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청재 내려와 3번째 김장을 했다.
김장이라고 해 봐야 배추 열 포기도 안 되는 수준...
그래도 여기 와서 처음 김치라는 것을 만들어 보게 되었으니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첫해는 매일매일 미친듯이 배추벌레를 잡아도 배추가 청경채 수준으로 작고 보잘 것 없었다.
그러다 한냉사를 만나 배추벌레를 매일 잡지 않아도 크고 튼실한, 즉 하얗고 노란 부분이 많은 배추를 얻어 환호하게 되었다.
올해는 배추와 무를 심는 시기가 늦어져 첫해와 두번째 해의 중간 수준의 작황이었다.
특히 무를 늦게 심으니 잘 자라지 않았다.
배추 모종도 비실거려 걱정했으나 다 살아 남았다.
그러나 크기는 천차만별....
남 부럽지 않은 배추도 한 두개 있었지만 손바닥 만한 배추도 여러개...
김장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텃밭에서 거두어들일 작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무언가 마무리가 되지 않은 엄청 찝찝한 느낌이다.
지난 주 면에 살 것이 있어 나갔다 오니 동네 배추밭이 비어가고 있었다.
어쩌지.....곧 추워지면 무가 얼텐데.....영하로 기온이 내려간다는 일기예보가 뒤따랐다.
동네에서 비어가는 배추밭이 늘어나니 나도 마음이 싱숭생숭.....
그래서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김장 플랜을 작성하고 금요일 과업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ㅎㅎㅎ
1. 11월 20일 쪽파
제일 먼저 타겟을 쪽파로 잡았다.
쪽파를 계속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아 김장 때는 쓰지 못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쪽파가 꽤 잘 자랐다.
그래서 쪽파를 사지 않고 텃밭에 있는 것을 쓰기로 했다.
쪽파의 하이라이트는 다듬는 것....ㅠㅠ
텃밭에서 뽑아 다듬는데 하루해가 걸렸다.
반은 김장에 넣고 반은 파전 부쳐 먹으면 딱이겠다.
2. 11월 21일 무
무가 잘 자라지 않았다.
땅 위로 솟아오를 만큼 자라야 하는데 딱 붙어서 있는 상태가 주먹 만한 무가 달린 것 같다.
작년에는 무가 엄청 잘 되어서 포탄 같다며 신기해하고 맛도 시원달콤....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무는 주먹 만한 것들 열 개 정도?
저장하는데 신경쓸 필요도 없겠다.
작년 무가 잘 되어서 나름 신경 써서 저장했는데 나중에 몇 개는 얼어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올해는 신문지도 비축했는데....
여기서는 신문지가 귀하다.
우체국 가서 포장 코너에 있는 신문지를 챙기니 직원이 나를 살짝 불러 신문지 한 다발을 주어 엄청 좋았었다.
그런데 신문지로 쌀 무가 없다...ㅠㅠ
세 개 정도는 채 썰고 두어 개는 석박지로 넣으면 나머지 두어 개는 그냥 냉장고에 넣어도 될 듯하다.
그래도 무청은 엮어서 널었다.
3. 11월 22일 배추
가장 할 일이 많은 날이다.
배추 우거지도 삶아야 하고 배추도 절여야 한다.
대충 김장 레시피를 보니 갓을 사야만 했다.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레시피를 선택해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들어가게 했다.
그래서 살펴보니 다 집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들이고(특히 만방에 자랑할 만한 태양초 고춧가루가 있으니) 갓이 없었다.
용가리에게 면에 가서 갓을 구해오라는 오더를 내렸다.
소주와 달걀과 함께 돌아온 용가리가 갓을 내밀었는데.....세상에나....
엄청 크고 튼실하고 키도 크고 다발도 두툼한 갓이다.
작년 갓은 좀 여리여리하고 너불거리는 갓이었는데 이번 갓은 정식 갓김치 담는 보부도 당당한 갓이다.
이런 갓을 김치에 넣는 것 맞나?
고민고민.....할 수 없지...나는 갓이 15줄기(레시피에 나와 있다)만 필요한데....
사실 좀 야리야리한 것 15줄기만 고르고 나머지는 솔직히 몰래 버리고 싶었다.
뭐 사실 몰래도 아니고 그냥 풀밭에 버리면 풀인지 뭔지 모르지만 말이다.ㅠㅠ
그래도 양심상 찔려 인터텟에 검색해 보니 그냥 김장 양념에 버무리라는 글이 있었다.
오~~ 그런데 귀찮은 것은 소금에 절여야 한단다....
절이고 씻는 것 넘나 귀찮다.
내일 양념 만들 때 절여놨다가 씻어야겠다고 크게 마음 먹고 큰 갓 다발을 다듬어 씻었다.
배추는 온통 파란 잎이다.
노란 잎을 머금은 배추는 두어 개....ㅠㅠ
파란 잎을 떼어서 우거지로 삶으려고 하다 보니 이러다 배추가 없어지겠다.
그냥 이번 김치는 파란 배추김치로 해야겠다.
솥 걸고 물 끓여 우거지 삶고 배추는 소금에 절였다.
배추의 기세로 보면 2박 3일 절여도 기죽지 않을 것 같다.
레시피에는 배추 한 포기에 소금 한 컴, 물 1리터...
우리집 배추는 크기가 들쑥날쑥해서 갯수로는 15개지만 7,8포기밖에 되지 않는 크기다.
그래도 작년 배추가 펄펄 살아 있었던 것을 감안해 소금 10컵 투척했다.
에라 모르겠다....
4. 11월 23일 굴 먹는 날.
아침 절여 두었던 배추를 살펴보니 대충 괜찮은 듯...
씻어서 건져 두고 고민거리 갓을 소금에 절였다.
그리고는 찹쌀풀 끓이고 마늘 양파 생강 갈고.....양념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루에 돗자리 깔고 세팅하니 택배차가 올라온다.
인터넷으로 여수 굴을 주문했다.
김장하는 날 돼지수육을 해야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힘들어 그냥 굴로 대체...
사실 이 날로 김장을 잡은 것은 굴이 도착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ㅋㅋㅋ
첫해는 양념이 남았고 작년에는 배추가 실해서 양념이 모자라고 김치통도 모자라 김치 버무리다 면에 가서 통 사오고 했었는데 올해는?
좀 남는 것 같았는데 갓이 생각보다 많아서 양념을 다 잡아 먹었다.
그러니까 양념도 딱 떨어지게 되었다.
김치냉장고도 없어 김치가 많으면 보관이 문제다.
작년에는 예상보다 많은 김치에 땅에 파 묻었다.
이번에는 그럭저럭 첫해와 작년의 중간 정도의 양이 나왔다.
맛도 좋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냥 뿌듯함으로 먹는 것이니 말이다...ㅎㅎㅎ
셋팅 완료!!
이렇게 속이 노란 배추는 딱 두 개...나머지는 다 초록색이다.
문제의 갓김치다. 생전 처음 집에 두게 된 김치 종류다. 어찌 될지 모르겠다.
색깔 한 번 죽인다. 뽀사시하고 먹음직스러운 김치는 아닌 듯....
그나마 먹어보겠다고 노란 속 뜯어내서 버무렸다. 김치통에는 진짜 파란 아이들만 있을 것이다....ㅎㅎ
나름 자축하는 의미로 달걀찜과 굴...굴 버터구이도 해 봤는데 맛이 꽤 괜찮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굴을 살짝 데쳐서 구워야겠다. 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
어디 못 가게 붙잡아 두었던 용가리는 옆에서 기타를 치다 이것 좀 치워, 이거 가져와....등등의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나머지 설거지도 깨끗이 완수하였다.
서로 자축하며 소주 각 1병....
갓 버무린 김치에 굴을 싸서 먹으니 꿀맛이다.
그렇게 냉장고에 김치를 넣고 비어버린 텃밭을 보니 마음에 평화가....ㅎㅎㅎ
이제 오롯이 겨울을 즐길 일만 남았구나!!!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2018/12/17 (0) | 2018.12.29 |
---|---|
꼬막 2018/12/08 (0) | 2018.12.29 |
팔자에 없는 포도잼을.... 2018/11/21 (0) | 2018.12.29 |
곶감 2018/11/17 (0) | 2018.12.29 |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2018/11/09 (0) | 2018.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