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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하늘빛 2013/10/22

by jebi1009 2018. 12. 25.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대표 메뉴 삼겹살...약간 쌀쌀했지만 바깥에서 고기를 구웠다.
여러 팀 저녁 준비로 안 주인은 여전히 바빴고 바깥주인도 여기 저기 바빠 보였다.
그래도 소주 한 잔씩 나누고...
생각해 보니 삼겹살 참 오랜만이네...차가운 소주가 기분을 쨍하게 만든다.
뜻밖에 낮에 만났던 둥이네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에 놀러와 차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며 놀자고 한다..
저녁 같이 먹자고 안 한 것이 좀 걸렸나보다..전혀..개의치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이미 시작했고 이리로 놀러 오라고 했다. 편하게 편하게 하시고 싶은대로....
평소 둥이네로 사람들이 놀러 오면 이 민박집으로 손님들을 많이 보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다.
깜깜한 밤에 둥이네까지 걸어가기도 자신 없고
또한 딱 보면 둥이네는 음주를 거의 안 하거나 아님 사교적 음주형이다.
그러나...우리는 생계형 음주형이다..
귀여운 초딩 아이들도 있는 둥이네에서 모범적인 둥이네 내외와 우리 스타일로 음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밤에...이 지리산에서...그럴수는 없었다. ㅎㅎ
그렇게 다시 소주잔을 부딪히는데 짜잔~~ 정견스님이 나타나셨다.
손에 까만 봉다리를 들고..
청매암에 손님들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방문은 생략했는데 그래도 마음에 걸리셔서 이렇게 밤중에 걸음을 하셨다.
까만 봉다리 안에는 사과 하나, 배 하나, 감 하나, 자몽 하나...하나씩 귀여워라..
잠깐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우리 구들방 바닥을 해 주시기로 했다. 한마디고 코 꿰신 것이다 ㅎㅎ
무명천을 깔고 옻칠을 해 탐나는 스님 방 바닥처럼 해 주시는 것이다..이게 웬 떡이냐..음하하하...
마당 정리 작은 돌담 대문...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돈이 술술 든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되는 대로...그냥 저냥....


  민박집에서 일어나 큰 숨 한 번 쉬고...아 좋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관청재에 가 보고 둥이네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바깥 주인은 11시 쯤 마천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고 안 주인은 역시 아침 준비에 얼굴도 내밀지 못한다.
우리는 아침밥 생략하고 마을길로 나섰다.

창원마을은 돌담이 예쁘고 참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정말 태양은 위대하다...이렇게 예쁜 빛을 주시다니...태양신을 숭배할 만했다.
어제 어스름 무렵과는 또 다르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반사시키듯 반짝거린다.
하늘이 너무 예쁘다.
그 밑에 그림자도 너무 예쁘다...







  겹겹의 능선이 모두 보이고 천왕봉도 환히 보인다

 


둥이네까지 가는 것은 오히려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걸어가니 갈 만하다.
이제 우리 집에서 둥이네, 청매암까지 걸어다닐만 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일도 있고 가는 길에 둥이네 전화했다. 엄마 아빠는 모두 닭장에 가셨어요....
그렇지..사람은 굶어도 닭은 먹여야지...에고....
둥이네 들렀더니 반갑게 맞아주고 맛있는 커피와 과일을 내 주셨다.
아침 늦잠을 자서 자신들은 밥도 못 먹고 아이들 밥만 챙겨주고 바로 닭장으로 갔단다.
알 줍고 먹이 배합해서 주고..
배합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먹이 배합이 힘들단단...둥이 아빠는 밥 주는 작업을 끝마치고 조금 늦게 들어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
둥이 엄마도 힘들었겠다.
내 인생에서 남편이 갑자기 사표를 내고 돈을 벌지 않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 곳에 내려오기 전 3년은 지옥 같았어요..
술 마시고 주정도 했다니까요..
그때는 세상에 무슨 대단한 결심 용기 이런 것들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고 보니 참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그냥..다르게 사는 것인데 그때는 왜 그리 힘들었는지..

이런 말들을 한다는 것은 지금 생활이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도 건강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다닐 때는 그녀를 위해 맛있는 티라미슈 케익이나 초코 브라우니를 잊지 말고 사다 줘야겠다..

둥이 아빠는 닭이 너무 힘들어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단다. 마누라가 사료 배합기까지 사줬으니 본전 뽑아야 한다지만 그것은 도저히 본전을 뽑을 수 없는 수학이란다 ㅎㅎ
그렇게 닭을 키우니 힘들지..쩝..
무엇보다 닭은 단 하루도 쉴 수 없다는 것이다..그 압박이 심한 것 같았다 ㅠㅠ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탁자에는 벌써 사과와 관련된 책들이 즐비하다.
내가 사과를 대 놓고 먹는 베드로 농장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둥이 아빠가 사과를 한다면 그 사과는 보지도 않고 무조건 예약이다 ㅎㅎ
둥이네서 놀다보니 민박집에서 전화가 왔다. 데려다 준다고..
둥이 아빠가 데려다 준다고 한다..이런 양손에 떡일세..ㅎㅎ
버스를 타고 올 때 전화하라고 한다.
'매번 오밤중에 픽업해 달라고 할 건데요?  실수하시는 거 같아요 ㅎㅎㅎ'
내가 또 깐죽거렸다.
택시 부르면 5분 거리인데도 9천원이란다...함양에서는 2만원...헉!


가을이 되니 가을걷이한 농작물을 갈무리하느라 길 가 여기저기 농작물들이 널려 있다.
요리조리 피하고 어떤 것은 그냥 타 넘어 가고(농작물 주인이 그냥 통과하라고 해서) 그리고 마천에 도착했다.
하늘빛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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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도바람 2013/10/23 08:55

    창원마을 돌담... 대한민국에서 돌담을 제일 잘 쌓는 사람이 마천사람이란 말이
    명불허전일세 그려. 쓰윽 하고 스친 풍경 속에 저런 돌담이 있었구나. 버스타고 가길
    정말 잘했네. 맨살의 창원마을을 보니, 제비네가 조금씩 마천 사람이 돼가는게 보인다.

    • 제비 2013/10/25 13:57

      버스타고 가는 것도 꽤 괜찮았어요
      너도님도 이제 휑~하니 버스 타고 내려오셔요..

  2. 먹방지기 2013/10/24 13:01

    창원마을에서 우리 시골집 거창까진 40분이면 가겠네요.
    고등학교때 마천에서 유학 온 친구도 있었는데,
    암튼 하늘길 진입로에 터 잡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 제비 2013/10/25 13:59

      거창이 집이시구나...
      거창에 새로 집 지으신 분들이 있어서 구경 갔었는데 거창도 참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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