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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홍옥 2013/10/02

by jebi1009 2018. 12. 25.


       



사과가 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옥사과.
우연히 '참거래 농민장터'사이트에서 홍옥사과 판매를 본 것이다.
난 홍옥을 좋아하지만 파는 곳이 거의 없어 먹기가 힘들었다.
가끔 아파트 장터에 오는 아저씨가 홍옥을 가져오면 한 두어번 사 먹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홍옥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홍옥 가져 왔다고 알려준다.
허옇게 분이 묻어 있어 몰골은 안 좋아도 아저씨가 목장갑 낀 손으로 한 번 쓱 문지르면
진한 빨간 색으로 반짝거리는 자태를 드러낸다.
옛날에는 홍옥을 잘 먹었었는데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아님 저장성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찾아보기 어렵다.
운 좋게 얻어 걸리면 사 먹었었는데 이렇게 어엿하게 재배해서 파는 곳이 있을 줄이야....


아삭함을 넘어 단담함으로 빛나는 사과 홍옥사과

오래전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던 바로 그 사과

국광과 함께 60-70년대를 휘잡았던 그 사과

바로 홍옥사과 입니다.

이름이 홍옥.. 옥처럼 빛이 나는 아니 오히려 더욱 빛나는 사과

소매에 쓰으윽 문지르면 윤기가 나는 홍옥 사과..

눈으로 즐기고 맛으로 더욱 행복한 홍옥사과입니다.


< 아삭 아삭함을 넘어 단단함으로... 진짜 사과 맛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현재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매우 비싼 사과랍니다.

홍옥은 크기가 작은 사과로 5kg 25개  내외가 들어갑니다.

홍옥은 만생종 사과로 만생종 부사와 맞짱뜨는 유일한 사과라 할 수 있습니다.

홍옥만을 사랑하는 홍옥 메니아가 있을 정도로 맛이 기찬사과입니다.

손에 넣으면 보석같은 사과.. 홍옥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농민 장터에는 이렇게 광고가 되었있다. ㅎㅎㅎ

이제 겨울 내내 먹게 되는 부사? 후지? 사과는 너무 단 맛만 있다.
과일들이 모두 크기가 커지고 단 맛만 강조해서 좀 불만스럽다.
복숭아마 해도 예전에는 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붉은 빛이 살짝 도는 복숭아를 많이 먹었다.
엄마가 복숭아를 사 오시면 마당에서 큰 다라이?에 펌프질로 물을 푸고 거기에 복숭아를 쏟아 넣고 닦아 주셨다.
바로 껍질째 한입 깨물면 새콤달콤...아...
요즘 나오는 백도나 황도처럼 그렇게 물렁하지 않았다. 약간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복숭아는 이제 찾을 수가 없다.
배도 그렇다.
예전에는 그냥 주먹만한 크기의 배를 깎아 주시면 자르지 않고 통째로 들고 먹었다.
사각거리고 시원하고..
요즘 배는 머리통 만하게 커서 한 번 깎아 먹기도 힘들다.
수박도 어찌나 커졌는지 사 먹기가 두렵다.
먹고 싶어 사 오면 저것을 어떻게 잡아 먹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
게다가 적정 기간에 다 먹어 치우기도 힘들고...
다들 너무나 커다랗고 달콤한 과일들만 나오니 가격은 점점 비싸지고 과일 특유의 향도 덜한 것 같다.

갑자기 오탁번의 '꼴뚜기와 문어'라는 시가 생각나네...

술 좋아하는 아빠가 포장마차에 갈 때
그림일기 그리다 말고 나도 따라나선다
아빠는 똥집 안주로 소주 한 병 마시고
살짝 데친 꼴뚜기 한 접시는 내 차지다
"꼴뚜기처럼 생긴 아이가 꼴뚜기를 참 좋아하네"
포장마차 할머니는 아빠를 본 체도 안하고
꼴뚜기 먹는 나만 바라본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더니
우리 집 망신은 요놈이 다 시키누나"
아빠는 하하 웃으며 술잔을 비운다

엄마 따라서 춘천 가는 국도에는
호박이랑 모과를 쌓아놓고 파는 곳이 많다
엄마는 춘천대학 국어선생님
나는 서울 종암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모과 다섯 개를 고르고 나서
"과일가게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데
오천원은 비싸요 천원 깎아요"
모과 파는 아줌마는 안된다고 말하다가
"요즘 모과는 망신이 아니고 자랑이에요
이 아이가 모과처럼 에뻐서 주는 거에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줌마를 보면서
"우리 집 망신은 요놈이 다 시키누나"
엄마는 깔깔 웃으며 모과 봉지를 집어든다

큰소리 치면서 작은 것 잡아먹는
상어나 문어는 나는 싫다아
잘 생긴 커다란 과일도 싫다아
꼴뚜기와 모과가 나는 제일이다아
오늘 오가헤 그림일기는 이만 끝       - <겨울가> 1994 -

오가혜는 오탁번씨 딸이고 오탁번씨는 굴뚝새 그림 그린 나를 칭찬해 주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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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3/10/02 21:01

    홍옥과 국광...ㅎ...저도 어릴 때 들어봤던 이름이예요. 밖에서 파는 주전부리는 절대 사절이었던 엄마 덕분에 겨우내 다락에 가득 사과를 쌓아놓고 먹었어요. 홍옥이나 산사과라는 작고 새콤 달콤한 종류였는데, 보통 한 광주리씩 꺼내다 먹곤 했지요. 대구는 사과로 유명하잖아요. ㅋ...
    이곳에서 파는 honey crisp이라는 사과는 홍옥이 아닐까...볼 때 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요즘이 사과 철이라 애플 사이다(사과를 그대로 갈고 농축해서 만든 쥬스)가 나오기 시작해요. 애들 점심에 한 개씩 넣어주면 딱 맞는 크기로만 나오는데, 대체로 파이용으로 많이 쓰기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별로 달지 않고 즙이 많지 않아도 잘 먹어요.

    • 제비 2013/10/11 17:49

      국광은 약간 퍽퍽했던 것 같은데..요즘은 자취를 감춘 것 같아요

  2. 너도바람 2013/10/03 14:18

    몇년전 예술의 전당 아트페어에서 본 극사실주의 그림이군. 홍옥 말이야.
    미술관 벽에 여기저기 홍옥이 걸려있었는데, 하나 집어도 될만큼 사과하고 똑같았는데
    그냥 테이블의 사과보지, 뭐러 여기와서 힘들게 이 사과를 보나 하는 무식한 생각이 들었거든.

    • 제비 2013/10/11 17:50

      나는 이거 그리려면 힘들었겠다...이러면서 봐요.
      극사실주의.

  3. huiya 2013/10/07 22:02

    저쪽에 멀리서 보이는 사과는 뭔가요? 궁금해서요. 클로즈업한 것은 화장한 것, 멀리에 있는 건, 세수를 안했나요?

    • 제비 2013/10/11 17:52

      다 똑같은 애들이어요.
      쓱쓱 닦아서 놔뒀는데 너무 이뻐서 사진 찍으려고 노트북 위에 올려 놓으니 다 안 올라가서 나머지는 바닥에 있는 거여요

  4. 제인이지 2013/10/18 16:51

    홍옥에 묻어있는 하얀가루가 눈에띄어 난생처음 사봤네요. 닦아서 껍질채 먹으면된다고하셨지만..혹시몰라 검색을 하던중.좋은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귀한사과군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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