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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쫄보

by jebi1009 2020. 2. 11.

며칠 전 내가 즐겨 이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가 살균소독제를 판매하는 포스팅을 봤다.

그런데 그 포스팅 내용 중에 '신종 코로나, 우한폐렴..걱정 많으시죠?'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한폐렴? 아니 WHO 권고 사항도 있고 정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명명하고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그렇게 명하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써야 하나?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류의 매체 빼고는' 신종 코로나'로 쓰고 있는데 왜?

계속 거슬리고 찜찜했다.

나는 이 사이트를 통해서 주로 구매하는 식자재들이 있다. 게다가 지리산으로 오면서 아주 유용한 사이트가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썼을 수도 있는데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확인하고 실망했을 때는 이 사이트 이용이 어려워지는데 그러면 어찌하나?

대충 뭉게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넘어가려니 웬지 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 내가 뭐 이 사이트 아니면 사 먹을 데가 없겠냐....다시 찾으면 또 괜찮은 사이트가 나오겠지...존심 구기지 말자...

고객센타로 전화를 했다.

우한폐렴은 WHO 권고 사항에도 위배되고 질병 관리 센타에서 쓰는 용어도 아닌데 그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표기하면 되지 않느냐...

전화 받은 담당자는 의외로 '아 알겠습니다. 담당 부서에 연락해서 수정하겠습니다.'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엄청 쫄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까봐 심장 벌렁거리면서 전화했는데 준비했던 말을 대부분 할 필요 없이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몇 분 후 확인하니 우한폐렴은 삭제했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계속 이 사이트를 이용해서 식자재를 사도 되는 것이 넘나 좋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내가 주로 사용하는 와인 구매 사이트에서 행사 알림 문자가 와서 들어가 내용을 보게 되었다.

역시 마스크와 관련된 행사였다.

행사 중인 와인을 구매하면 마스크를 사은품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폐렴으로 악몽과 같은 날을 보내시죠?' 이런 문구가 있었다.

일단 이런 일을 이용해서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 것도 맘에 안 드는데 굳이 '우한폐렴'?

하....이 사이트도 끊어야 하남?ㅠㅠ

사실 술 종류는 인터넷 구매가 까다로워서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는 매장에 등록해서 택배로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리산에 와서 택배 와인 구매 뚫느라고 좀 힘들었다.

게다가 이 매장은 규모가 커서 일년에 두 번 큰 할인 행사를 하는데 거기서 대부분 쏠쏠한 것들을 골라서 구매하는 편이다.

이 사이트를 제낀다면 당분간 안정적인 와인 구매는 힘들 것이다.

금요일 늦게 확인한 사항이라 어차피 주말에는 전화가 되지 않으니 일단 미룰 수 있었다.

전화 할까? 말까?  정말 하기 싫다....뭐 그럴 수도 있지...와인 사는 것이랑 뭔 상관이람?

아이고 찜찜해라....주말 내내 찜찜...

월요일 오전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했더니 고객센터 전화가 연결 안 되는 번호로 나온다.

이건 하늘의 뜻이야...그냥 전화하지 말자...

그런데 홈페이지 옆에 본사 전화번호가 떡하니 있는 것이다.

어쩌지?ㅠㅠ 본사 전화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이건 하늘의 뜻이야...그냥 넘어가자...

다음날 오전에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 뒤지며 놀고 있는데 또 속에서 스멀스멀  그놈의 우한폐렴이 떠오르는 것이다.

전화 연결이 안 될거야...그러면서 전화를 눌렀는데 떡하니 연결이 된 것이다.

얼떨결에 이불 속에서 홈페이지 우한폐렴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이번에는 저쪽에서 '우한에서 발병한 것이니 우한폐렴이라고 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됐죠?'이러는거다. 하....

' WHO권고사항...초반에는 용어 정리가 잘 안 되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언론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하고 정부와 질본에서도 그렇게 명명하는데 왜 굳이? 혹시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쓰신 것인가요?'

사실 그렇게 의도와 의지가 있다면 그냥 알았다고 하고 그 사이트를 즐겨찾기에서 지우고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아닌데 어디서 전화하시는 건가요?'

'저는 그냥 개인인데요...와인 사 먹는 손님이요...행사 와인 싸게 나온 것이 있나 보려고 들어왔다가 좀 불편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요..'

그러면서 쓸데 없이 말을 주절거렸다.

꺼리게 되거나 혐오를 줄 수도 있다...전부 폐렴 증상을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도 바른 표현은 아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그럼 참고만 하고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인가요?'

'아뇨..수정하겠습니다'

'네..수고하세요...'

얼떨결에 이불 속에서 나누게 된 대화다.

역시 잠시 후 확인하니 '우한폐렴'은 삭제되었다.

주말 내내 찜찜하고 그냥 덮고 가고 싶은 마음이 뻥 뚫렸다.

사실 내가 좀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그냥 전화하지 말고 사이트 이용을 안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니 그냥 막 내가 꿀리는 것 같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러는 것이다.

물론 내가 남을 가르치려 한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었다. 그저 그런 표현을 거슬려한다는 것,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솔직히 의도를 갖고 그렇게 썼다면 뭐....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쓴 것이 더 기분 나쁘고 짜증난다.

게다가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더 짜증난다.

그냥 사람이 좋고, 물건이 좋고, 좋은 게 좋은 거고...이제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있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곳 지리산에 와서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 어떤 철학, 종교 예술도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전화를 할 일이 없었으면 정말정말 좋겠다. 이런 찜찜함과의 밀당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보다 엄청 쫄보다...쫄보인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그냥 넘어가지도 못하고...하...이런 내가 너무 싫다.

용가리도 며칠 동안 전화 때문에 끙끙대며 자신을 괴롭히는 내가 싫단다...ㅠㅠ


** 어제 엄청 감동적이며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봉준호!!! 어쩜 그렇게 쫄지도 않고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촌스럽지도 않고 공격적이지도 않으면서 여유있고 뼈가 있고 유머가 있을까!

참고로 나는 봉준호와 동갑이다. 내가 살았던 그 시간에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사람이라니! 연속 느낌표!!

그냥 내가 다 배가 부르다...ㅎㅎㅎ

예뻐서 갖고 있었던 포스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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