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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가을의 끝자락 2013/11/19

by jebi1009 2018. 12. 26.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가 봐도 특별히 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주말이 되면 가고 싶다....
안개가 짙게 깔린 토요일 집을 나와 지리산 고속 마천행 버스를 탔다.
이제 단풍철도 끝나니 길도 지난번 보다 사정이 좋다.
12시 넘어 함양을 지나면서 스님께 전화드렸다.
내일이면 음력 보름, 결재 시작이니 벌써 떠나셨나 어쩌나...
점심 드시고 짐싸서 출발 하려고 하신단다. 바쁘시지 않으면 실상사 앞에 내려 인사라도 드리려 했지만
바쁘신 것 같아 그냥 마천으로 넘어갔다.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
스님은 결재와 해재 사이에서 완전히 다른 분으로 바뀌시는 것 같다.
평소에는 어렸을 때 읽었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 나오는 돈 까밀로 신부님 같으시지만
결재 들어가시면 다른 분이 되신다.
용가리 말에 의하면 눈에서 파란색 레이저빔이 나오는 것 같단다...
결재 중 한 번 정도 머리깎으시는 날 찾아 뵈면 그 분위기가 실로 고색창연(?)하고
얼굴은 웃고 있으시지만 눈빛은 매서우시다.
결재 한 달 쯤 지나면 한 번 찾아 뵈야겠다.

마천에 내려 매번 하던 대로 짱개집 찾아가 짬뽕 하나 짜장 하나 시켜 한 젓가락 씩 나눠 먹고
하늘길 민박집에 픽업 부탁 전화를 하니 지금 동네 할머니 댁 무를 뽑고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린단다...
마천에서 메로나 하나씩 먹으며 빌빌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원마을 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냐 물었더니
1시 50분에 있단다. 지금 시간이 1시 15분이니 민박집 아저씨 바쁜데 버스 타고 가 보자.
들어오는 버스 마다 물어 보고 드디어 창원마을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난 카드로 찍으려 했다가 용가리에게 멍충이 소리만 들었다 ㅠㅠ
두 사람 2300원, 잔돈이 5천원짜리밖에 없어 내미니 기사 아저씨가 가게 가서 바꿔오란다.
용가리 뛰어가서 돈 바꿔오고 버스는 시동 끄고 기다리고...
버스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한 분씩 타고 계신다. 두 분이 오랜만에 버스에서 만나셨나본데 버스가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신다 ㅎㅎㅎ

창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간청재까지 걸어가면서 둘러보니 2주 전에 왔던 길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햇살은 찬란했지만 겨울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하늘빛은 이제 쨍한 겨울 하늘로 바뀌려고 하고 있다....
지난 번 곡식을 널어 말리던 마당은 곶감과 시레기가 차지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시간을 재어 보니 실실 걸어가도 20분만에 도착했다.
아...오르막만 없으면..헥헥헥...

집은 색깔이 짙어지고 도배도 다시 되어 있고 한식문들도 들어와 있었다.
해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오후 툇마루에 걸린 햇살이 예쁘다...




  축대 밑 배수로에 쌓여 있는 낙엽들이 예쁘다...나도 낙엽 쌓이는 마당을 가질 수 있다니...

  매번 밑에서 올려다 보기만 하고 말았던 다락방. 이번에는 사다리가 있기에 올라가서 둘러 보았다.
 

마천에서 사 온 막걸리와 내가 좋아하는 숏다리를 놓고 누마루에 앉아 한 잔했다.
유림 막걸리를 이순신 막걸리 상표로 가게에서도 팔고 있다.
이제 술도가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다.
이순신 장군 바쁘시네...통영, 진도에 이어 여기까지 오셔서 막걸리도 담당하시니 말이다...쩝...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설렁설렁 걸어서 민박집으로 가고 있다.





하늘재 민박집도 이제 대충 단풍철 영업 끝이다...
15일 지리산 입산이 통제되었단다. 물론 둘레길은 아직도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다음날 마천까지 데려달라 부탁드렸더니 드디어 내일 축구하러 간단다...이웃집 알렉스하고..
공차러 간다는 말을 하면서 연신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단풍철이라 계속 몸이 묶여 가지 못해 오랜만에 가는 것이란다..
저 즐거움을 어찌 빼앗으리오 ㅎㅎㅎㅎ
아저씨는 미안해하며 9시 30분 출발이니 그 때 같이 가시면...하신다.
우리는 11시 30분 차니 택시 불러 가지요 뭘..괜찮아요..
또 혹시 하는 마음에 버스는 몇 시에 들어오나요..했더니 10시 30분에 창원마을 입구에 들어온단다.
그래...그럼 그 버스 타고 나가자...
마을 오는 버스는 거의 2시간 간격으로 있다. 시간만 잘 맞추면 완벽 버스로 다닐 수 있겠다.
.
  천왕봉에는 벌써 눈이 2번이나 왔단다. 우리는 처음에 저 하얀 것이 산사태가 난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이란다. 천왕봉에 눈이 3번 오면 지리산 마을에도 눈이 내린단다. 이제 곧 눈이 내릴 것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보름달이 예쁘게 떴다.
저녁으로 안주인이 해 주는 도토리묵과 모둠전, 막걸리를 보름달과 셋이 먹었다.
그리고 거의 12시간 늘어지게 잤다



가져간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씩 하고 뒹굴대다 10시에 나섰다.
다시 산책하는 기분으로 마을을 내려갔다.
어제와 다르다..이제 겨울이 가을의 꼬리를 더 많이 물어버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하늘은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ㅎㅎ


  2시간 마다 오는 마을 버스가 들어왔다.

마천에서 11시 30분 지리산 고속을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해 깨어진 아이파크 유리창을 보며 우리 집으로 걸어가는 언덕길에 칼바람이 파고 든다.
이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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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3/11/19 22:29

    곶감은 제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그림이지만...ㅎ...시래기는 아...저리 주렁주렁 많이 장만해 두고 먹으면 좋겠어요. 배추를 한국식품에서 박스로 사면 그래도 시퍼런 겉잎이 그대로 있거든요. 그걸 대충 벗기고 삶아서 얼려두고 시래기로 먹어요. 어릴 땐 시래기국을 좋아라 잘 먹던 애니가 이젠 안 먹으니 국 대신 찌개처럼 그냥 자작하게 지져서 혼자 먹지요. 그래도 역시 무우청 시래기가 제일인데...^^

    • 제비 2013/11/25 21:25

      저는 곶감도 무지무지 좋아해요.
      시래기..엄청 좋아하죠..
      멸치 넣고 된장 넣고 자작자작 지져 먹으면 환상!

  2. 알퐁 2013/11/20 21:06

    아~ 저 햇살~
    쨍하게 시리게 그립네요...
    다락방에는 달빛도 저렇게 환하게 들어올 것 같네요 ^^

    • 제비 2013/11/25 21:30

      간청재에 매화, 빗소리 그리고 달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아셨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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