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29일 결혼했으니 벌써 28년이다.
특별히 기념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비슷한 날 중에서 그래도 뭔가 다르게 보낼 만한 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그래서 일부러 챙긴다.
핑계김에 맛난 것도 사다 먹고 케잌도 사다 먹고 일도 쉰다.
올해는 밀린 텃밭 일과 풀도 뽑아야 할 곳이 잔뜩이고 아래 위 땅은 예초기를 돌려야 할 정도로 풀이 자랐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케잌 사러 가기도 귀찮았지만 이렇게 뭉개고 지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귀찮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기념일 전 날에 전주에서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 일단 가 보지 뭐..
영화 상영표를 훑어봤지만 솔직히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다.
그래도 적당한 시간대 영화를 보기로 하고 예매를 하려고 했지만 회원가입 로그인 어쩌구가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설마 하나는 볼 수 있겠지...
예전에는 이런 영화제 상영표만 봐도 가슴이 설렜는데 이렇게 무뎌지다니..ㅠㅠㅠ
정말 옛날 대학로 연극제도 생각난다.
연극사랑티켓?인가? 연극제 티켓을 사서 보고 싶은 연극 돌아다니면서 봤었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전주 영화제에 갔다.
토요일이지만 비도 내리고 영화제가 다른 해에 비해 많이 홍보된 것 같지 않아(내 느낌) 영화 한 편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람은 많았고 모든 영화가 매진이다.
두서너 개 예비로 영화를 선택해서 갔는데도 그 시간 대, 다음 시간 대 모두 매진..ㅠㅠㅠㅠ
이럴 수가!
우리가 산골에서 살면서 확실히 감이 떨어졌다.
인적이 드문 곳에 살면서 사람 몰리는 곳에 잘 가지 않으니 다른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던 듯...
전주 시내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영화 '문재인입니다'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텀블벅 예매권으로 봐야겠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깨끗이 포기하고 돌아섰다.
영화제 분위기 느끼고 젊은 사람들 많이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그래도 전주까지 왔으니 다른 곳이라도 둘러보려고 한옥마을 쪽으로 갔다.
그쪽에 이런저런 볼 만한 장소가 몰려 있는 것 같았다.
100년이 넘었다는 전동 성당, 경기전, 남부시장...
성당과 한옥마을 둘러보고 시장에서 먹을 것 사다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쪽 주차장으로 차 진입이 어려웠다.
다른 주차장에도 차를 주차할 수 없었다.
아무리 토요일이라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비도 오는데 말이야...
좀 먼 곳 주차장에라도 차를 대고 살살 걸어 다녀도 되겠지만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전주 시내 몇 바퀴를 돌다가 급 피곤...ㅠㅠ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으니 먹을 것이라도 구해보자.
전주 음식으로 포장할 만한 것이 마땅치가 않다.
어쩌지? 전주 롯데백화점이 있었다.
일단 주차는 할 수 있고 백화점 지하에는 맛있는 것들이 있지..
하지만 어렵게 들어가 주차한 백화점은 하필 푸드코트가 공사 중이었고 빵집 하나와 분식을 파는 곳 하나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빵집에서 작은 빵 하나 사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길을 다시 되짚어 집으로 왔다.
아... 올해 결혼기념일은 피곤하구나.
전주까지 가서 그냥 전주 찍고 다시 왔다.
맛있는 케잌도 없고 별식으로 먹던 회도 없고 읍내 중국집 양장피도 없다.
결혼기념일 저녁에 라면 먹고 소주 한 병 먹고 작은 크림빵 나눠 먹었다.
28년 전 이 시간에 뭐 했지?
비행기 타려고 공항에 있었지.
그때도 엄청 피곤했는데..
그래 그날이나 지금이나 피곤한 것은 똑같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