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 글은 울퉁불퉁한 마음을 평평하게 만들어 준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담론]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다시 읽었다.
읽다 보니 '양심적인 사람'이 마음에 남는다.
강화학파와 양명학을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지식인의 자세에 관해서 이야기하신다.
그러나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학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를 아울러 포용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강의를 끝마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양심은 관계를 조직하는 장場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量을 준거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양심은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 형태의 관계론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또한 가장 연약한 심정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감옥에 있었던 20년 동안 문득문득 생각이 났던 6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출소 후 수소문하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 생각과는 달리 그 사람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제도권 정치인이 되거나 교수, CEO 등등..
20년 전 치열했던 모습들이 아득한 비현실로 다가오고 학생운동이란 그런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꾸준히 그 길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함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념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의 권유를 외면한다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으로 남을 것 같아서 참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였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일리의 일몰을 바라보며 갖게 되는 확신과 감동도 많은 위안을 주었다.
곤륜산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물 사태가 사막 한가운데인 염택에서 지하로 자취를 감추고, 지하로 잠류하기 또 몇 천리, 청해에 이르러 그 모습을 다시 지표로 드러내어 장장 8,800리 황하를 이룬다.
이 이야기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 해방 직후 연희대학에서 가진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의 환영식에서 소개한 한대漢代 장건張騫의 시적 구상입니다. 널리 알려저 있지는 않지만 강화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화로 찾아든 학자 문인들이 하일리의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황하의 김 잠류였으며, 일몰에서 일출을 읽는 내일에 대한 확신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황하의 오랜 잠류를 견딜 수 있는 공고한 신념, 그리고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담론] - 23강 '떨리는 지남철'
양심적인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황하의 오랜 잠류를 견딜 수 있는 공고한 신념,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