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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손님접대

by jebi1009 2020. 4. 25.

간청재 이사오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개 한 마리 키우라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미리 인기척을 알려 준다거나 고라니 등등의 야생 동물 접근도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대부분의 집에서는 개를 키운다.

하지만 용가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한 몸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다른 생명체를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 하나 딸린 것으로 내 에너지는 다 소진한 것 같다....ㅠㅠ  그냥 존재 자체로도 말이다....

게다가 섣불리 정이라도 붙이면 그 뒷감당은 어찌한단 말인가.

돌아다니는 강아지는 잘 볼 수 없지만 고양이들은 꽤 많이 돌아다닌다.

육수 내고 남은 멸치를 누마루 밑에 놓아 두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사라지는 멸치를 보면 조금 귀찮아도 고양이들이 먹을 만한 것이 생기면 누마루 밑에 놓아두게 된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인지 아님 그냥 길고양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집에 단골로 드나드는 고양이가 있다.

처음에는 여러 마리가 드나들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눈에 익은 고양이만 드나들게 되었다.

아궁이에서 생선을 굽거나 지인들의 방문으로 뒤뜰에서 고기를 구울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별 일 없이 그저 들러서 쉬다 가기도 했다.

아는 척을 하거나 쳐다 보기만 해도 예민하게 도망가던 녀석이 이제는 오히려 나를 지그시 바라보거나 살짝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정도로 능청스러워졌다.

햇살 좋은 날에는 툇마루에 자리 잡고 한 잠 늘어지게 자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 앉아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창고에서 커피를 볶고 있으면 슬며시 나타나 나를 놀래키기도 하고 내 옆 멀찌감치에서 나와 함께 천왕봉을 바라보기도 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는 툇마루에 올라와 저녁 먹는 우리를 빤히 쳐다 보고 있어 미안한 마음에 커튼을 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안면이 트이니 그 고양이가 나타나면 그냥 맨 입으로 보내기가 미안해졌다.

육수 만들고 남은 멸치가 아닌 새 멸치를 내어 준다거나 소시지나 참치캔 같은 것들도 주게 되었다.

녀석은 주로 딸아이가 와 있는 동안에 고급지게 잘 먹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것들을 주다가 드디더 지난번에 고양이 사료를 샀다.

평생 처음 해 보는 일이 또 하나 생겼다. 고양이 사료 구입. ㅎㅎ

고양이 밥을 사 놓고 기다렸는데 어쩐일인지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누마루 밑에 육수 멸치를 내다 놓아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으니 슬쩍 걱정이 되었다. 뭔 일이 생겼나....

그랬는데 어제 그 녀석이 나타났다.

일을 끝내고 창고에서 장화를 벗는데 창고 앞으로 슥 나타난 것이다.

나는 얼른 고양이밥 봉지를 들어 입구를 가위로 잘라 개봉했다. 그리고 누마루 밑에 가서 부어 주려고 하는데 녀석은 슬쩍 몸을 피하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거나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다급하게 그게 아니라 나를 따라 오라고, 이리 오라고, 사료 봉투를 보여 주며 말했다.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신기하게도 녀석은 창고 앞에서 누마루까지 나를 따라 왔다.

내가 움직이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반대로 피했는데 이렇게 따라오는 것은 처음 본다. 신기~~

누마루 밑에 밥을 조금 부어주니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먹다가 나중에는 앞발을 그릇에 넣고 먹는다.

찬찬히 살펴보니 얼굴도 그렇고 꼬라지가 좀 안 좋아진 것 같다.

용가리에게 고양이 밥 줬다고 말하니 나가 살펴 본다.

밥을 조금 남기고 갔다며 역시 행색이 안 좋아졌다고 걱정한다. 안 본 사이 확 늙은 것 같다고....

어쨌든 밥도 사다 놨으니 당분간 손님 접대에 좀 신경써야겠다.



툇마루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요 며칠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나가서 일한다고 꼼지락거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빨래를 해서 널었더니 어찌나 빨래들이 격하게 날리는지 저러다가 천왕봉 꼭대기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바람 부는 날은 밖에 있으면 싸대기를 마구 맞는 것 같아 정신 없이 얼얼하다.

그래도 고사리 꺾고 정신 없이 불 피워 삶고 널었다.








모종 심을 때가 되어서 장에 가서 샀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아직 심지는 못했다.

전에는 사 오면 바로 심었는데 종묘상에 물어보니 며칠 두었다 심어도 상관 없다고 했다. 물만 주면 된다고...

작년에는 바람부는데도 바로 심어야 하는 줄 알고 사와서 바로 심었다가 모종 몇 개가 꺾여버려 다시 사 와서 심었다.

며칠 지났는데도 바람이 잠잠해지지 않는다....창고에 두었던 모종들이 잘 있나 매일 살피고 물도 주고 있다.

오늘은 창고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 문을 열고 입구에 내다 놓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예쁜 화초들 같다.ㅎㅎㅎ

빨리 땅으로 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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