도 살지만 고단하거나 비용이 많아 드니까 다 체질에 맞아야 선택할 수 있답니다. 제비님 가족은 잘 맞으시는 듯해요. 전기 없는 곳도 가능할까요? ㅎ...여기선 일부러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곰이나 사슴, 코요테와 늑대의 방문도 받으면서 말입니다.

    • 제비 2014/08/01 15:46

      전기 없는 곳이라니요..ㅎㅎ
      저는 짐승 벌레 안 좋아하고 농약 좋아하는 사람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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