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청재 마당에 돌을 깔아 풀과의 전쟁에서 잠시 휴전에 들어가자 심신이 다 안정되는 듯하다.
마당을 바라보아도 심난하지 않고 마당과 텃밭을 요리조리 구상해 볼 수도 있다.
맨날 먹을 것 타령하며 먹을 것이 아니면 심지도 않을 것처럼 덤비던 내가 이제 꽃도 눈에 들어오고 말이다.ㅎㅎ
내려가는 토요일이 마침 함양 장날이라 장 구경하며 텃밭에 심을 모종도 살 겸 장에 들렀다.
무를 심고 싶어서 무 모종을 찾았지만 없어 주변에 물어보자 무는 씨를 뿌리는 것이라 한다.
내가 시장 한 복판에서 앞서 가던 용가리에게 무는 씨를 뿌리는 거라서 모종이 없다고 소리치자
조금 앞서 가던 용가리가 더 빨리 달아난다.
나는 바짝 뒤따르며 무는 씨 뿌리는 거라서 씨앗을 사야 한다고 하니까
'조용히 좀 해..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창피해 죽겠다..'
용가리는 내가 일행이라는 것이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고
정말로 주변 시장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벽돌 한 장에 4천원이냐고 물어 봤을 때와 같은 표정들이다...
괜히 주눅들어 종묘상에 갔다.
무는 이제 너무 늦었다며 시금치나 봄동 씨를 뿌려보라고 한다.
시금치와 봄동 씨를 사서 나왔다.
배추가 먹고 싶어 배추도 한 통, 표고버섯도 한 바구니...
마당에 심으려고 국화도 샀다. 요건 너도님이 기증하신 것이니 이름표 붙여드려야겠다.
간청재 마당에 진짜 정말 손바닥 만한 밭을 갈았다.
돌이 한 무더기 나왔다. 포슬포슬 고르고 거름 섞어 고랑도 만들고...ㅎㅎ
시금치 두 줄, 봄동 두 줄...
여름 내 맛있는 상추를 먹게 해 준 상추 밭에는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 있었다.
옆골짜기 수호천사 스님께서 무씨를 뿌려 놓으신 것이다.
지난번 왔을 때 무 심어서 겨울에 먹으면 맛나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일부러 들러서 상추밭에 무씨와 갓씨를 뿌려놓으셨단다.
참 살뜰하시고 인정이 넘치신다....
두 줄은 시금치, 두 줄은 봄동을 뿌렸다.
수호천사 스님께서 심어주신 무
싹 싹 싹이 났어요~ 또또 물을 주었죠~ 하룻밤 이틀밤 쉿쉿~ 뽀로롱 뽀로롱 싹이 났어요~
함양장에서 사 온 너도님 국화
국화를 심으니 너무 예뻐서 다음날 인월장에 가서 작은 국화를 더 사왔다.
수돗가 장독대 터에는 보라색 국화를 심었다.
기단 밑에는 노란 국화
오며 가며 인사드리는 마을 어른들이 뒷산에 가서 밤 주워 먹으라고 알려 주신다.
장대 메고 망태 들고....망태 대신에 깜장 비니루봉다리 들고 뒷산으로 갔다.
옥수수 살 때 얻었던 포대자루를 챙기자 사람들이 나를 비웃었다. 꿈도 야무지다며..
그러나 내려 올 때 그 포대자루에 밤을 넣어 메고 내려왔다.
밤 줍는 일은 사람을 정말 홀리는 일이었다.
밤은 따는 것이 아니라 줍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밤 나무 주변 반짝거리는 알밤들이 눈에 들어오면 정신 없이 주워 담으며 비탈길로 숲을 헤치며 따라가게 된다.
우리들은 땀을 흘리며 서로 이상하다고 했다.
별로 힘드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땀이 날까....
숲속에 떨어진 알밤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참 예쁘다.
밤 주우러 가는 길, 트럭에 사다리와 긴 장대를 싣고 올라가시는 동네 분을 만났다.
밤 쟁탈전이 벌어질까 내심 초조했는데 추자 따러 가신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는 호두를 추자라고 한다. 동종업계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호두를 저리 힘들게 따시다니...조심하셔요..
이미 많이 주워들 가신 흔적이 보였지만 그래도 알밤을 꽤 많이 주웠다.
수확물을 둘러메고 집으로....
밤을 주워와서 대충 벌레 먹은 것은 골라내고 씻어 두었는데 하룻밤 지내고 나니 벌레들의 흔적이 엄청났다.
눈을 부릅뜨고 하나하나 살펴서 버리고 잘라내고 거의 두시간 동안 얼굴이 노래지게 수습하고 나니
그 많던 밤이 요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ㅠㅠ
빨간 고추 말리기 ㅎㅎ
하늘은 더 파랗게 높아지고 마을 어귀에는 제법 감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주워온 예쁜 알밤과 마당에는 국화...그리고 어설픈 새로운 텃밭.
간청재에도 가을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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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이네요.
나이들수록 가을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저 노란 국화를 조그만 고추장단지에 두면 참 예쁜데...
국화도 코스모스도 한창이네요~
작은 고추장단지 같은 화병이 하나 있으니 나중에 국화를 꽂아볼게요 ㅎㅎ
산밤은 금방 벌래가 슬어요.
반 짜개서 볕에 말리셔요. 마르면 속껍질이 벗겨져요.
말려서 가루를 내서 죽. 아니면 불려서 밥에 넣던가.
묵까지는 넘 요원하니까.. 약밥할때도... ㅎㅎ 창원 사람 다 되셨네요.
아...여신님은 너무도 먼 경지에 계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