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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안 맞아 ㅠㅠ

by jebi1009 2019. 12. 31.

며칠 전 내가 갑자기 말했다.

'아...박물관이나 미술관 가고 싶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드냐?'

용가리가 이상한 듯이 쳐다 보며 물었다.

자기는 평생 그런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1도 해 본 적이 없단다.

'그럼 그대는 어디 가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없어? '

'별로'

'그래도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생각해 봐'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미국에 있는 아주 큰 철물점에 가고 싶다.'

'뭐?'

나는 빵 터졌다. ㅎㅎㅎ


우리는 서로 그랬다.

정말 비슷한 곳이 한 군데도 없구나...어쩜 이렇게 다를까...그리고 이렇게 다른지 모르고 어떻게 25년을 살았을까...

내년이면 결혼 25년이다.

그렇게 오래 산 것 같지 않은데 25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도 않다.

서울에서 살 때는 서로 맞는다 안 맞는다 그런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박터지게 싸운 적도 많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산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 행동이나 생각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싸우고 삐지고 이런 정도...

사건이 생기거나 기분이 틀어졌을 때 싸우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맞는다 맞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그냥 마음에 들지 않고 화가 나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있었을 뿐이었고 또 그 순간이 지나가면 별 일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지리산 내려와 살고 보니 내가 몰랐던, 아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결론은 우리 둘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생활 패턴도 일 처리 방식도 모두 다르다.

나는 맵고 짜고 거친 음식을 좋아하고 용가리는 부드럽고 순한 음식을 좋아한다.

빵을 먹어도 나는 껍데기 딱딱한 부분을 좋아하고 하얗고 보드라운 속은 용가리가 좋아한다.

국이나 찌개도 나는 청양고추와 고춧가루 팍팍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용가리는 맑은 국물을 더 좋아한다.

나는 잡곡이나 콩, 팥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간 밥이나 떡을 더 좋아하는데 용가리는 하얀 쌀밥이나 하얀 가래떡 절편을 더 좋아한다.

나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 이런 것들을 거의 주식으로 먹지만 용가리는 국수 수제비 라면을 거의 주식으로 먹는다.

나는 익지 않은 생김치를 더 좋아하지만 용가리는 익은 김치를 더 좋아한다.

용가리는 내가 좋아하는 홍시, 곶감, 고구마 말랭이 이런 것들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과일도 별로 먹지 않았는데 요즘은 내가 먹을 때 하나 씩 먹기는 한다.


일을 시작할 때도 나는 일단 시작하고 이리저리 수정을 하는 편인데 용가리는 생각을 엄청 많이하고 착수하는 스타일이라서 시작하는 것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혼자 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일을 같이 할 때는 항상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종이 한 장을 들어도 서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방향이 반대다.

이불을 내다 널 때도 서로 방향이 부딪쳐 한 번에 널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말로 먼저 말하고 함께 움직인다. '니가 이쪽 잡고 이쪽 방향으로 움직여'

일 순서도 반대로 생각해서 내가 망치를 가져 오면 용가리는 톱질을 먼저 하려고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내가 중요하게 정리하는 것을 용가리는 보지 못한다.

반대로 용가리가 중요하게 정리하는 것이 내 눈에는 안 보인다.

그래서 목욕탕 청소할 때 각자 열심히 하지만 상대에게 지적질할 곳이 꼭 생기는 법이다.

내가 안방 이부자리에서 베개의 위치나 이불의 각도를 바로 잡아 놓으면 용가리는 대충 뭉게버리고

용가리가 하루종일 창고에서 정리했다며 나에게 뿌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나는 도통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때가 많다.


이렇게 말하자면 끝도 없는데 내가 정말 신기한 것은 근 25년 간 살면서 이런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서울에서는 왜 몰랐을까?  어쩜 모를 수가 있었을까?

정말 몰랐다. 정말 몰랐기 때문에 더 신기하다.

그저 싸우면서 왜 저래? 어쩜 저럴 수 있지? 이러다가 그래 다음에는 더 신경쓰지 뭐 이랬다.

그리고 대충 잘 맞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구나...몰랐네....새록새록 느낀다.

앞으로 25년을 더 살고 나면 지금 몰랐다고 한 것들이 원래 알고 있었다고 다시 생각이 들까?  뭔 말이래? ㅋㅋㅋㅋㅋ

하여간 안 맞아~~~~






이번에 벼르고 벼르다가 옻칠 수저 두 벌을 구입했다. 

기존에 쓰던 옻칠 수저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어서 벗겨지고 좀 험한 꼴이 되었다.

수저를 바꾸려고 한참 전부터 꼼지락거렸었는데 가격 때문에 눈팅만 하다가 확 질렀다.

역시~~ 오래 써도 험한 꼴이 되지 않을 듯^^

앞으로 이 수저로 밥 먹고 술 마시면서 또 얼마나 싸울 것인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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