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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2020

by jebi1009 2020. 1. 2.

얼마 전 서울에 일이 있어 갔다가 낙원상가에 들렀었다.

옛날 대학다닐 때 많이 들락거렸던 곳....내 악기도 이 곳에서 샀었다.

종로에 있던 중앙, 코스모스 악기사도 다 이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용가리가 기타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어해서 구경하고 손에 잡아 보기라도 하려고 간 것이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GIBSON 과 FENDER...

좌 FENDER 우 GIBSON 이라고....

나야 내가 좋아하는 지미페이지가 깁슨을 썼고 에릭 클랩튼이 펜더를 썼다는 정도만 알 뿐...

용가리는 펜더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갖고 싶어했지만 역시 가격이...ㅠㅠ

여기 저기서 중고 기타 몇 번 잡아 보고 명함 받고 나왔다.

나는 확 질러버리라고 들쑤시기도 했지만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 와서 꼬박 하루 동안 집중해 기타 줄 모두 갈고 청소 싹 하고 튜닝도 새로 하고...

이렇게 1년 쯤 쓰다가 다시 발동 걸리면 그때 다시 시도하기로....


조금 시무룩해 있는 것 같아 휴대폰 구입을 촉구(?)했다.

지금 쓰는 휴대폰 배터리가 영 맛이 가서 계속 스트레스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터리만 교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여러가지 생각해 보면 그것이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인지 의문이었다.

2019년 마무리하면서 하나 건지라고 들쑤셨다.

1년에 한 번 정도 자신만을 위해 조금 과한 지출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읍내 휴대폰 매장에 문의하니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

용가리는 그러려고 했지만 나는 마음 먹었을 때, 지금 나가서 사야 한다고 그냥 오늘 살 수 있는 모델 중에서 사라고 했다.

128기가는 당장 살 수 있지만 64기가보다 7만 원 정도 더 비쌌다.

나는 그냥 128기가 사서 풍족하게 쓰라고 했다.

용가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64기가로 하고 색상 선택을 포기하기로 했다.

오후 4시에 물건이 도착한다고 해서 오후에 읍내로 나갔다.

그리하여 2019년 마지막날에 용가리는 새 휴대폰을 장만하게 되었다.

아마도 1주일 후에 구입하기로 했다면 하루 이틀 지난 후 있는 거 조금 더 쓰지 뭐...했을 지도 모른다.

휴대폰 세팅하면서 '이렇게 오래 썼는데도 아직도 배터리 100프로야!' 이러면서 신나한다. ㅋㅋ




2020이다.

만화같은 숫자가 실제 상황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미래소년 코난'이 2008년 배경이고

내가 어릴 때 보던 만화는 아니지만 대충 낯이 익은 '우주의 원더키디'는 바로 2020이 배경이다.

'은하철도 999'가 2221년이 배경인데 정말 그 날도 올 것만 같다.

홍콩이 반환될 줄은 몰랐고 2000년대라는 것이 올 줄도 몰랐으니 말이다....

2020이 되어도 해저 도시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우주 열차, 로봇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제는 이런 것들이 더 이상의 선망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이제는 멈추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수준에서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이제 그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0억 가진 사람이 100억 더 벌 수 있는데 10억에서 '이제 그만'

1억 가진 사람이 10억 더 벌 수 있는데 1억에서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해가 바뀌는 순간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뱉어낸 많은 말들이 남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그 말들이 실은 내 자신을 찌르는 말이었는데 나는 모르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내가 당연하게 갖고 있는 시각들이 알게 모르게 자기중심적인 면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이제 세상은 변하고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이래저래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모순덩어리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이제는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애쓰지 말고 쿨하게 인정하고 나의 못남을 더 날카롭게 끄집어내고 반성하자.

그래서 용가리와 나의 2020 중심어는 '겸손'으로 정했다.

더 낮추고 더 비우고 더 겸손해지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우주열차는 없지만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2019 많이 힘들고 분노했지만 마지막에 2020을 여는 선물이 되었다.

나쁜 놈들은 벌받고 억울한 사람 만들지 말고 불의한 일에는 분노하고 정의로운 일에는 박수를 보내며 작게나마 동참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용가리는 새 휴대폰과 함께 2020을 맞이했고 나는 읍내에서 산 고급진 아이스크림 한 통과 함께 2020을 맞이했다.

용가리와 함께 3번 복창한다.

겸손! 겸손! 겸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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