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청재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기적에 가깝다.
아무리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간청재 연꽃은 진흙 뿐만 아니라 온갖 역경을 딛고 피어났다.
고라니가 연잎을 다 따먹고 개구리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연못을 보고 안타까웠다.
나름 머리 쓴다고 철통 방어(?)를 해 놓고 갔지만 이끼 같은 것만 잔뜩 있고 연잎도 시원찮았다.
그러다 속에서 연잎이 썪어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러 나...연꽃이 피었다.
이것은 감동 그 자체다.
그냥 연꽃이 아니라 정말 정말 예쁜 연꽃이 완벽하게 피어났다.
매일 들여다 봐주지도 못하고 2주 만에 가서 슬쩍 보고 오는 것이 전부인데 어쩜 그렇게 예쁘게 꽃을 피우다니...
간청재의 모든 것이 그렇다.
옥수수도 그렇고 고추도 그렇고 토마토, 가지, 상추...모든 아이들이 기적이다.
매일 눈길도 주지 못하고 보름 동안 버려 놓다시피 하다가 열매만 거두어 가니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또 수월암 스님이 옮겨 심어 주신 홍매 나무도 기적을 이루었다.
여름이 되도록 회색의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있어 이제 가망이 없나보다...마음 아팠는데
밑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돋았다.
자리 잡으려고 몸살을 하는 중일지도 모르니 기다려 보라고 하시던 스님 말씀이 맞았다.
호박이 어찌나 큰지 약 6분의 1 정도 잘랐는데 이 만큼이다. 옆에 놓인 라이터의 크기를 보면 짐작이...
호박전 부쳐 먹었다.
조금이라도 붉은 빛이 돌거나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아이는 나 보다 먼저 맛을 보는 녀석이 있다.
옥수수도 예외는 아니다. 나 보다 먼저 맛을 본 녀석이 있다. ㅠㅠ
그래도 이 만큼의 옥수수를 삶았다. 우리 마당에서 얻은 것이다. 뿌듯뿌듯...
가는 날부터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첫날 밤은 태풍이 비껴 가는지 바람이 몹시 불었다.
비 내리는 3일 동안 설님이 함께 했다.
설님은 꽃무늬 장화를 마련하시고 어린이용 비옷을 입고 풀 캐는 일에 흠뻑 빠지셨다.
풀 뽑아내는 일이 나름 중독성이 있다며 비가 와서 뜨겁지도 않고 땅도 말랑거려 풀이 쑥쑥 빠지는 쾌감이 느껴진다 하셨다.
3일 내내 풀만 뽑다 가셔서도 잘 도착 했다며 뽑아낼 풀이 없어 아쉽다는 문자도 날려 주셨다. ㅎㅎ
설님이 가고 나자 햇빛은 쨍쨍....
내려 오는 2일 날이 함양 장날이라 장에서 이것 저것 구입하면서 수박을 한 통 샀다.
비 오는데 무슨 수박이냐며 구박을 한 몸에 받고 산 수박을 결국은 한 통 다 먹고 올라왔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꼼지락거리다 보면 수박 반 통 씩은 거뜬하다.
이번에도 손님 맞이 이벤트로 지난 번에 샀던 솥단지에 닭을 고아 먹기로 했다.
뭐 설님은 손님도 아니지만 핑계 삼아 부지런한 척...
용가리와 둘만 있으면 항상 먹는 것은 대충이다.
하루 한 끼 먹기가 거의 생활화 되어 간다..ㅎㅎㅎ
저녁에 라면이나 아님 부침개 정도...둘이 먹자고 닭을 삶거나 고기를 구울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ㅋ
불 때서 푹 고아낸 닭을 건지고 불린 찹쌀을 넣어 닭죽을 끓였다.
내가 모르고 찹쌀을 엄청 많이 불렸다.
설님이 두컵만 넣고 남기라 했는데 설님 없는 틈을 타서 다 넣어 버렸다.
남기기 귀찮아서리...
그래도 닭죽은 맛있었고 한 솥 끓인 닭죽을 오는 날까지 두고두고 잘 먹었다. 그리고 다 먹었당~~
수돗가 주변 풀을 뽑다가 호미 하나를 해 먹었다. 괴력의 아줌마로 등극했다.
용가리가 호미 백 개는 사 줄 수 있으니 계속 잘 해 보란다. ㅎㅎㅎ
난 데 없이 나타난...이 아니라 있었는데 내가 못 보았겠지...임펙트 있는 거미의 자태..
엄청 화려하고 큰 잠자리도 보았다. 꼭 잠자리가 육식을 할 것만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헤벌레 보다가 모습을 훔치지는 못했다. 거미랑 때깔이 비슷했다.
간청재에서는 시간이 너무도 잘 간다.
내려 갈 때는 이것도 하고 어디도 가고..생각은 하지만 들어가면 나오지 않게 된다.
이웃에 있는 '안녕'에 가서 팥빙수 먹으려 했지만 역시 꼼지락거리다 보니 못 갔다.
수월암에 가서 스님께 인사 드린 것이 전부다.
스님은 이제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이 되셨다고 자랑(?)하셨다.
그럼 이제 대통령이 준다는 20만 원을 받을 수 있으시겠다며 언능 신청하시라며 부러워하자
신청 안 하시겠단다. 안 받으시겠단다. 오잉?
'웃겨..내가 달라고 했나...내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가 뭐라고 나한테 주나...
준다고 다 덥석 받아야 하나..'
'아이고...받으셔요..우리가 받을 때 되면 연금으로 다 까여서 받지도 못하니 스님이라도 받으셔요...'
'내가 부어서 받는 국민연금 27만 원이면 공과금 다 내고 사는 데 불편 없다. 뭐하러 더 받나..
그 여자가 주는 것 안 받을란다.
평생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 없어 세금 한 번 낸 적 없으니 세금 낸 셈 치던가...'
참 내...저러실 수도 있구나...
20만 원이면 수입이 거의 두 배 상승아닌가...270만 원 월급 받던 사람이 470만 원 받을 수 있는 찬스인데...
역시 스님은 울트라 캡숑 파워 짱이다!!
전에 스님이 그러셨다.
돈을 모으려고 하니까, 쟁여 두려고 하니까 없는 것이지 먹고 사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밥 세 깨 먹는 것은 얼마 들지도 않는다.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그게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원래 없었던 것이다.
내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 많다.
이번에 용가리가 사표를 던졌다.
자기 보스에게 이메일을 날리고 간청재로 내려갔다.
그때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물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몇 달 더 다녀야겠지만 그거야 껌 씹는 기분으로 다닐 수 있지 않겠는가..ㅎㅎ
사실 딸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그러니까 내년 1년을 더 채우고 그만 두려고 했다.
딸아이가 고3까지 지내려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꽤 많은 지출 때문에
고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용가리는 월급을 마약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이제 그 마약도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 마약은 1년으로 따지면 엄청 큰 돈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러나 원래 없었던 돈이라 생각하면 별 일 아니었다.
서울 집을 처분한 돈으로 딸아이의 대학까지의 비용은 생각하고 있었고
생각지 못했던 고3까지의 비용은 집을 그만큼 싸게 팔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서울에서의 남은 생활을 대충 개길 수 있는 형편이 그럭저럭 된 것이고
간청재에 간 뒤로는 많은 돈 들이지 않고 살 수 있을테니 어찌어찌 굴러갈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는 그런다.
시골 내려가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쥐고 가야 한다고...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맞는 것 같다.
힘은 들겠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후회해도 할 수 없고....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겠는가...
이 나이에 철딱서니 없다고 욕 먹을 수도 있지만
'두려워 마라..별 것 아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살란다.
우린 원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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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적 같아요.
아마 앞으로도 잘 사실거라는 징조가 아닐까요...
언젠가 저도 간청재에 가서 닭을 먹을 날을 희망삼아 불볕더위에서 살아남으려고요...
정말 기적 같이 잘 살아가야지요....
제비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매번 저의 정신을 터치하셔요.
아아아 정말 좋아요. 제비님 이야기.
저두 간청재에 풀 뽑으러 가고 싶어요.
무등산막걸리랑 소주랑
제비님이 한 개 더 사고 싶다는 쟁반 가져 갈 수 있는데요?
아니 이런...무등산 막걸리와 쟁반이 막 탐나는데요 ㅎㅎㅎ
누각 앞 하얀 수련까지 간청재를 지키고 있었구나.
일단 마음 먼저 간청재로 달려가고... 곧 만나자. 간청재
칭기즈칸 공항에서 뱅기 뜨기를 기다리며
잘 다녀 오시고 좋아 보이세요
남은 학기 또 버티실 힘이 생기셨기를....
'두려워 마라..별 것 아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살란다.
우린 원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아...가슴을 마구 때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