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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부추

by jebi1009 2020. 4. 10.

부추에 문제가 생겼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파릇파릇 올라와 귀중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부추다.

간청재에 이사오면서 이웃 둥이네가 토종부추를 분양해 주어 만 4년이 넘도록 아주 잘 먹고 있던 부추다.

부추는 해마다 씨를 따로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주지 않아도 뿌리가 살아 있어 계속 먹을 수 있는 아주 고마운 채소다.

게다가 벌레도 타지 않고 고라니도 먹지 않고 강하고 튼튼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뽕나무의 오디와 더불어 내가 아주 예뻐하는 아이다.

이번에도 역시 부추는 파릇파릇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끝 쪽의 부추는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부추가 꽤 많이 올라와 이제는 첫 부추를 끊어 먹을 시점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부추 이랑의 길이가 짦아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었다.

끝 쪽 부추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올라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점점 그 넒이가 넒어지는 것만 같았다.

파란 부추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

엊그제 부추를 작심하고 잘 살펴보니 끝 쪽 부추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쪽부터 벌레가 먹기 시작해서 계속 부추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세상에나....한 번도 보지 못한 까만 애벌레 같은 것이 부추에 달라 붙어 있었다.

그것들이 부추의 파란부분은 아주 남김 없이 먹어치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부추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올라오는 족족 먹어치운 것이다.

끝 쪽부터 먹어치우기 시작하니 점점 부추 면적이 줄어드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벌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징그럽게 생긴 까만 애벌레다.

고민 끝에 일단 자라난 부추는 전부 잘랐다.

그리고 용가리가 토치로 부추 밭을 태웠다. 물론 벌레를 없애기 위해서....

자세히 보니 그 벌레들이 엄청 많았다. 부추를 그렇게 야무지게 먹어치우는 벌레...처음 보는, 처음 듣는 경우다.

토치로 한 번 그을렸지만 그래도 벌레는 땅 속에서 계속 나오는 것 같다.

다시 고민하다가 부추밭을 옮기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부추는 옮겨심기를 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하고, 아무 때나 옮겨심기를 해도 된다고 하니 당장 부추를 파내기로 했다.

부추는 뿌리가 엄청 튼튼해서 호미나 이런 것으로는 잘 안 되고 삽으로 그냥 파내야만 했다.

엉켜져 있는 부추 뿌리가 마구 잘려 나갔다. 할 수 없었다...ㅠㅠ

처음에는 엉킨 뿌리들을 잘 나누어서 옮겨 심으려고 했으나 상황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충 잡아 뜯어서 심는 수밖에...

다른 곳에 부추 자리를 마련하고 엉킨 뿌리를 그나마 잘 나누어 심었다.

처음에는 신중하게 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서 그냥 덩어리째로 심어버렸다.

일단 한 이랑만 옮겨 심었다. 나머지 한 이랑은 옮길 곳도 마땅치 않고 토치로 일단 진정을 시켜놨으니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까지 살핀 결과 그 까만 애벌레는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으~~징그러~~~ㅠㅠㅠ

아침마다 용가리가 계속 토치로 지져주고는 있는데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파서 없애버려야 할 듯...

그리하여 내가 그렇게 이뻐하던 부추 두 이랑은 분해되었다. 그리고 부추의 미래도 알 수 없다..ㅠㅠ



밭에서 캐낸 부추들. 부추 뿌리가 엄청나다.



새로운 곳에 이랑을 만들고 뿌리를 나누어 심었다.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사위도 안 준다는 첫 부추. 하지만 첫 부추가 마지막 부추가 될 수도 있겠다. ㅠㅠ




이곳에 살면서 해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예상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작년에 잘 됐다 싶으면 이번에는 영 꽝이고, 반대로 작년에는 영 꽝이었던 것이 기대도 안 했는데 잘 되기도 한다.

꽃도 만찬가지다.

작년에 만발해서 별 신경도 안 쓰고 있던 것이 올해는 한 송이도 안 올라올 때도 있다.

수레국화도 해마다 꽃씨를 뿌리고 신경 써서 이제는 자리를 좀 잡았다 싶었는데 올해는 영 올라오는 것이 없다.

작년에 만발했던 자리에 쑥이랑 잡초만 올라오는 지경이다. 왜 그럴까? 똑같이 해 준 것 같은데...

고사리도 알 수 없다.

지난 몇 주 동안 열심히 풀 뽑고 살펴 봤던 고사리밭에서는 고사리가 영 올라오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아래 땅의 작은 정글 같은 고사리 밭에는 생각지도 않게 통통한 고사리가 올라왔다.

기대 만땅인 고사리 밭에서는 고사리가 없고 별 기대도 않던 곳에서는 통통한 고사리라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펴 보러 왔다가 이게 웬일?   얼른 가서 바구니 가져와 끊었다.






어쨌든 얼떨결에 첫 부추, 첫 고사리를 얻게 되었다.

바람이 엄청 부는데도 불 피워 고사리 삶아 널었다. 앞으로 고사리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항상 용가리는 나보고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순간순간 애가 타기도 하고 한숨도 나고, 가슴이 벌렁거리며 설레기도 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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