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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산삼 로봇

by jebi1009 2022. 3. 20.

월말 김어준을 듣다 '산삼 로봇'에 팍 꽂혔다.

살짝 감동적이기도 했다.

내가 산골 내려와 살면서 농사를 지어 이윤을 보고자 하는 마음은 없으나 주변에 크고 작은 농가들이 있으니 알게 모르게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에피소드에 귀가 쫑긋....

 

독문학과 영어교육을 전공한 처자가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고 자아를 찾기 위한 유럽 여행 도중 헝가리 기차역에서 만난 이탈리아 남자와 인연이 되어 결혼도 하고 로봇도 만들게 된다....!

심바이오틱 이보영 대표와 지안마리아CTO 두 사람의 이야기다.

지금의 남편의 집이 있는 이탈리아의 농업을 보고

'왜 우리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왜 우리 농촌은 저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농사는 그저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이어야만 할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나도 유럽, 특히 북유럽 쪽으로 여행을 할 때 농촌(어촌도 마찬가지)을 보면서 참 풍족하고 여유 있는 모습, 깔끔하게 정돈된 농가의 모습에 놀라고는 했다. 역시 '왜 우리나라 농촌은 이렇게 안 되는 거지?' 했었다.

이보영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탈리아 농촌은 평일에는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만 농사를 해도 될 만큼 노동력이나 시간 면에서 여유 있고 풍요롭다고 했다.

그런 농촌을 우리나라에는 왜 안 되는 것인지 알고 싶어 시아버지가 하는 사회 농장에서 3년 간 일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세 가지 분야의 전공이 로봇과 관련된 엔지니어이고 당시는 구조로봇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농사에 필요한 로봇으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결국 남편과 한국으로 와서 산삼 로봇을 개발하게 된 것.

왜 산삼 로봇인가?

평지가 대부분인 이탈리아와 달리 우리나라 농촌 지형은 산지나 개간지가 많아 이왕이면 제일 힘든 지형에서 경작하는 산삼을 택하게 된 것. 게다가 산삼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기도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산에다 삼 씨를 뿌려 재배하는 산양삼은 말 그대로 산속에다 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일일이 해야 하고 위험하기도 하단다. 그리고 사람을 쓰고 싶어도 일단 쓸 사람이 부족한 상태.

파종과 제초 물 주기.. 등을 모두 로봇이 할 수 있단다.

어떻게 풀을 뽑냐고 하니 산삼과 다른 모습의 풀을 학습시켜 정말 잡초만 뽑는단다. 사람이 가기 힘든 험지에 가서 그 부분만 물을 주기도 하고.. 우와~

실제로 평창에 땅을 사고 10년 동안 로봇을 개발하며 농사를 지었다.

산삼뿐만 아니라 일반 밭작물도 하는데 꽈리고추, 들깨, 콩을 했다고 한다.

꽈리고추가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인데 1ha 농사를 남편과 단 둘이서 로봇을 이용해 이틀에 1톤씩 수확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쓰면 50명을 써야 하는 일이란다.

실제 그런 농사 결과를 본 마을 농사짓는 노인들이 '이거 얼마냐?'라고 물어보며 감탄했단다.

 

AI무인 트랙터, AI무인 운반차, 대형 연무 드론, 배터리, 콘크리트를 이용하지 않는 스마트 온실을 개발하고 상용화에 들어갈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농사를 하면 수확물을 나르는 것이 정말 큰 일이고 힘이 든다. 파종과 수확에 필요한 사람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

무인 운반차가 사람을 따라다니며 그 수확물을 운반해 줄 수 있단다. 중요한 것은 밭에는 두둑과 고랑이 있어 그 유격을 잘 타고 균형을 잡아주는 서스펜션을 개발해서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하지 않고 산악형 지형도 탈 수 있단다.

(이 지점에서 김어준 왈, 아이언맨 스타크가 한국 여자에게 걸려서 평창 산골에 들어와 기술 다 털리고 있다고..ㅋㅋㅋ)

또 드론 같은 경우도 놀라웠다.

지금도 드론을 이용해서 농약 살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드론은 양쪽에 20리터, 40리터를 탑재할 수 있는 대형 드론.

농사할 때는 약통을 채우고 다시 하는 것도 정말 일이다. 배터리도 15분 정도 사용할 수 있게 직접 개발..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해충들이 정말 영리해서 약이 살포되면 잎 뒤로 숨었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는데 이 드론은 잎을 뒤집어서 살포한단다.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전기 자극을 통해서 그렇게 한단다. 우와~~

그러면 약 사용량도 줄일 수 있어 친환경이 가능하다고... 

 

처음에는 농사 로봇이라고 해서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말 농사를 짓고 사람과 함께하는 안전성도 시험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자신은 농업 후계자 지정되었다고..

이렇게 만들어낸 로봇들의 성과도 놀라웠지만 내가 진짜 감동한 것은 그들의 신념이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았다.

둘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모든 것을 했다.

자신은 영어 강사, 남편은 코딩 강사, 돈이 정말 없을 때는 주말 고속도로 휴게소 옆에서 커피도 팔고 남편은 산불 감시원 일도 했단다. 정부 프로젝트 두어 개 받아서 충당...

그리하여 1년에 100대 생산할 수 있게 준비 완료, 시장 진출을 앞둔 상태라고 한다.

특허 출원을 하고 모든 것이 준비될 때까지 철저하게 보안도 유지했단다.

기술 유출과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걱정이어서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으로서는 극도로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힘들었지만 민간투자는 거절하고 자체적 대량생산 플랜 abc를 다 세워 놨다고 한다. 정말 감탄!

 

초기 투자 거절 이유를 말할 때 참 감동적이었다.

'이 로봇은 우리의 삶이다.

이 로봇이 실제로 농업 현장에서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투자유치를 해서 기업의 이익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것을 예상했다.'

 

월말 김어준의 이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심바이오틱'을 검색해 보니 찾을 수 있었다.

이야기도 듣고 기사도 찾아보면서 농촌의 문제, 농사의 문제 해결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대량 생산된 로봇을 지자체에서 대량 구입해 농민들에게 임대하면 될 것이다.

드넓은 양파밭이 생각났다.

줄 지어 넓은 밭에 쪼그려 앉아 양파를 심고, 무거운 양파망을 옮길 사람이 없어 며칠씩 밭에 두어야만 하는 일..

로봇이 할 수 있다!

또 산간 다랭이 논에도, 사과밭에도 로봇이 할 수 있다.

농촌을 살리는 일은 그저 농촌 수당을 주는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농촌에 가서 살면 기본 소득을 지급하자는 말도 농촌 살리는 한 방편으로 나왔던데

그 말을 듣고 용가리랑 그랬다.

'그래 농촌에서는 젊은이들도 적은 돈으로 살 수는 있지.

그런데 뭐 하면서 살아? 다들 카페 하나? 우리 동네만 해도 뭐 하면서 살아?'

의식주가 해결되어도 할 일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다 농사지으라고 하나? 아무리 젊은이라고 해도 농사로 수익을 내려면 한 두 명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로봇이 있다면 젊은이들도 농사를 직업으로 삼기 쉬울 것이다.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이 바로 농촌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서 살짝 설렜는데 글을 쓰다 보니 현타가 왔다.

다 물 건너간 이야기 아닌가....

지금부터 5년 간 농촌이고 뭐고 다 개박살 날 것이고 또 그 뒤로도 한 5년은 개박살난 것 제자리 찾느라 지나갈 것이고...

내가 죽기 전에 우리 마을에 심바이오틱 로봇이 들어오게 될까??

나도 빌려 쓰고 싶다. 아님 구입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지금 꼬라지를 봐서는 별 희망이 없는 듯하다. 꿈 깨자. 좋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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