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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착하게 살자

by jebi1009 2023. 6. 1.

엊그제 급히 서울에 다녀왔다.

비 오는 날 구들방에서 책 끼고 뒹굴거리다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나중에는 가슴이 벌렁벌렁...

딸아이의 목소리로 내용을 듣게 되고, 또 괜찮다는 말을 직접 들어 다소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보고 와야 할 것 같아 늦은 오후 서울로 출발했다.

 

집 앞 도로에서 승용차에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간단한 치료와 검사를 받고 밤늦게 집(언니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를 봤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친 곳은 없고 통원치료하며 지켜보자고 했단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여기저기에 멍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듯...

물리치료를 위해 병원에 데려다주려고 하니 일단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싶다고 해서 딸아이 집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다시 내려왔다.

 

딸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고하고 구급차도 부르고 했단다.

자신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사람들이 아이고 큰일 났다고 달려와

움직이지 말아라.. 정신은 있냐.. 부모님 계시냐... 물어보고

소지품도 챙겨 주고 경찰 빨리 오라고 다시 전화도 하고 

햇빛이 내리쬐니 우산 씌워줘서 그늘도 만들어 줬단다.

경찰이 왔을 때는 사고 상황도 이야기해 주고, 현장 사진도 찍었으니 보내주겠다고 경찰관에게 다들 말했단다.

그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가지 않고 사람들이 같이 있어 줬단다.

 

엄마 사람들이 참 고마워...

가끔 '어디 어디서 도움 주신 분 찾습니다'이런 거 이해가 간다니까..

나도 그때는 정신없고 아프고 온몸이 떨리고 말도 안 나오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진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그래.. 사람들이 참 고맙다. 

 

 

딸아이 얼굴 보고 내려오면서 용가리와 말했다.

우리 착하게 살아야겠다.

우리가 나눈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잖아

아이가 받은 것도 우리가 갚아야 하고

우리가 받은 것도 다른 사람이 베푼 것이고

우리가 착하게 하면 딸아이가 받게 되는 것이고

우리 정말 착하게 살자.

 

그리고 또 말했다.

딸아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경찰이 전화해서 확인했으면 어쩔 뻔했어

아마 심장 터졌을 거야

반대로 우리가 전화했는데 경찰관이 받아서 사고 이야기를 했으면 그때도 심장 터졌지

그러니까...

10.29 참사 부모들 마음이 어땠을까...

그냥 놀러 나간 아이들 전화를 경찰이 받고

내 자식 전화인데 모르는 경찰관이 전화해서 내 자식 사고 이야기를 전한 거잖아..

그때 그 심정이... 그 심장이... 그 손이... 어땠을지... 조금 아주 조금 상상할 수 있겠다.

세월호 아이들도... 그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누르며 그 엄마아빠 심정이 어땠을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났다. 용가리도...

 

간청재 마당에 들어서며 다시 말했다.

우리 정말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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