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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꼬막 2018/12/08

by jebi1009 2018. 12. 29.

날이 추워지면서 생각나는 먹거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굴은 얼마 전 김장 하면서 실컷 먹었고 그러고 보니 꼬막을 못 먹었네...

원래도 해산물이나 생선을 좋아하는데 산 속에 살면서 바다 생물들이 더 절절히 그리워진다.

장날 읍내에 나가도 싱싱한 해산물들은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해산물을 많이 먹었었다.

아빠가 좋아하기 때문에 엄마가 철철이 제철 해산물들을 밥상 위에 올려 놓았었다.

특별히 산지에 살지도 않고 서울 도심 한 복판이었는데도 싱싱한 해산물들을 먹었던 것 같다.

재래시장의 해산물 단골 아줌마도 기억나고.....엄마 따라 시장에 가는 것을 엄청 좋아해서 지금도 시장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생합, 개불, 해삼...그리고 무를 빼져 넣은 시원한 대구탕...미더덕이나 쏙(가재 비슷한 것)을 넣은 된장국....

대구탕에는 오로지 무와 대구만 들어가는데 한 손에는 무,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냄비 위에서 무를 살살 돌려가며 빼져 넣던 엄마가 생각난다.

빼져 넣는다는 말이 표준어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도마 위에서 써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을 우리집에서는 빼져 넣는다고 했다.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이 별 맛이 없었다.

특히 개불의 비주얼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개불은 그렇게 먹고 싶지는 않다...ㅠㅠ

그리고 백합 조개를 항상 생으로 먹었었다.

조개 뚜껑만 열어서 접시 위에 하얀 생 조개들이 놓여 있었는데 미끄덩거리고 별 맛도 없어서 우리들은 잘 먹지 않았었다.

물론 아빠는 좋아하셨지...


밥상 위의 최고 권력자는 아빠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먹는 방식도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예를 들면 팥 칼국수에 설탕 좀 넣어서 먹으려고 했더니 설탕 넣으면 맛 버린다고 못 넣게 한다던가

식혜를 만들 때 펄펄 끓인 식혜를 뜨겁게 한 그릇을 먹어야 한다던가

남들은 차가운 콩국수 먹을 때 뜨거운 콩국수를 먹어야 한다던가....

지금은 콩국수 하면 시원한 콩국을 떠올리지만 팥칼국수처럼 뜨거운 콩국에 국수를 넣어 먹기도 했다.

물론 차가운 콩국수도 먹었었다.

팥국수 콩국수 하니까 촘촘한 보자기에 넣어 주물러가며 걸러내던 엄마가 생각난다.

요즘은 오히려 팥이나 콩의 약간 거친 질감을 더 좋아하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정말 곱게 걸러내서 걸죽하지만 입에 씹히거나 남는 것이 없는 국물이었다.

당연히 국수는 반죽해서 밀었다.

생각할수록 우리 엄마는 대단했다.

콩이나 팥을 불려 삶고 갈고 걸러서 끓이고 반죽해서 국수 밀고.....

간단히 국수나 밀어 먹자고 하는 사람은 몇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개불에서 콩국수까지 와 버렸지만 어쨌든 미식가(?)아빠 덕분으로 어릴 때부터 먹어본 것들이 참 많은데

나이 먹어가니 그때 맛 없던 것들이 자꾸 생각난다.

지금 그때의 엄마의 밥상을 받는다면 정말 황홀할 것 같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먹어야 하니 인터넷으로 꼬막을 주문했다.

요즘 참꼬막은 없으니 당근 새꼬막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다음날 도착한 꼬막을 씻어 삶았다.


벌교로 여행 갔을 때 시장에서 꼬막 팔던 할머니가 기억난다.

벌교에서는 꼬막 잘 못 삶으면 쫓겨난다고...ㅎㅎ

그러면서 꼬막 삶는 법을 알려 주셨는데 지금은 인터넷에 여러 방법들이 다 나와 있다.

그런데 살짝 지역마다 집안마다 삶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어디는 처음부터 찬물에 꼬막을 넣어 삶으라 하고 어디는 끓는 물에 꼬막을 넣으라 하고 어디는 끓는 물에 찬 물 한 컵을 넣어 식힌 후 넣으라고 한다.

나는 벌교 시장 할머니가 알려 주신 방법에서 조금 더 삶는 방법을 택했다.

할머니는 끓는 물에 꼬막을 넣고 바로 뚜껑 닫고 불을 끄고 5분 있다 꺼내 먹으라 했는데 그러니까 맛이 너무 세다.

벌교에서는 그런 강한 맛이 없으면 꼬막 못 삶았다고 타박 받는다는데 우리에게는 비린 맛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끓는 물에 꼬막 넣고 바로 불을 끄지 않고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계속 둔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불을 끄고 뚜껑을 닫고 기다리면 한 대여섯개가 입을 벌린다. 그러면 냄비를 들어내고 소쿠리에 투척.

요 정도가 우리에게 잘 맞는 것 같다. 너무 비리지도 않고 쫄깃거리기도 하고....

어디는 꼬막을 삶을 때 한 방향으로 저어주라는데 젖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사실 잘 모르겠다.

벌교 할머니가 꼬막 까는 법도 알려 주셨는데 숟가락으로 조개 뒷면? 꼬리? 부분을 살짝 돌려 주면 꼬막이 잘 까진다.

지금은 인터넷에 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숟가락이 제일 잘 되는 것 같다.

벌교 시장 할머니를 만난 것은 10년? 15년?전인 것 같은데 그때는 무슨 비법을 전수 받은 것처럼 귀한 정보였지만 지금은 검색하면 좌~악 나오니까 적당한 방법을 고르면 될 것 같다.







꼬막을 삶고 냉장고 뒤져 두부 한 모를 꺼내 데우고 처음으로 김장 김치를 꺼내 보았다.

항상 신기한 것이 나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해 보지도 않은 사람도 인터넷에서 시키는 대로 하니 김치 비슷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두근두근~~떨리는 마음으로 김치통 열어 시퍼런 김치 하나를 잘랐다.

석박지도 꺼내고 얼결에 담근 갓김치도 꺼냈다.

먹어보니 우와~ 김치맛이 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좀 짜다.

작년 김장은 배추가 너무 살아 있어서 다음에는 소금을 더 많이 넣어서 절이자 결심했었다. 

올해 배추는 작년보다 기가 더 센 아이들이라 절일 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나보다.

그리고 양념 비율을 맞출 때 새우젓을 너무 꾹꾹 눌러 담아 좀 짠 것 같다.

그래도 맛은 뭐....내가 한 것은 다 맛있으니까 푸하하핫!


올 겨울 꼬막을 먹었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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