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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팔자에 없는 포도잼을.... 2018/11/21

by jebi1009 2018. 12. 29.

태어나 처음으로 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지리산 간청재로 오면서 태어나 처음 하는 일이 엄청엄청 많지만 그래도 잼까지 만들 줄은 몰랐다.

사는 환경이 완전 달라졌으니 그에 따른 일거리도 생소하고 낯선 것들이 많았으나

곶감을 깎아 넌다던가 고구마를 삶아 말린다던가 하는 일은 하고 싶었고 또 내가 먹고 싶어 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텃밭의 채소가 넘치면 아까워서 피클을 담거나 말리거나 하는 것. 오이피클 무피클 무청시래기 우거지 등등......

그거야 그렇다 치고 이번 포도잼은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나를 짖누르는 부담감 때문에 하루를 바쳐 만들게 되었다.


과일을 좋아하니 과일이 넘쳐나는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후숙과일들은 좀 곤란하다.

복숭아나 감 바나나 등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못쓰게 되므로 약간의 심리적 압박 때문에 욕심껏 사 놓지 못한다.

과일 사려면 면이나 읍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자주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저장이 가능한 과일들이 좋다. 대표적으로 사과, 귤, 오렌지...

포도도 나름 괜찮다.

포도철 포도 두 상자를 쟁여 놓고 맛나게 먹어 치웠다.

그런데 얼마 전 어찌어찌 꽤 많은 양의 포도가 생겼다.

역시 과일은 제철과일....감이나 사과가 땡기는 이 때 포도는 손이 가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수북히 쌓인 포도들이 내 마음을 짖눌렀다.

여름 한 철 냉장고에 차 있던 포도는 뿌듯함 그 자체였지만 초겨울 냉장고에 차 있는 포도는 압박이었다.

그러다 어느날...그래, 결심했어!!!

그러고는 잼을 만들기로 했다.


그냥 푹푹 끓여 만들고 싶었지만 포도는 씨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생전 잘 쓰지도 않았던 믹서기를 꺼냈다.

꺼내고 보니  '골드스타'가 뙇!!

간청재로 오면서 결혼할 때 가져온 텔레비전을 바꿨었는데 그때 버린 텔레비전이 골드스타였다.

그리고 우리집에는 골드스타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ㅎㅎㅎㅎ

골드스타 믹서기에 포도를 갈아 체에 걸러서 설탕 팍팍 부어 넣고 끓였다.







엄청 많을 것 같아 병을 4개나 준비했는데 꼴랑 2병이다.



옛날 엄마가 딸기잼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딸기를 몇 판 씩 사 와서는 커다란 솥에 넣고 긴 나무 주걱으로 연탄불 위에서 잼을 만들었다.

저녁 먹고 시작된 딸기잼 만들기는 피곤한 엄마가 잼 솥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잼이 튀어 엄마 팔뚝이 데이기도 했었다.

딸기잼 하면 그렇게 깜깜한 밤에 엄마가 마당에 연탄불 놓고 의자 위에 앉아 잼을 젖던 모습이 생각난다.

약간 검붉은 색의 되직한 딸기잼은 참 맛있었다. 빵에 발라 먹으라는데 엄마 몰래 그냥 퍼 먹었었다.

나는 지금도 술 안주로 가끔 잼을 퍼 먹는다,

딸기잼 속에 몽글몽글 딸기 덩어리가 걸리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요즘은 시판되는 잼들도 집에서 만드는 것처럼 잘 나오기 때문에 맛이 좋다.


나도 의자 놓고 앉아서 (물론 연탄불 앞은 아니지만)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잼을 저었다.

설탕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몰라 맛을 좀 봤더니 포도라 신맛이 강해 자꾸 더 넣게 되었다.

잼이란 자고로 달아야지....이러면서 말이다.

설탕을 줄였어요...달지 않아요....이런 거 별로다.

설탕 넣어 맛있는 것은 설탕 팍팍 넣고, 달게 먹어야 맛있는 것은 달게 먹어야 한다. ㅋㅋ

얼추 된 것 같아 병에 담았다.

더 졸여도 될 것 같았지만 너무 지겹고 구찮아서 불을 껐다.

처음 포도를 준비했을 때는 양이 많아 보여 잼 병을 4개나 준비했는데 담고 보니 꼴랑 2병...급실망이다...ㅠㅠ


어쨌든 팔자에 없는 포도잼도 만들어 보았고 냉장고도 가뿐해졌다.

용가리가 그런다.

'너는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뭐 사야 한다고 난리치고 또 장 봐서 채워 놓으면 나더러 먹어 치우라고 난리냐?'

냉장고는 참 이상하다.

비어 있으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고 채워 놓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풀리지 않는 냉장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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