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스님 돌아가신 지 2년.
하동에 다녀왔다.
얼마 전 수경스님의 전화가 있었다.
'연관이가 이런 것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 내가 해 주고 싶어...
그래도 3년은 해 주고 싶어..'
당신께서는 인공관절 수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참석하지는 못 하신다 하셨다.
박남준 시인의 햇차를 올리며 조촐하게 사람들이 모여 연관스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생각나고 더 많이 보고 싶다.
내가 그렇게 스님을 좋아했었나?
연관스님은 둘째 삼촌이다.
5형제 중 아빠가 맏이고 셋째 아들이 연관스님.
어릴 때부터 스님 삼촌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눈으로 본 것은 고등학교 때 할머니 생신잔치였다.
인사는 건넸었나?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하고 그저 슬쩍슬쩍 훔쳐본 기억만 난다.
가까이서 '스님'이라는 존재를 처음 봤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크리스천이었다. 그래서 절에도 가지 않았고 스님도 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호기심은, 스님은 진짜 고기를 안 먹나? 무얼 먹나? 어떻게 앉아 있나?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훔쳐본 결과 그 당시 연관스님은 생식을 하셨다.
과일과 생쌀을 드셨다. 참 이상했다.
그리고 눈에서 광선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무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가까이 가지 않았었다.
연관스님의 첫 기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도 하고 딸아이도 낳고...
언젠가 친한 사람들과 실상사에 여행을 갔다.
저녁 무렵 실상사에 도착했고 어둑어둑할 때 실상사 종소리가 들렸었다.
실상사 경내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그 분위기에 한동안 젖어 있었는데 그때 함께 간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 실상사에서 자고 가자. 너 실상사에 스님 삼촌 계시다며.. 한번 물어봐.'
당시 엄마 아빠는 연관스님과 간간이 연락을 하고 있어서 어느 절에 계신지는 알고 계셨다.
어둠이 깔린 실상사 경내에서 용기를 내 지나가시는 스님 한 분께 연관스님 계시냐고 여쭤봤다.
그때는 연관인지 영관인지 영광인지 확실히 몰라서 발음도 대충 했다.
'아 스님은 지금 칠불암에 동안거 가셨습니다.'
실상사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는 안거가 뭔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지금은 실상사에 안 계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연관스님의 연줄이 아니어도 재워 달라고 했으면 실상사에서 자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날 실상사에서 자지 않고 다른 숙소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엄마에게 연관스님 전화번호를 받아서 통화를 하고 만남을 약속하고
실상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나는 사실 그때 스님 삼촌을 만난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제대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삼촌, 게다가 스님이시니 얼마나 거북스러웠겠나...
그래도 주변의 부추김과 호기심 등등이 섞여 용기 내어 전화를 하고 스님 삼촌을 찾아뵈었다.
그때 연관스님은 우리 일행을 지리산 주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며 구경시켜 주시고 이런저런 말씀도 해 주셨다.
금대암, 영원사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감탄했었다.
'빨치산들이 나쁜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야..' 하셨던 말씀도 생각난다.
지리산에 산재해 있는 빨치산의 역사와 흔적을 지나며 하셨던 말씀 같다.
그때도 스님은 동안거 들어가시는 날이었는데 우리와의 약속 때문에 하루 늦춰 가셔야만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랬다고....
인월인지 함양인지 버스 정류장에서 스님과 헤어졌다.
'오늘 장날인데 장 구경하던지 해라. 나는 간다.' 하시며 버스에 오르셨다.
스님은 떠나고 함께 간 선생님들과 상림(이라고 기억된다)에 앉아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기분이 어때? ' 누군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사실 나는 그때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연관스님, 스님 삼촌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수월암을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근처 마천에 땅을 사고 간청재를 짓고
지금, 연관스님의 구역, 전문용어로 연관스님의 나와바리에 살고 있다.
하동 모임에서 한 사람씩 스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용가리와 나는 부끄러워서 극구 사양했지만 스님과의 추억이 쏟아진다.
용가리에게 물었다.
'진짜 나가서 말해야 했다면 뭐 말하려고 했어?'
'나는 백장암 사건'
용가리가 말한다.
https://jebi1009.tistory.com/107
눈 쌓인 백장암 2013/12/24
지리산의 하룻밤은 너무 짧다. 두 밤 자러 가 보자... 금요일 아침. 지난 밤에 남쪽 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렸단다. 괜찮을까? 옛날에는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주먹만한 우박이 내리고 천둥 번개가
jebi1009.tistory.com
나도 여기저기서의 스님 삼촌과의 기억이 마구 떠오른다.
생각나고 보고 싶어질 때마다 조금씩 끄적거려야겠다.
박남준 시인이 어제 만난 자리에서 새로 나온 책을 선물했다.
아주 귀여운 책이다.
일일이 서명을 해서 건네는데 우리를 보더니 '아차!' 하신다.
둘이 부부인 것을 깜빡해서 책을 따로 준비하셨단다.
너무나 억울해하셨다. ㅎㅎ
**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본 풍경이다.
끝없는 양파양파양파.....
지금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보기만 해도 허리가 아프고 온몸의 진액이 빠지는 것 같다.
양파 수확이 고됨을 짐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