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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투표, 라클렛 치즈, 산불

by jebi1009 2022. 3. 5.

<어제의 일기>

 

사전투표일이다.

사전투표를 위해 면으로 나갔다.

드레스코드를 위해 옷장을 뒤졌지만 파란색 외투가 없다.

아쉬운 대로 목도리 장착, 남색 치마와 남색 신발을 신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한들 면에서 보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도 못할 것이다.ㅠㅠ

이곳은 경남 산골이다.

 

용가리는 파란색 패딩과 청바지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투표 마치고 나오니 용가리가 기다리며 묻는다.

'동그라미가 삼분의 일이 안 찍혔어... 순간 멘붕 와서 한 번 더 찍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느라..'

그리고는 찾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유효표다.

남들은 밭 갈고 몇 명 성공했다고 서로들 격려하고 힘을 주는데 나는 한 명도 갈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절실한 마음이기는 하지만 그 정신적 충격과 심리적 실망과 앞으로의 인간관계 가족관계를 생각하니 시도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옛 동료에게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말미에 살짝 운을 뗐다가 충격받아서 내내 우울했었다.

물론 우리 엄마 한 명은 확실하게 잡아 두었지만 말이다...

용가리 말하기를,

'너는 니 성격에 밭 갈라고 하다가 오히려 반감만 사게 만들 테니 시도하지 말아라...

그리고 백병전에서는 너 한 몸 살아 남는 것도 큰 일이니 너무 낙심하지 말아라...'

절실한 쪽이 이긴다.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절실하고 간절하다. 제발~~~

 

 

딴지 마켓에 주문한 라클렛 치즈가 도착했다.

파리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 ㅋ

치즈 굽는 기계도 주문할까 했으나 내가 저것을 몇 번이나 사용하며 또 어디다 둘 것인가...

그래서 치즈만 주문해서 집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마누라 잘 만난 줄 알아..나 아니었으면 이런 거 어디서 먹어보겠냐...'

마구 생색내며 맛나게 먹었다.

삶은 감자를 곁들여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용가리도 대 만족!

 

 

 

와인과 치즈 맛있게 먹고 뜨끈한 구들방에 들어가 휴대폰 보며 놀다가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옆 골짜기 둥이엄마의 전화였다. 이 밤중에...

마을 방송 못 들었을 것이라며 지금 산내 방향 금대 쪽으로 불이 벌겋게 보인다고, 주민 대피령 내릴지도 모르니 옷이라도 입고 있으라는 전화였다.

너무 놀라 밖으로 나가보니 붉은 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한 바람에 불냄새가 실려왔다.

아래 흙집 아저씨에게도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 용가리가 전화를 했다. 아저씨 집 창에도 불이 켜졌다.

일단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대피하면 뭘 가져가야 하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나는 신분증? 속옷? 이러고 있고...

12시가 넘어 텔레비전을 켜 보니 여기저기 산불이 난리였다.

이곳 산불도 잠깐 언급되었다.

둥이엄마의 카톡이 왔다.

일단 벌건 불기운이 보이지 않고 대피령도 없을 것 같다고... 밤새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잠들기로 했다.

우리 생각해서 알려준 둥이네가 너무 고맙다...

산불 대피령이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오늘 아침 어제 꺼내 놓은 가방과 벗어 놓은 옷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가방 안에 그래도 집안에 있다는 금부치(딸아이 돌반지 2개와 결혼반지)와 은행 통장이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잠시 허탈했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없어도 그만인 것들...

밖에는 황사 섞인 강풍이 계속 불고 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는 아직도 산불이 타고 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냥 원래 있었던 상태인데 우주의 물질들이 알 수 없는 우연으로 결합해 생명이라는 것이 나왔다. 그러니 생명이 이상한 것이지 죽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정확치는 않지만 알릴레오 북스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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