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케잌을 먹는 날 정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이번 생일에는 김장하고 어쩌고 하느라...게다가 날씨도 음산하고 추워서 맛난 것 사다 먹자고 들뜨지도 않았다.
그래도 읍내 가서 케잌은 하나 사 와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케잌은 역시 옳다! ㅎㅎㅎ
용가리가 나름 생일상도 차려 주었다.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달걀말이와 슬쩍 나가서 가져 온 고구마...
구들방 군불 땔 때 넣었나보다.
거기에 와인 한 잔.(사실 한 병 ^^;;)
내 생일 선물은 내가 준비했다.
책 두 권을 주문해서 받았다.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일단 책이 깔끔, 예쁘고 책장을 넘기는 질감도 괜찮고 책 냄새도 좋다....
활자도 너무 촘촘하거나 너무 헐렁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겨울을 나와 함께 지낼 것이다.
도올의 마가복음을 넘겨보니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레고리우스가 갑자기 생각난다.
성서를 처음부터 문학적인 책으로 읽었던 사람
성서를 마치 한 편이 긴 시나 동양적인 소나타의 한 장처럼 대하는 사람
그레고리우스가 성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신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에 대한 실망과 놀라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제자
그런 제자에게 '시적 진지함보다 더 진지한 진지함도 있을까?' 라고 물었던 그레고리우스...
사실 나는 모태신앙 크리스찬이다.
하지만 성서를 읽은 적은 없다.
물론 몇 구절이나 몇 장 정도는 교회를 다니면서 신의 말씀이라는 지극히 교회 성직자의 관점으로 읽었었다.
하지만 성서의 짦은 구절을 놓고 전해지는 강단의 내용은 별 감흥도 없었고 의문도 많았고..암튼....그랬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나는 크리스찬이다.
도올의 마가복음을 보는 순간 성서에 대한 욕구가 확 생겼다.
마구 설렌다...ㅎㅎ
형평을 맞추기 위해(?) 반야심경 이야기도 함께 구매했다.
내 주변에는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이 지금은 더 많다.
예전에도 교회에 가는 횟수보다 사찰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았다. 물론 사찰에는 놀러...ㅋ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 가지 않은 적도 많지만 초파일에는 꼭 사찰에 가서 놀았다.
서울에서는 오랫동안 봉은사 초파일에 가서 놀았었다.
딸아이 어릴 때 작은 연등을 사 주면 그렇게 예쁘다고 좋아했었다.
광덕사 변소에서 똥 누다가 변솟간 종이가 반야심경...그 한 자 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깨닫게 되었다는...
프롤로그부터 마구 땡기는 책이다.
간청재 안방에 걸려 있는 반야심경...몇 년 전 서각하는 항우아저씨에게 구입한 것이다...예뻐서...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다르게 보이겠지?
아주 마음에 쏙 드는 내 생일 선물이다.
혹 끝까지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쉽게 쓰셨다고는 하지만 도올이 쉬운 것과 내가 쉬운 것은 다르니까...ㅠㅠ
하지만 그저 끼고만 있어도 좋은 것이 바로 '책'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