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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엄마는 무직 2013/06/04

by jebi1009 2018. 12. 25.


       


  용가리가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는 딸내미 사진. 세살 때 첫 여권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저 미간에 잡힌 주름..
인상 한번 죽여준다. 요놈은 어렸을 때 잘 웃지 않았다. 웃는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세상에 나온 것이 불만이었남?

딸내미 학교에 다녀왔다.
그래도 일년에 한 번 담임샘 얼굴은 한 번 보자는 취지에서...
딸내미 학교는 학부모들도 학생 못지 않게 엄청 열심(?)이라 학기 시작하고 6월이 되어서야 학교 문턱을 넘는 학부모는 아마 내가 마지막일 듯 싶다...
담임샘은 수학샘이고 젊고 화사하고 이쁘고...
상대하는 아이들이 그러니 샘도 순수한듯..과거의 나 처럼 찌들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
담임샘을 만나본다 한들 딸의 진정한 학교생활은 알 수 없을 것이고
단지 요놈이 생활하는 모습을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대충 감 잡아 보려고...
딸아이는 내가 보기에도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한다.
예중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일반중에서 진학한 아이는 약간 걱정했었다.
'야 걱정마. 엄마가 국악에 있어봐서 아는데 예술하는 애들 디게 순둥이야...니가 일진먹을 수 있어..'
용기를 북돋워줬더니
'엄마가 되어가지고 학교에서 일진먹으라니..쯧즛..' 했었다.ㅎㅎ

역시 잘 생활하는 듯 했다.
'처음에 저는 예중에서 올라온 줄 알았어요..'
기죽지 않고 잘 사나부다..
그러면서 아이가 쓴 자기소개서를 보고 빵 터졌다 하신다.
자기소개서에 부모님 뭐 하시나..이런게 있었는데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무직. 이렇게 썼단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는 주부..이렇게 쓰는데 무직이라고 썼더라구요 ㅎㅎ'

'아 네...정확하게 표현했네요. 무직 맞아요 ㅎㅎ'
(집에 와서 이야기하니 '백수'를 무지 순화시켜 쓴 것이란다)

'자기가 진학하고 싶어하는 대학을 쓰는데도  전교에서 유일하게 서울대와 서울시립대를 썼더라구요..
보통 1학년 때는 애들이 꿈은 커서 서울대 홍대 이대 이렇게 쓰거든요. 애들은 우리나라에 대학이 이렇게 세개밖에 없는 줄 알아요 ㅎㅎ 학년이 올라가면서 좀 바뀌지만.. 근데  시립대를 쓴거예요..아 학비 때문이구나 했지요'

'아..네..제가 사립대는 비싸서 못 보내고 대학 가려면 국공립대만 된다고 했거든요. 서울에서 국공립대 가려니 그랬나봐요 ㅎㅎ 지방 국립대도 많은데..어떻게든 서울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ㅎㅎ'

뭐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고 잘 지낸다니 됐고 궁금한 거 없냐고 하는데 궁금한 것도 없고 해서 십분 만에 상담(?)을 마치고 달콤한 마카롱 한 상자 커피와 드시라고 전해 드리고 왔다.

우리는 항상 아이에게
너에 대한 지원은 대학 생활까지가 마지막이다. 그 이후는 해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을 것이고 지금 벌어 놓은 돈으로 죽을 때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우리 쓸 것도 없다. 그래서 시골 가는 거다..
그리고 재수는 안된다. 재수하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 돈으로 차라리 생활의 기반을 닦아라..
아님 시집을 먼저 가든가..
돈 들여 대학 공부까지 시켰는데 홀랑 시집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면 돈 아끼게 시집을 먼저 가라
그리고 니 남편한테 니 대학교 학비 대라고 해라...

이렇게 세뇌를 시켜 놓아 우리 딸은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많다.
내가 그림을 하면서 구차하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지리산에 집을 지으려고 결심했을 때 그때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해야만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용가리랑 둘이 이야기하면서 집 파는 이야기를 하니까
옆에서 우리랑 상관 없이 딴 짓하고 있던 놈이
'엄마 꼭 팔아야 해? 이 집 나 주면 안돼?' 하는 것이다..
'이걸 널 왜 주냐? 이거 팔아 너 대학 보내고 우리 먹고 살아야지..'

수월암 가서 스님과 집 짓는 문제로 이야기 나눌 때
작게 지으려고요..우리 죽고 나면 물려줄 사람도 없고 ..사회에 환원하던가..코딱지만한 시골집 환원하니까 웃기네..
하니까 옆에서 상관 없이 엎드려 그림만 그리더니
'엄마 그 집 나 주면 안돼?' 하는 것이다.
스님은 지금도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때 이야기 하신다 ㅎㅎ
요놈도 급했던 거다..지 앞가림 할 것 찾느라..서울집이 안되면 시골집이라도 어떻게 ㅋㅋ

딸에게 그랬다.
대학공부가 끝나면(나는 굳이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본인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 살 길 찾아야 한다. 근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고 엄청 힘들 것이다...너무너무 힘들면 지리산 엄마에게 와라. 그러면 밥은 먹여준다.
고향의 넓은 어머니의 품..뭐 이런거 떠올리며 폼 잡고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용가리가 그런다.
' 하루쯤은 니 엄마가 밥 해 줄 것이다. 근데 한 3일 지나면 너 엄청 구박할껄..그리고 막 일 시킬 것이다..
그러니 세상 풍파에 지쳐 포근한 엄마품이 그리울 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오는 게 좋을 것이다 ㅎㅎㅎ'
생각해 보니 용가리 말이 맞다.
처음에는 감상에 젖어 힘들고 지친 자식이 찾아오면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고 솥에 불때서 따뜻한 밥 해 먹이고...
뭐...한번쯤은? 그러나 곧
야 뒹굴대지 말고 나가서 풀 뽑아..니가 밥 좀 해서 엄마 좀 줘라....이럴 것 같다 ㅎㅎ

난 딸아이가 결혼한다면 지리산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자 요놈은 호텔에서 떡 벌어진 결혼식을 올리겠단다.
하기사 꿈 많은 여고1년생은 블링블링한 결혼식을 꿈꿀텐데 시골집 마당에서 국수 삶아 잔치하자니...
'내가 특별히 사돈 어르신들은 우리 집에서 재워줄게..니 친구들은 밑에 생태마을 있거든 거기서 자면 돼. 깨끗하고 좋아...'
'너 결혼식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아까운데..그냥 날리는 거야..근데 그 돈 아껴서 니 생활비 하면 얼마나 실속있고 좋으냐..우리집 마당에서 하면 내가 비용은 댄다..'
용가리가 그런다.
'근데 그게 우리 맘대로 되냐? 사돈집에서 싫다고 하면 안되지..'
내가
'그러니까 사위될 놈을 데려다 세뇌를 시켜야지..내가 맨날 술 먹이면서 정신교육시키면 자기 부모 설득하겠지 뭐'
딸내미가 듣고 하는 한 마디
'헐...'

어쨌든 딸아이도 스무살이 되면 우리와 떨어져 살아야 하고 공부를 마치면 살 길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게다가 부모에게서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굳세게 힘차게 세상을 잘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1. 너도바람 2013/06/04 16:07

    난 스님하고 친하게 지내 종혁이 수월암 마당에서 결혼해라해야겠다.
    혹 안되면 창원마을 집 마당 임대해주셈.
    말과 행동이 똑같은 녀자 제비~~
    아주 오래전 제비를 잘 몰랐을때는 설마, 쟤가 말만 그렇지, 라고 생각할뻔한적도 있다는...
    왜?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니까...

    • 너도바람 2013/06/04 17:59

      근디 마카롱이 뭐여? 어제도 누가 마카롱 먹었다 하고, 오늘도 마카롱 얘길 하니.. 난 너무 무식해. ㅠㅠ 다음에 검색해봤더니 무슨 빵 나오던디...

    • 제비 2013/06/05 18:13

      종혁이 수월암에서 결혼 시키려면 스님보담 며느리를 잘 구슬려야...힘들껄요 ㅋㅋ

      마카롱은 달걀 흰자와 설탕으로 만든 과자? 빵?
      엄청 달아요...지가 한 번 사드릴게요

  2. 먹방지기 2013/06/07 09:28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잘 지내시지요?
    어제 너도님과 같이 도공네엔 다녀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지리산에 집 완성되면 당호는 한 점 써 드리지요.
    물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너도님이 글 한 점 써 달라고
    협박같은 부탁을 하겠지만서도...

    어제 우리 마누라 아들친구 엄마가 점심 한턱 쏴서 먹고 왔는데,
    심기가 편치 않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전교 5등한 기념으로
    한턱 쐈다나... 어젯밤 늦게 학원 갔다온 아들에게 폭풍 정신교육을 시키더라고요.
    불쌍한 놈, 제가 조용히 애 방에 들어가서 그랬죠.
    "지금이라도 공부가 취미가 아니면, 딴 길을 찾아도 아빤 아무렇지도 않다.
    대신 비싼 학원비 계속 쏱아붇지 않게 빨리 결단을 내줬으면 좋겠다."

    • 제비 2013/06/10 18:22

      아드님 친구 어머니는 그냥 전교5등한 아들이랑만 맛난 것 먹을 것이지 뭐하러 남까지 챙겨서 남의 집 귀한 자식 힘들게 한단가요....

  3. 알퐁 2013/06/10 17:21

    집 마당에서 하는 거 좋아요. 전 셋집 마당에서 ^^ 밤새 미싱 돌려서 웨딩 드레스랍시고 만들어서 다음날 입었어요. 물론 지금도 갖고 있구요.

    • 제비 2013/06/10 18:24

      우와~~~정말 멋져요...
      담에 그 웨딩드레스 블로그에 한 번 올려 주셔요..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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