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꽃은 피고 지랄이다.
박남준 시인의 <봄날은 갔네>의 한 구절을 중얼거린다.
산불이 며칠 동안 꺼지지 않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다.
오늘은 조금 잦아든 것 같지만 어제까지도 나뭇가지가 부러져 굴러다니고 밖에 나가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돌풍이 불었다.
하늘은 뿌옇고 매캐한 냄새까지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서는 계속 불이 꺼지지 않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운 사람들,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비상식과 몰상식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산불 때문에 더 불안하고 심란하다.
오후부터는 또 강풍이 분다고 하니 정말 걱정이다.
이 와중에 창밖을 보니 하루 사이에 매화가 모두 피었다.
꽃이 늦었고 한 두 개 핀 것이 보였는데 하루 사이에 모두 피었다.
가지가 부러지고 쌓인 낙엽들이 하늘로 솟구치는 강풍 속에서 꽃을 모두 피웠다.
나는 그 꽃들을 보며 한숨이 났다.
어머... 하는 감탄이 아니라 아휴.... 한숨이 푹 났다.
이번 주부터 장화를 신고 호미를 손에 잡았다.
겨우내 쌓여 있던 흔적들을 치우고 이 가뭄과 강풍에도 무럭무럭 올라오는 풀들도 뽑아야 하고 밭도 갈아야 하고 씨앗도 넣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맘때면 살짝 설렘이 있었다.
씨앗을 넣고 텃밭을 구상하면서 설렘이 있었는데 올해는 가슴만 벌렁거리고 기분은 축 바닥으로 꺼진다.
다시 설레고 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