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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었다. 2013/12/02

by jebi1009 2018. 12. 26.


       

드디어 거사를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계속 지지부진하던 내부 마감 공사로 약간 지겨워진 우리는 간청재에서의 하룻밤을 결행하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11월 30일까지는 모든 내부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약간의 의견 조율이나 자재를 다시 주문하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1주일이 후딱 지나간다.
조명과 욕실 도기 등의 주문이 다시 재조정되면서 싱크대와 붙박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싱크대와 붙박이장도 가온과 시공자 그리고 우리...요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3-4일이 휙 지나갔다.
이제 다 결정되었으니 다음주면 부엌과 장도 완성될 것이다...그러길 바란다 ㅠㅠ
사실 약간 지켜보니 그렇다.
의견 조율해서 물건을 결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실재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물건이 잘 못 온다던가, 오다가 파손이 되었다던가, 실제 와서 보니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다던가...하면
어쩔 수 없이 한큐에 팍! 될 수가 없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소소한 문제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다행히 우리는 그런 골치 아픈 문제들을 모르고 지나가니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설계자와 시공자와 감리자가 알아서 골치 아파해주고 우리는 그냥...
누구는 우리더러 멍청하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소소히 다 알아서 무엇하리...머리만 아프지...
알고 머리 아프나 모르고 지나가거나 결과는 별 차이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번에는 함양 시장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좀 사고 저녁거리도 사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 시장은 거의 문을 닫았다.
상설시장인데 15일, 말일은 시장이 쉰단다 ㅠㅠ
그리고 장날은 2일, 7일. 이번에 확실히 알아 두었다. 다음 토요일이 7일이니 그때를 기대한다.
대부분 닫았지만 그래도 노점이나 몇몇 가게들은 문을 열었다.
너무 아쉬워서 내가 갖고 싶은 물건 1위였던 털신을 샀다. 말표 털신..7천원 주고 샀다. 기뻐라~~
썰렁하지만 시장을 기웃거리니 어떤 식당은 바글바글하다.
피순대(?) 하여튼 순대집인데 무지 유명한가부다...
너도님이 순대도 사올 뻔 하였으므로 저녁으로 순대 사다 먹기로 했다.
점심으로 오랜만에 조샌집에서 어탕국수를 먹었다.
최근에 몇 번 일요일 점심때 먹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단체손님들이 바글거려 사실 어탕국수 맛이 별로였다.
그래서 쫌 그랬는데...이번에 한가할 때 가니 역시 제대로 된 어탕국수 맛이다.
푹 고아진 생선맛도 풍부하고 짜지도 않고 칼칼하니 좋다.
오도재를 넘어가려니 길을 막아놨다. 눈 때문인가보다...
덕유산까지 올 때에는 정말 한겨울이 실감날 정도로 눈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함양 들어오고는 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도재를 막아놓았네...
할 수 없이 인월로 돌아갔다. 

간청재로 올라가니 욕실과 다락 마감 중이었다.
우리가 자고 간다니 소장님 사모님까지 오셔서 치워주시고 소소한 일들을 도와주신다.
일당 두둑히 받으시라 말씀드렸더니 여기 와서 지리산 할매도 만나고 오히려 힐링하고 간다고 웃으신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았다.
작업 마무리하고 철수하시고 우리는 싸가지고 간 이불 보따리를 옮기고 대충 걸레질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 좋은 밤 한 잔 아니할 수 없지...
함양시장에서 사 온 순대를 먹으려니 너무 식었다.
아...나는 왜이리 똘똘할까...내가 냄비 하나, 그리고 삼발이를 챙겨온 것이다.
냄비 안에 삼발이가 있어서 그냥 같이 싸가지고 온 것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ㅎㅎ
순대에 막걸리 마시고 라면에 소주 마시고 입가심으로 숏다리랑 웨하스 먹고...술이 술술 잘 넘간다.
잠 안 자고 밤새 술 마시겠다고 큰 소리 치다가 어느틈에 푹 잠이 들었다...

  우연히 들고 간 삼발이에 순대를 데워 먹었다. 김이 모락모락~

  역시 어딜 가나 라면 만한 음식은 없다. 라면 맛있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꽁깍지, 꽁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 박용래의 "월훈(月暈)" 중에서 -


간청재 하룻밤에서 정말 깊이 체험한 일은 바로 구들이다!!
오후에 잠깐 종이와 자재 부스러기들을 태우느라 불을 넣어두고 다시 불을 넣지 않았는데 밤새 바닥이 절절 끓는다.
아침..아니 우리가 출발하는 점심 때까지도 구들방은 온기가 가득했다.
구들에 계속 불을 넣어야 하는 줄 알고 사실 그냥 보일러 넣고 자려고 했는데 구들방이 너무 좋아보여서
가져간 허접스런 이불들을 깔았다. 그런데 자는 동안 어찌나 뜨끈한지 방바닥에 등짝을 실컷 지졌다(?) ㅎㅎ
난 등이 자주 아파서 할머니처럼 뜨끈하게 몸을 지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정말 구들방 대박!!을 외치며 구들을 만든 우리 조상들에게 감사의 인사까지 올렸다 ㅋㅋ




함양 시장에서 산 말표 털신. 아까워서 아직 땅바닥은 밟지 못했다.

드뎌 간청재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 마시면서 새소리를 들었다.
용가리는 25년 만에 군복야상을 입었다. 내가 털신 신고 싶듯이 용가리는 저 옷을 입어줘야 뽀대가 난다고 생각하나보다 ㅎㅎ 옛날 써클실에서 자고 일어나던 더러운 복학생들의 포스가 팍팍 풍긴다


아침 공기가 좋다...기분 좋은 싸늘함이다...
마당으로 내려서니 꿩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나도 놀라고 꿩도 놀랐다.
집 뒷쪽에 둥지가 있는 것 같다. 어제 오후에도 봤던 꿩이다...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마루까지 해가 비치며 따스함이 스며든다....
여기서....그냥...살아야지..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자, 가 아니라 그냥...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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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3/12/02 19:22

    거사를 결행하셨네요. 축하합니다. 저게 이름이 삼발이...털신 멋있어요. 뽀대가 팍팍납니다.

    • 제비 2013/12/11 15:45

      털신 멋지기도 하지만 착용감 굿입니다~

  2. 美의 女神 2013/12/02 20:30

    축하 축하요....
    근디 털신 상주에선 6천원인디요. ㅋㅋ
    털신 짱이야요. 저도 가게에서 털신 신어요.
    야상에다 하나 더....깔깔이까지 입어야 패숑의 완성임다.

    • 제비 2013/12/11 15:46

      겨울에는 털신, 여름에는 고무신..이게 정석인 것 같아요 ㅎㅎ

  3. 먹방지기 2013/12/03 17:52

    부럽네요. 저도 온돌에서 등짝 지지는거 아주 좋아하는데~~~^^
    간청재에서 술 드시면 아침에 깔끔하겠습니다.

    • 제비 2013/12/11 15:49

      간청재에서 술 마시려면 건강관리 열쉬미 해야겠어요 ㅎㅎ

  4. 알퐁 2013/12/04 05:57

    깔끔하고 도도한 집이네요^^
    축! 하! (깔끔하고 도도하게)
    저 털신, 여기 어떤 스님 집에 있어서 오호 좋다 했는데...
    여긴 겨울에 비가 많이 오거든요. 수입해서 팔아볼까나?

    • 제비 2013/12/11 15:51

      고마워요!(깔끔하고 도도하게)
      오~ 털신 파는 것 정말 괜찮은 생각 같은데요?

  5. chippy 2013/12/05 04:17

    좋은 꿈 꾸셨나요? ^^

    • 제비 2013/12/11 15:51

      눈 감았다 떴더니 아침이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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