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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번잡아..ㅠㅠ

by jebi1009 2022. 8. 16.

지난 토요일 오전, 커피 내리고 있는데 용가리가 급하게 불렀다.

뒷마당 쪽을 보면서 빨리 와서 보라는 것이다.

마루에서 내다보니 번잡이 뒤로 아기 고양이들이 후다닥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장작 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 후 오늘까지 번잡이와 그 아이들은 장작 지붕 아래  자리 잡았다.

번잡이가 우리에게 복수하는 것일까??

번잡이가 엄마라니!!! 너무나 충격적이다.

 

지금 생각하니 분홍이에게 미안하다.

분홍이가 전에 배가 좀 불러 있는 듯해서 혹시나 여기서 새끼를 낳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밥도 잘 안 주고 그랬었다.

그래도 댓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모른 척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주고는 했는데...

그 후 다시 나타난 분홍이는 멀쩡해서 우리가 잘 못 봤나, 아님 그새 어디서 출산을 했나... 이랬었는데..

분홍이만 경계했는데 생각도 못한 번잡이가 엄마라니!!!

번잡이는 배가 부른 것도 몰랐다. 그런데 어째 이런 일이...

번잡이는 그동안 철딱서니 없고 눈치 없고 먹성 좋은 청소년 고양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눈치 없고 나대고 들이대니까 용가리와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띵띵이가 와서 오랜만에 간식이라도 주려고 하면 번잡이가 나타나서 먹어치웠다.

그래서 띵띵이를 따로 주면 또 따라와서 먹어치웠다.

띵띵이는 그저 옆에서 멍~~

번잡이가 없을 때 띵띵이 먹으라고 밥을 주면, 분명히 없었는데 어디선가 번잡이가 나타나서 밥그릇을 선점했다.

번잡이 혼자 나타날 때는 밥도 안 주고 못 본 척했는데, 그래도 가지 않고 기다리면 안 된 마음에 밥을 주고는 했었다.

그러던 번잡이가 얼마 전부터 매일 나타나 문 앞에 딱 붙어서 밥 달라는 눈빛을 마구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밥을 먹고 다니더니 우리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아기들을 데리고 들어와 버렸다.

너무한 거 아냐?

분명히 첫날 토요일은 세 마리였는데 그다음 날 보니 네 마리다.

토요일 오전부터 하루 종일 봤는데도 분명 세 마리였다. 젖을 먹을 때도 세 마리였다.

그런데 다음날 젖 먹을 때 보니 네 마리인 것이다.

한 마리가 어디 꽁꽁 숨어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던지 아님 밤 사이 한 마리 더 데려왔나?

이러다가 한 마리씩 더 데려오는 것 아님??

 

그 꼬물이들은 난리 났다.

번잡이 닮아서 어찌나 번잡스러운지....

그래도 잽싸게 숨는 것은 잘해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다.

밤 사이 어떤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꽁꽁 숨어 있어야 안전하지...

지난밤에는 고양이 아닌 다른 짐승 소리가 들려 걱정이 되었다.

번잡이 혼자 막지 못해서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지? 

잠이 다 달아나 걱정하니까 용가리는 '너가 나가서 보초라도 서지 왜?' 이러면서 핀잔을 준다.

어젯밤에는 폭우가 내렸는데 잠자면서 빗속에 아기들 잘 있나 걱정이 되었다.

 

* 아기들 사진은 뒷마당 툇마루에서 줌 엄청 땡겨 찍었다.

아궁이까지 놀러나왔다가 나를 보고는 호다닥!
호미 담아 둔 바구니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나를 보고 자취도 없이 사라졌는데 이제는 요렇게 빼꼼 보고 있다.
한 놈은 번잡이 밥그릇까지 따라와서 벌써 밥을 먹기도 한다.
뒷마당 모든 것이 놀잇감이다.

이 소식을 딸아이에게 알리면서 심난해 죽겠다... 걱정이다... 했더니 대뜸 '누가 엄마더러 키우래?' 이런다.

'번잡이가 알아서 키울 거야.. 그래서 다 출가시킬 테니 걱정 마!' 이런다.

그래...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난하냐..ㅠㅠ

 

하루 사이에 번잡이도 10년은 늙어 보인다.

번잡이와 아기들이 스트레스받을까 봐 무심한 듯 밥만 떨어지지 않게 주고 있는데

번잡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아무데서나 지쳐 떨어진다. 자기 밥 먹고 아기들 젖 주고... 아기들 지켜야 되고... 또 핥아주면서 이뻐해 주고...

어제는 번잡이가 밥 먹고 아기들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까 숨어 있던 아기들이 호다닥 뛰어나와 안기고 난리다.

마침 뒤에서 풀 뽑고 있다가 그 광경을 보니 기가 막힌다.

아기들은 다투어 젖을 물려고 하고 번잡이는 넉다운 되어 있고...

역시 육아는 누구에게나 극한직업이 맞다.

천방지축 눈치 없던 번잡이가 측은하고 불쌍하다.

 

젖 물리고 실신
틈만 나면 널부런진다.

 

장작 지붕 아래 있는 호미와 기타 등등을 가지러 가면 밥 먹던 번잡이가 뒤에 딱 나타나 있다. 깜짝이야...

번잡이 스트레스받을까 봐 호미도 못 가지러 가겠네..ㅠㅠ

그래서 밥그릇을 아기들 있는 곳에 두면 번잡이가 편하게 밥을 먹을까? 생각했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한 이틀 살펴보니 밥 먹을 때라도 좀 떨어져서 편히 먹어야지 밥까지 아기들 가까이 있으면 옆에서 그 꼬물이들이 난리 쳐서 밥을 더 못 먹을 것 같다.

 

3일 정도 지나니 처음 뒷문만 열어도 호다닥 자취를 감추던 놈들이 이제는 방충망까지 열어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번잡이도 덜 예민해진 것 같다.

꼬물이들 놀고 있을 때 뒷마루에서 쳐다보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사진 찍으려고 전화기 들면 번잡이가 딱 다가온다.

무셔라~~ 알았다 알았어.

관심 갖지 말자.. 무심하자... 다짐을 하지만 마루에서 눈은 자꾸 장작 지붕 아래로 간다.

꼬물거리면 자꾸 보고 싶고, 안 보이면 어디 있나 살펴보고... 어쩌지??ㅠㅠㅠ

 

번잡이의 복수가 맞다.

띵띵이 동글이 주려고 사 두었던 통조림과 각종 간식들을 번잡이가 모두 먹게 되었다.

토요일부터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리고 용가리는 나에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며 그렇게 주의를 주더니 

뒷문에 붙어 '새끼들이 이쁘기는 이뻐...'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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