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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봉암사 매화

by jebi1009 2022. 2. 20.

지난가을 동안거 들어가시기 전 봉암사 스님을 뵈었을 때 커튼 말씀을 하셨었다.

여름날 책상 뒤에 있는 큰 창에서 햇살이 너무 강해 가리개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노는 손에 바느질 며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창문 크기를 재서 적어 왔었다.

천을 사고 재단해서 커튼을 만들었다.

창 크기가 우리집보다 넓어서 나름 큰 작업이었다.

자수를 무얼 넣을까 고민하다가 요란한 것은 싫어하실 것 같아 '벼룩나물'야생화를 양쪽 끝에 두 개씩 넣었다.

엊그제 동안거 해제하셨으니 인사도 드릴 겸 커튼도 달아 드릴 겸 봉암사에 다녀왔다.

커튼 봉을 구입해서 가져갈까 했지만 대나무로 하면 예뻐서 여쭤 보았더니 좋은 장대 있다고 하셔서 그냥 갔다.

그런데 그 대나무 장대가 길이가 좀 짧았다.ㅠㅠ

다림질해서 멋지게 달아 드리고 오려고 했는데 아쉽....

챙겨간 다리미로 다림질해서 벽에 대충 걸어 놓고 용가리가 챙겨간 공구도 그냥 가져왔다.

나중에 스님께서 오죽 장대 구해서 달아 놓는다 하셨는데 예쁘게 달아 놓으실지 솔직히 의심이..^^;;

자수 무늬도 오른쪽 왼쪽 구분해야 하고 벽에서 조금 띄워 장대를 달아야 하는데 대충 하실 듯...ㅠ

어쨌든 커튼 보시고 엄청 좋아하셨으니 폼나게 걸고 기념 촬영은 못했지만 다행이다 싶다.

 

동암에 들어서는데 매화향기가 확~~~

박남준 씨가 꺾어와 꽂아 놓은 매화 가지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 그렇지... 매화 필 때가 되었구나...

간청재는 아직 한겨울 황량한 모습인데 화사한 꽃망울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자연은 정말 묵묵히 책임을 다 하는구나... 떠들지도 않고 보아 달라고 다투지도 않고 말이다.

 

 

매화향기 진한 방에서 스님이 내어 주신 향긋한 차를 마셨다.

박남준 씨 차는 봉지부터 향이 난다.ㅎㅎ

 

 

광주 이철수 씨 판화전에 다녀오셨다고 하시면 책을 주신다.

너 주려고 사인도 받아 왔다.... 우와...

이철수 씨는 참 오랫동안 어쩌면 그렇게 생활 속에서 꾸준히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것일까...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감성과 눈을 가졌나 보다.

 

책 안쪽에 써 주신 사인(?) 왼쪽 대나무 그림이 참 좋다.

 

뒷산 무덤처럼 산다 하고 지낸 지 좀 되었습니다.
오고가는 손님을 막지는 못하지만 
굳이 오라 가라 하는 일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 속에서 시끄럽게 견디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말로 어수선한 관계도, 마음에 이는 소란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바깥 조건에 휘둘리는 제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한심한 일이지요.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 어리석어서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자연이 그러겠어요?
어느 무덤이 찾아오는 사람을 가리겠어요?
뒷산 무덤이 웃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심하고 어리석은....

간청재 마당 바로 옆 비탈에 있는 무덤이 나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매화를 보고 무덤을 보고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물론 이런 뉘우침도 오래 가지 못하는 한없이 가볍고 촐싹거리는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잠시 마음속에 물그릇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마당에 나가보니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매화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달렸다.

나도 매화나무 가지 몇 개 물에 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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