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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굿바이 원앙금침

by jebi1009 2024. 5. 8.

결혼할 때 엄마가 마련해 준 원앙금침.
20년 넘게 사용하지 않고 이불보 안에 넣어 두었다가 간청재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들방과 잘 어울리고 따뜻하고 무게감도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침구 정리와 세탁이 문제였다.
청소할 때마다 무거운 요와 이불을 털고 정리하는 것이 버거웠고
결정적으로 세탁이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요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널고 다시 다림질하고 다시 꿰매고...
그렇게 세탁하는 날에는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이 해가 넘어가야 끝난다.
게다가 세탁하는 날은 날씨도 살펴야 한다.
요 이불속은 햇빛에 널어놓아야 하고 세탁한 이불 홑청도 잘 말라야 하기 때문이다.
세탁하기 몇 주 전부터 날을 잡고 일정을 비우고 부담 백배였다.
세탁 횟수를 그나마 최소한으로 하려고 엄청 관리했다.
요와 이불이 상전이었다.
 
어릴 때 이불을 밟거나 이불 위에서 과자라도 먹으면 바로 엄마에게 죽음이었다.ㅎㅎ
그리고 항상 깨끗이 씻고 잠옷 갈아입고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밖에서 입던 옷을 입고 이불을 덮으면 바로 또 죽음이었다.ㅎㅎ
엄마는 항상 이불 홑청을 풀 먹이고 다듬이질해서 꿰매었다.
추운 겨울 두꺼운 옷들을 벗고 내복만 입은 채로 새로 꿰맨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따뜻해졌다.
풀 먹인 이불 홑청은 냉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부드럽거나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뭔가 쨍하고 칼칼한 느낌?
물론 두꺼운 목화솜이불이니 조금 지나면 훈훈해졌다.
그때의 추억 때문에 언젠가는 원앙금침을 사용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간청재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홑청을 깨끗하게 꿰맨 목화솜이불은 참 좋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버겁고 힘들었다. 부담 백배 ㅠㅠㅠ
그리하여 작년에 결심했다.
이불을 버리자고 말이다.
확 버리고 간편한 이불을 구입하자고 말이다.
물론 속이 쓰리게 아까웠지만 그래도 이불 부담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솜을 새로 틀고 요와 이불 커버를 간편한 것으로 바꾸면 된다고 리폼해서 쓰라고도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버릴 것이야!!! 
리폼하면 또 돈 들고, 그 돈이면 요즘 꽤 괜찮은 요와 이불을 구입할 수 있으니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올해 이불을 버릴 시기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 큰 부피의 요와 이불을 버리는 것도 문제다.
면사무소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구입해서 버려야 했다.
갑자기 쓰레기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우리 이불 모습이 상상되면서 마음이 찜찜했다.
그리고 요즘은 목화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아서 예전 같은 목화솜이불은 구하기도 어렵다는 말도 들렸다.
우리가 갖고 있는 요는 정말 두껍고 크다.
신랑 키도 별로 크지 않은데 왜 이렇게 길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매우 두껍다.
일반적으로 새로 솜을 틀면 이불이 두 개 이상 나온다고 한다.
요즘은 예전처럼 두껍게 이불을 쓰지 않아서 세 개도 나온단다.
솜틀집에 알아봤다.
요와 이불 하나만 필요하다고 했더니 아깝게 왜 그러냐고 한다.
지금은 그런 목화솜 없는데 왜 버리냐고..
일부러 찾아서 아이들 이불 해 주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버리냐고 그러지 말라고 나를 설득한다.
요 이불솜 틀어서 새로 만들면 총 4,5개가 나온단다.
전국 택배로 이불을 해 준다는데 마침 함양 시장에 솜틀집이 있는 것을 봤다.
결국 함양 시장 이불집으로 가져가서 새로 이불을 만들었다.
버린다고 결심했었는데 차마 버리지 못하고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쓸 요와 이불 딱 하나만 만드려고 했는데 두 채를 만들었다.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갖고 함양 시장통으로 가서 내려놓자 주인아주머니는 일단 솜부터 확인하신다.
'솜은 참 좋은 솜이네'
요와 이불 한 채만 필요하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이 좋은 솜에 왜 하나만 만드냐고 하신다.
요즘은 이런 솜 구경도 못한다고 하신다.
하나만 만드려고 결심하고 갔는데 결국 이불 두 채와 방석과 베개까지....
 
대신 여벌로 가지고 있던 손님용 요와 이불을 과감하게 버렸다.
이 이불도 목화솜이불세트다. 아까운 마음에 다락에 올려놓으려고 커버를 벗기고 세탁을 하려는 순간 '버리자'라고 결심.
다락에 올라간 이불이 언제 또 내려오겠는가....
100리터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렸다.
이 쓰레기 봉지도 거의 10년 만에 사용한다.
간청재 이사 와서 전입 신고를 하니 마천 면사무소에서 준 것이다.
1인 당 1매. 그래서 두 장이 있었다.
이불 버리면서 이것저것 이불장도 정리했다.
잘 쓰지 않는 방석이나 배게 러그 담요 등등...
100리터 봉지 두 개를 모두 사용했다.
 
그리하여 간청재에서 8년 넘게 사용하던 원앙금침은 두 벌의 요와 이불, 방석 4개, 베개 2개로 다시 탄생했다.
요가 크고 두꺼워서 더 여러 개 만들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거액의 목돈이 들었다.
요와 이불은 커버를 만들었고 방석과 베개는 내가 만들어 둔 자수 커버가 있으니 속만 만들었다.
이불 찾아와서 구들방에 깔아 놓으니 다시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불 크기와 두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 차이를 두어 만들어서 마음에 꼭 든다.

그런데 이불 커버를 만들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었다. 아쉬운 대로....ㅠㅠ
그래도 지퍼 달린 이불 커버를 가졌으니 이제 이불 상전 모시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마음껏 세탁하고 색상도 바꾸어 커버를 교체할 수 있으니 너무너무 좋다.
새로 솜을 틀어서 엄청 폭신하다.
나름 두께감도 있는데 전에 갖고 있던 원앙금침보다는 가벼운 편이다.
엔틱한 느낌은 사라져 아쉽지만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용가리와 매번 힘들게 이불 털면서 그랬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의 무게인가...
 

 
 
원앙금침 홑청 빨래가 처음에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지만 결국 8년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안녕 원앙금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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