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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일이 커졌다.

by jebi1009 2023. 11. 7.

도배만 하려고 했었다.

간청재도 얼추 10년이 되어간다.

나무집에 입힌 하얀색 한지에 나무색이 배어나오며 누르스름한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넓지 않은 집이니 둘이서 사부작사부작할 수도 있겠으나 마루 천장이 너무 높아서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간청재를 지었던 목수에게 연락했다.

장작 지붕을 만들었을 때나 기타 다른 문제가 있을 때 가끔 연락은 했었다.

연락을 받은 목수는 '지금쯤 연락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단다.

10년 정도 되면 여기저기 손을 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봄에 하려고 연락을 했지만 목수님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여름을 넘겨 추석 전에 한다고 했다가 결국 10월 말이나 되어서 일을 시작했다.

일단 내부 벽은 칠을 하기로 했다. 그 편이 내구성이나 나중에 보수할 때도 더 편리할 것 같았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집을 한 번 살펴보고는 외부 나무들도 칠을 해야 하고 창고 문이나 출입 나무문도 손을 봐야 하고 외부 수도 중에서 교체해야 할 것도 있고... 그렇게 하다 보니 화장실 문도 손보고 창고 벽체도 다시 칠하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앞 툇마루까지...

처마가 짧아서 비와 햇빛에 많이 노출되어 앞쪽 툇마루는 많은 변형이 왔다.

일단 뜯어보고 쓸 수 있는 만큼 고쳐서 쓰자고 했는데 결국 한쪽 마루는 다시 새로 하게 되었다.

 

도배만 하려고 했는데 집 외벽에 대어 놓은 나무와 지붕 처마, 창고 벽, 앞뒤 마루, 누마루 등등을 모두 손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산도 배가 넘게 초과되었고 공사 기간도 거의 일주일이나 되었다.

전문 칠을 하는 분들이 오신 것은 이틀이었다.

하루는 집 내부, 하루는 집 외부.

그리고 나머지는 목수와 우리가 했다.

목수 혼자 할 수 없어 보통 한 명이 같이 오는데 그 한 명 몫을 용가리와 내가 했다.

공사비의 대부분은 인건비이므로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둘이서 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칠을 하는 팀이 이틀, 그 뒤로 이틀 더 목수가 와서 나머지 일을 했다.

그런데도 용가리와 나는 일주일 이상 일을 했다.

툇마루와 화장실, 창고 문은 여러 번 칠을 해야 했다.

나무가 외부에 노출되어 변형되는 것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막아주는 것은 칠을 여러 번 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 한 번 칠하고 하루 말리고 다음날 또 칠하고... 서너 번 반복하니 일이 길어졌다.

 

 

결론은 힘들어 죽을 뻔했다. 정말, 진심, 진짜로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ㅠㅠㅠ

지금도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지만 일단 일상으로 복귀했다.

집 내부를 칠해야 하니 모든 짐을 다 빼고 난민 같은 생활을 했다.

붙박이장이어서 이불과 옷도 다 빼고 책장에 있는 책들이며 기타 등등 자질구레한 살림들을 다 치워야 했다.

그 짐들은 일단 구들방과 누마루에 놓고 다음날 그 짐들을 또 빼서 안방으로 옮기고...

우리가 사용하던 침구는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자동차 안에 넣어 두었다. 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다. 바깥일도 많아서 낮은 곳 칠은 주로 내가 했다.

용가리와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이렇게 일 벌이지 않기로 말이다.

아주 다급한 일이 아니면 그냥 둘이서 사부작사부작 만지며 살기로 말이다.

두 번 할 짓은 아니다.

 

문은 모두 떼어서 사포질하고 휘어지고 변형된 부분 잡아주었다. 문을 다시 붙이고 주변 마스킹하고 칠하고...세번 칠했다.
오른쪽 마루도 언젠가는 다시 해야 할텐데...그때는 용가리와 둘이서 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ㅠ
새로 칠한 마루에 번잡이 식구들이 제일 먼저 흔적을 남겼다. 누마루까지 잊지 않고 콩콩콩...

 

 

엊그제 커튼을 달고 방석을 놓으며 집 내부는 원상 복구했다.

아... 일상의 그리움.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이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 와중에 시어머니 생신이 있어서 서울까지 다녀왔다. 

대충 정리하고 서울에 간 것이 오히려 휴식이었다. 물론 내려오니 피곤이 엄청 몰려왔지만 말이다..ㅠ

그래도 깨끗해진 창고 문과 반짝거리는 툇마루를 보니 뿌듯하기는 하다.

다락도 칠해야 하고(다락 짐까지 뺄 수는 없었다 ㅠㅠ)  창고 벽도 더 칠해야 한다.

일단 다음에.... 안 할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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