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해지는 하루의 시작이다.
하루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이래저래 잠을 이룰 수 없어 뒤척이다 이제야 나왔다.
아무리 부당함을 외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달려들어도 결국에는 판사들이 휘두르는 판사봉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예전에는 법원 판결이란 그저 존중한다....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그랬었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라고도 생각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기 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들쭉날쭉한 판결에 혼란스러워지고 판사들의 이름도 알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을 원님이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들이 있다.
현명한 판결을 내린 원님이야기가 주로 나오는데 생각해 보면 얼마나 엉터리 억울한 판결을 내린 원님들이 많기에
마땅히 현명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판결을 내렸다고 전래동화에도 나오는 것일까....
돈이 많던가 아님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해 대던 온갖 패악질에 피해를 당한 무지랭이 백성이 억울하여 하소연한다고 원님을 찾았지만 오히려 곤장만 맞고 쫓겨나는 이야기...그래서 나중에 좋은 원님이 부임하여 억울한 백성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
억울함이 한이 되어 귀신으로 원님에게 나타나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그만큼 판관의 일이 귀신으로 나타날 억울함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집안을 통째로 파괴하고 그 영혼까지도 탈탈 털어버릴 수 있는 자리다.
캄비세스 왕의 재판도 생각난다.
고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는 부정을 저지른 판관 시삼네스를 끌어내려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내린다.
또한 캄비세스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다음 판관으로 세우고 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판관의 의자에 앉힌다.
벨기에 브뤼헤시의 공식 화가인 제라르 다비드가 시청사의 의원 집무실에 걸어둘 목적으로 주문을 받아 그린 두 폭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 옛날 사마천도 '바늘을 훔친 자는 주륙을 당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고 말했다.
표창장이 마약 3킬로보다, 별장에서 성폭행한 것보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도망치고 거짓말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다.
블랙박스를 지우고 휴대전화를 전자렌지에 돌려버리고 법원 컴퓨터를 디가우징한 것은 증거인멸이 아니라면서
있는지 없는지도 입증할 수 없는 노트북이나 그대로 직접 갖다 받친 컴퓨터 하드를 가지고 증거인멸이라고 하는 판단을 보고 있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다.
이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쳐 보아도 그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것들의 소란이라 치부하며 코웃음치고 있는,
수십년 간 견고하게 카르텔을 형성한 언론, 검찰, 법원 집단을 보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다.
한 가족에게, 팔순 노모를 비롯한 그의 모든 가족에게 연쇄 살인범보다 더 지독한 증오를 내뿜고 있는 이 세상이 무섭고
그 공포와 증오를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하다.
당분간 강물은 여전히 깊이깊이 흐를 것이다
당분간 푸른 들판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각자 각자 잘 살아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해도 달도 날마다 뜨고 질 것이다
하늘은 하늘은
이라고 묻는 내 생애도
당분간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당분간 / 최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