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가온건축 노소장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온은 우리집 간청재를 설계한 곳이다.
너무 산골이고 너무 작고 돈도 한정되어 있어 설계를 맡아줄까...걱정하며 그냥 한 번 보내나 보자 하는 식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너무도 친절하게 답장이 온 것이다.
게다가 집 지을 곳을 위성 지도로 출력해 보고 있다며 부담 없이 들러서 상담해도 좋다는 것.
또 반드시 자신들에게 설계를 맡기지 않아도 되고 그렇더라도 집 지으며 여러가지 의문점을 상담하러 와도 좋다는 것이다.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가온건축의 임, 노 소장님은 엄청 잘 나가는 건축가였다.
미디어의 힘은 놀라워서 여기저기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는 이런 작은 집은 짓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냥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보낸 메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가온건축 사무실을 찾았다.
그때가 태풍 볼라벤이 상륙해 집마다 유리창에 테잎을 붙이고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약속한 그 날, 이런 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에서 멀지 않은 사무실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거리에는사람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만이 불어대고 가게들도 다 문닫고 유리창에는 테잎들이 붙여져 있었다.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 내내 헛웃음이 나왔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소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정말 즐겁게 우리집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1년을 보냈다.
그러니까 설계 기간이 일년? ㅎㅎ
급할 것도 없고 정해진 날짜도 없었으니 꽃피는 봄이 오면 공사를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놀며 이야기하며 그렇게 설계 기간을 보냈다.
맥주도 마시고 LP바에 가서 와인도 마시며...
임, 노 소장님은 부부 건축가이고 우리와 나잇대도 비슷하여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게다가 집을 짓는다는 커다란 솜사탕이 마음에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 날들이었겠는가...
해마다 임소장님의 멋진 그림과 필체로 만들어진 연하장을 잊지 않고 보내 주시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안부도 전해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온에서 20주년 기념 전시회를 하는 중이라 했다.
노소장님의 말에 따르면 20년이나 끌고 온 자기들이 너무도 기특해서 갖는 전시회라 했다.
노소장님은 '너무 멀어 전시회 소식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나는 '너무 멀어 바쁘신 분들 한 번 오시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이러면서 언젠가는 꼭 보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난 후 사진 몇 장을 보내 주셨다.
가온이 설계한 집들을 병풍에 담아 전시를 했는데 간청재도 들어가 있다며 전시회 사진을 보내주셨다.
간청재는 매화를 보고 빗소리를 듣는 집이다.
看梅聽雨勸人茶
窓前明月請與家
매화꽃 바라보고 빗소리 들으며 벗불러 차마시니
창너머 밝은 달이 한식구 되고 싶어 하네
어젯밤 뒤척이다 잠시 잠이 깼는데 마루쪽이 환해서 혹 용가리가 텔레비전을 끄지 않고 들어왔나싶어 구찮지만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빛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달빛이었다.
뒷마당을 환히 비추고 있는 달빛이 너무 밝아서 광목 커튼을 통과해서 마루까지 환하게 비췄던 것이다.
커튼을 살짝 들고 뒷마당을 내다 보니 하늘에는 동그란 달님이 엄청난 빛으로 우리집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달빛에 책도 읽고 자수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다 일어나 한동안 넋놓고 그 빛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窓前明月請與家
어젯밤에는 정말 달님이 찾아와 한식구가 되고 싶어했다.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목적 받침대? (0) | 2019.01.11 |
---|---|
눈물차와 계란 후라이 (0) | 2019.01.04 |
겨울 2018/12/17 (0) | 2018.12.29 |
꼬막 2018/12/08 (0) | 2018.12.29 |
2018 김장 보고서 2018/11/27 (0) | 2018.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