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다가 두번째 밤을 새워봤다.
한 번은 오대산에서 술 먹다가 희뿌옇게 먼동이 트는 것을 보았고,
이번 뜨개질 하다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뜨개질 코와 싸우다가 먼동이 트는 것을 보았다.
너도님의 꼬임에 빠져(?)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용가리가 그렇게 부르짖는 실용성 있는 뜨개질을 하기로 했다.
오로지 중딩때 가정시간에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엄청난 작품(내 보기에는)을 뜨기로 한 것이다.
코잡기, 겉뜨기, 안뜨기는 생각 났다. 신통방통 ㅎㅎ
사실 코바늘뜨기를 시작해서 허접스러운(?) 방석, 주머니, 담요 등등을 뜨게 된 것도 우연히 뜨개질 책을 보고
'아니 정말 요기 그려진 대로 시키는 대로 하면 이렇게 된단 말이야? 아니기만 해 봐라..'
이런 심정으로 뜨기 시작했다. 근데 신기하게 정말 그 모양이 나왔다. 완성작의 크기는 좀 달랐지만..
어쨌든 코바늘은 코가 하나니까 아님 말고..심정으로 틀리면 죽 풀어버리면 된다.
근데 대바늘은 코가 줄줄줄 꿰어 있어 한번 풀면 그것을 다시 꿰어야 한다.
게다가 나 같은 초짜는 바늘을 빼고 코만 돌돌돌 있으면 공포심이 밀려온다.
코 빠뜨릴까봐...또 규칙성을 깨는 무늬 같은 것이 있으면
나 같이 전체 흐름을 읽지 못하고 실의 꼬임을 알지 못하면 뭐가 코인지도 햇갈린다 ㅠㅠ
너도님께 실을 받고 무늬 도안과 전체 크기를 알려주는 도안을 받고 간단한 강습(?)을 받았다.
집에 와서 꾸역꾸역 뜨기 시작했다.
너도님이 '요 무늬가 요렇게 된 곳에서 시작하고 어쩌고..'할 때는 어..어..했지 진정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와서 해 보는데...
뜨는게 문제가 아니라 뜨고 난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이 문제다. 회로가 안 잡혀 있으니...
그래, 일단 도안 보고 기호 대로 공식 대로 뜨자.
아홉번 뜨고 한 번 겹치고 한 번 뜨고....다음 줄은 일곱번 ..이러면서 열심히 코를 세가면서 떴다.
그래...이거야 딴 거 없어 여기 그려진 대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거야..쉽네 뭐..
근데 아주 작은 부분은 그렇게 세어가면서 해도 되지만 백코 가까이 되는 것을 여러번 반복해서 뜨는데
어찌 틀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게다가 잠시 한 눈 팔면 어디까지 했는지 햇갈리고 꼬이고..
결국 미친듯이 코를 세다 한코가 늘어나거나 빠져버린다.
그러면 어디서 그랬는지 눈 뜬 장님이라 찾을 수 없으니 맞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풀어버린다.
근데.....바늘을 죽 뽑고 풀 수가 없으니(무서워서) 양쪽에 바늘을 쥐고 한 코 풀고 한 코 옮기고..이런 식으로 푼다 ㅠㅠ
이러니 한 이십분 뜨고 한 시간 풀고...나중에는 정말 화가 나고 열이 받아서 멈출 수가 없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는 심정으로 풀고 뜨고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날 샜다.........................ㅠㅠㅠㅠㅠ
용가리와 주희가 아침에 나를 보고
'아니 잠 안잤어? 진짜 너 미쳤구나 미쳤어..제정신이냐?'
'엄마 어제 내가 잠들기 전에 뜬 것보다 더 줄어들었어.'
그렇게 날밤을 새는 뻘짓을 하고 나니 뜨개질의 꼬임이 보이고 무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였어....숫자 세는 것은 또라이 같은 짓이지..이렇게 보면서 하면 되는구나..바로 이거야..
요기가 중심코니까 앞 뒤코 한 번씩 감아주고..또 한 코씩 늘여가고..어쩌고...
이제는 틀려도 무서워 뽑지 못했던 바늘을 좍 뽑아 줄줄줄 풀 수 있게 되었다.
코를 보고 다시 바늘에 꿰어 넣을 수 있으니..ㅎㅎㅎ
이제 나도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구나 그래 틀리면 좍 풀고 다시 하지 뭐..이제 다 보인다 보여..
이러면서 신나했다.
그. 러. 나.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될리가!!
무늬와 코를 잘못 읽는 불상사가 생긴다.
덜렁대며 기둥코를 한 칸씩 옆으로 잡아 무늬가 옆으로 다 밀린다..오 마이 갓!
아차 하며 대충 보면 그렇게 잘못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또 풀고 뜨기를 반복 ㅠㅠㅠ
그렇게 고난의 시간을 보내다 이제 다시 터득했다.
그래 처음부터 숫자만 세는 것도 안 되고 내 눈만 믿고 감으로 떠서도 안 되고
눈으로 전체를 살피면서 확인사살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눈으로 보며 감으로 중심코와 무늬를 짐작하고 무늬가 다시 시작되는 부분이나 잘리는 부분에서는 코를 세어 확인해 주는 것...
그러다 보니 내 나름의 공식으로 도안의 규칙성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만큼을 늘리고 줄이는지..
그리고 이만큼 개고생을 하다 보니 배짱도 생겨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하는 부분(꽤 많이 떴는데 도대체 어디서 코가 빠졌는지 아무리 눈 빠지게 찾아도 찾지 못할 때)에서는 기냥 표 안 나게 확 없애버리기도 했다. 딱 한 번ㅎㅎㅎ
처음에는 조금만 이상해도 다시 다시를 반복했지만 이제는 뒤꼭지가 좀 땡기기는 해도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정도 파악해서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틀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잠시 한 눈 팔면 귀신 같이 틀린다.
자만하면 안 된다. 잘난척 하면 꼭 틀린다.
뜨개질을 하다 보니 뜨개질이나 세상 사는 것이나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무조건 공식대로 원칙대로 숫자 암기하듯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져야 바르게 제대로 사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넷..한 번 겹치고 그 다음 감아주고..또 다음단 하나 둘 셋 넷...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빡빡하게 주어진 공식에서 숫자를 세어나갔지만 마지막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했다. 모든 것을 다시 다시..
그러다 그 공식에 코 박고 다시 다시를 반복하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공식이고 도안이고 다 집어치우고 내 눈으로 크게 보기 시작했다.
아..무늬가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여기에서는 이만큼 건너 뛰어야 하는구나..
숫자를 세지 않기 시작했다. 그냥 눈으로 감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공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숫자만 세었던 도안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내 나름의 공식으로 이해한 도안이 생기는 것이다.
너도님이 건네준 도안은 처음 받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내가 그것을 읽는 눈은 달라졌다. 이제 처음 그 도안을 이해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보여지는 것이다.
내 삶에서 내가 받아든 도안도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의 과정은, 내 운명은 똑같을 것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은 달라졌다.
내 눈으로 내 감으로 보면서 내 나름의 공식으로 이해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내 삶을 반 넘게 떠버렸으니 조금 몇 코가 틀렸더라도 다시 확 풀지 말고 티 안나게 대충 뭉개보기도 해야겠다 ㅎㅎ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개성 있는 무늬가 완성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또 하나, 잘난척 하면 꼭 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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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살다 새운 두 밤에 다 관련되어 부렸네.
부러.. 제일 어려운걸 시켰지. 안되는 수학문제 낑낑거리다 일단 접고
더 어려운 문제 풀고 나면 아까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걸 확 깨닫게 되는것처럼...
그러네요 ..세번째 날밤을 새워볼까요?ㅎㅎ
밤을 새셨으면 가속도가 붙게 달인의 경지로 향하겠네요.
그런데, 문장을 읽고 전혀 이해를 못했다는...
독해력이 모자라요.
huiya님 같은 고수는 이해 못하실 거여요 ㅎㅎ
저 같이 띨띨한 사람만이 경험하는...
지가 좀 난해하게 썼네요..그냥..뜨개질 안에 작은 우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