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도 끝나고 땔나무도 적당하고 보일러 기름도 채웠다.
잡목을 잘라 잔 가지를 정리하는 일도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그만하게 되었다.
바깥 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되자 집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그렇다 해도 안팎으로 살필 일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산골에서의 겨울 생활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다른 계절에 비해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따분하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고요하지만 꽉 찬 느낌? 이랄까....
설레고 들썩거린다는 꽃피는 계절 봄보다 오히려 더 들뜨는 느낌이랄까....
간단히 말하자면 겨울을 지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아궁이의 군불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구들방 이불 속에서 하루종일 나오지 않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누마루의 곶감을 따 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뜨끈하게 물 받아 놓고 반신욕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고
허리 어깨 등이 쑤시고 아픈 것도 모른 채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아궁이 군불에 고등어를 굽거나 고구마, 밤을 굽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저녁 반주로 소주 한 잔 하고 쨍한 찬 기운 느끼며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쏟아지는 별이나 예쁜 초승달을 보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펄펄 내리는 눈발을 보며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는 재미도 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어쩌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듣게 되면서 급 소설이 땡겼다.
까뮈의 '페스트'나 안톤 체홉의 단편'입맞춤'을 듣고 나니 '안나 카레니나'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팟캐스트에서 언급된 작가들의 소설을 빌렸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재미가 뿜뿜이다.
그냥 책만 들춰보려고 쪼그려 앉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었다.
몇 년 간 소설을 읽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싶지도 않았고 읽어도 짜증이 났다.
인문학이나 역사 책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다시 소설을 읽으니 확 땡긴다.
단 주의할 사항은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
소설 속에 같이 빠져서 그 기분이, 특히 우울한 느낌이 오래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쿠션 커버 두 개를 새로 만들었다.
지난번 것은 잘 모르고(물론 지금도 잘 모르지만) 너무 얇은 천으로 한 것 같아 조금 두툼한 천으로 다시 만들었다.
이제 바느질은 그만 하려고 하는데 천이 조금 남았다.
게다가 지금 쓰고 있는 베개 커버가 헤져서 찢어졌다.
지난번 광목천으로 만든 것이랑 번갈아 세탁하며 교체했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천도 남았겠다...다시 베개 커버를 만들어야 할 운명이다. ㅠㅠ
베개 커버에는 작은 꽃을 수 놓으려 하는데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힘드네...
그래도 음악이나 팟캐스트 들으며 수를 놓는 것도 한 겨울 꽤 괜찮은 놀이기기 때문에 기꺼이 한다.
아! 산책도 이제 겨울 놀이게 끼워주기로 했다.
올해 새롭게 등장한 놀이인데 해 보니 괜찮은 것 같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고민하지만 다녀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걷다보면 앙상하고 황량한 겨울 느낌이 참 좋다.
하루 종일 인기척 없이 조용한 산골에서
음악을 듣다 바느질을 하다 책을 읽다 뒹굴거리다 보면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
창 밖에 넘어가는 해가 보이고 해가 넘어간 방 안에 썰렁한 찬 기운이 느껴지면
나는 보일러를 틀고 용가리는 군불을 넣으러 나간다.
동그란 양은 밥상 마주하고 장날 사 온 두부에 김장 김치 얹어 소주 한 잔하고
읍내에서 어쩌다 사 오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한 통을 아껴가며 먹는 이 겨울밤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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