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눈이 쏟아진다.
펑펑...쏟아진다.
옛날에는 눈이 오면 일단 튀어 나가 동네 개들처럼 좋아했는데
이제는 따뜻한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이 어둑한 날씨...나를 무너지게(?)하는 흐릿함...
아...어쩔 수 없이 와인을 땄다.
며칠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들(?)을 만났다.
1학년 13반 반창회.
열두세명 정도 참석했던 것 같다.
25년 만에 뜬금 없이 고1때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문자 한 통을 받고 나서다.
'혹시 *** 휴대폰인가요? 저는 @@@라고 합니다'
@@@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락하며 만나던 친구였다.
통화가 되어 알아보니,
그 친구는 5,6년 전에 미국으로 갔었고 2년 정도 후에 다시 돌아 온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오면 연락을 하리라 생각했고 당연히 아직 한국에 오지 않았다 생각했다.
2년 생각하고 가도 더 오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는 휴대폰을 분실했고 내 전화번호도 잃어버렸다.
'야 그렇다고 너는 어째 한 번도 전화를 안 해보냐?'
'난 니가 아직도 미국에 있다고 생각했지..'
'너도 참 어지간 하다..'
'그러게..'
그 친구는 내 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말하면서 Home comming day 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뭣이라?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홈 어쩌구도 처음 듣는 용어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졸업한지 25년이 되는 해에 Home comming day 한단다.
아이들은 밴드(난 스마트폰이 없어 잘 모르는것)를 통해 수소문을 하고 서로 꺅~꺆~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했고 그것을 계기로 카톡(역시 난 없어서 금시초문)방을 만들어 1학년 아이들이 서로 근황을 알리며 연락하게 되었단다.
아이들은 의외로 내 소식을 궁금해 했단다(왜? )
나와 유일하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 꾸준히 만나오던 그 @@@가 얼마 전 전화번호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자
어떤 친구가 인터넷을 통해 내 번호를 알아냈다. (우와~ 무서운 세상!)
내 돈 벌던 시절 연수 신청 내역에서 내 번호가 떴단다.
@@@친구는 누구 알지? 누구 누구는? 하면서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모모모 샘도 오시고 ###샘도 오시고....
순간 어머어머 맞아맞아 하면서 잠시 흥분했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거국적인 학교 행사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참가 회비 5만원이 없다는 핑계로 대충 두리뭉실 넘어갔다. ㅎㅎ
그 행사가 있은 후 아이들은 본격적인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싶어했나보다.
그래서 1학년 13반 아이들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아....나는 그 곳에서 '너 누구니?'를 뻔뻔스럽게 물어봐야만 했다.
@@@가 부연설명을 많이 해 주었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
사실 중고등학교에 20년 간의 직장생활이 짬뽕이 되었다.
중학교 때 친구인지 고등학교 때 친구인지 전 직장의 동료인지, 아님 내가 가르친 졸업생인지...
'나 누구야..'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니 점점 기억이 새록새록..
어떤 친구가 1학년 소풍 때 단체 사진을 가져와서 그 사진을 바탕으로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갔다.
1학년 때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졸업 사진에는 3학년 같은 반 아이들이 나오므로 1학년 때 아이들은
다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친구들이 내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참 생소했다.
도대체 25년 전의 나는 누구인가?
아이들이 기억하는 나는 4차원이었다.
'너하고 4차원 &&&있잖아'
'나는 &&& 잘 모르는데?'
그랬더니 '원래 4차원끼리 잘 안 친해' 이러면서 다들 웃는다.
내가 수업시간에 '진주난봉가'를 불렀으며 담임샘이 나를 이뻐해서 아이들이 나를 질투했으며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으며 '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엄청 잘 써서 담임샘이 나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담샘은 남자 국어샘이었는데 내 기억에 진실되신 분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책상에 자주 엎어져 있었으며 뭐라 부르면 눈만 껌뻑이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또 자기네가 모르는 잡다한(?) 것들을 수업시간에 말했단다..그래서 좀 똑똑해 보이기도 했다나?
내가 선생하다가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하나같이 선생 말고 더 색다른 것을 할 줄 알았다고....
뭐 아이들이 좋게 말해준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백일장 상은 몇 번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글 썼다고 칭찬 받은 기억은 없다.
그리고 학교 다니면서 특별히 샘들에게 미움 받은 것도 없지만 이쁨 받는 축도 아니었다.
대놓고 칭찬 같은 것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했다고? 진주난봉가를 말하니 내가 부른 것이 맞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알던 그 노래가 매력적이었으므로...
결정적으로 나는 꽤 모범적(?)으로 아니, 꽤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맨날 내가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니? 그리고 4차원이라니?
25년 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은 나를 계속 만나왔던 친구는 별 이상하지 않았지만
25년 만에 나를 본 친구들은 많이 놀랐다.
25년 전에는 짧은 커트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럴 만 하다. 나는 대학에 가면서 렌즈를 꼈고 머리를 길렀으며 졸업 후에는 라식수술을 했다.
모인 아이들은 그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형수술한 사람은 없다고...그래서 다 알아 보겠다고..
이름을 바꾼 친구도 있었다. 점쟁이가 바꾸라고 해서 바꿨더니 직장도 생기고 결혼도 했다고..
지금 눈이 좀 쳐져서 쌍거풀 수술을 하고 싶은데 관상이 '학'상에서 '기러기'상으로 바뀐다고 하지 말라고 했단다.ㅎㅎㅎ
저 가죽끈에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노무현' 이렇게 쓰여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것은 우리 딸이 사다 준 것이다.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버스, 검정 먼지들인 마쿠로쿠로스케, 메이가 엄마 병실 창문에 놓아 두었던 옥수수.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ㅎㅎ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25년 전의 아이들을 다시 보는 것이 새로운 사람들은 다시 만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과 그 25년 전의 기억 속에서 잠시 흥분했었지만 결코 우리는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만나면서 알아가면 나랑 통하는 친구도 만나겠지만 굳이 그렇게 다시 시작해야 할까?
오늘 담임샘과 점심 약속 잡았다며 문자가 왔다.
구식폰을 갖고 있는 나를 위해 나를 담당하는 @@@가 보내준 것이다. (내 핸드폰을 보고 반전이라며 @@@를 내 담당 매니저로 임명했다.)
그때의 담임샘은 우리가 보고 싶을까?
나도 20년 했지만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보자고 하면 난 보고 싶지 않았다.
뭐 어쨌든....
나는 너무 변했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변했고 그 변해버린 사람들이 만난다.
추억도 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관계는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가볍게 25년 전을 뒤져보는 해프닝으로 나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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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그런 시기들이 있나 봐요. 10 여년전에 고딩 총동창회를 했어요.
150 여명이 로얄호텔에 첨으로 모였더랬지요. 해마다 점점 줄었고 총동문회는 롯데호텔에서 뽀빠이를 불러다 경로잔치하듯 했어요. 저도 그뒤론 안갑니다. ㅎㅎ 얼굴도 변하고 새삼스럽게 엮이는 것도 별로고... 현재 만나고있는 인연들도 벅찬걸요. 자주 보던 매일 커피 마시던 친구들도 점점 뜸해지는걸요.
어쩌면 혼자 놀기가 더 재밌어서인지도 모르겟구요.
혼자 놀기가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 놀게 될 것 같네요 ㅎㅎ
저도 알버타에 사는 친구가 대학 동기들이 밴드를 만들어서 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와서 들어갔더랬지요. 1주일 후, 아이 패드를 업데이트 시키다가 저장하지 않은 데이타를 몽땅 날리는 바람에 바로 없어졌지만...ㅎ...그러고는 다시 안해요. 대학 동기라는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친구들과도 그냥 인사하고 나니 별로 할 말도, 할 것도...솔직히 한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하듯이는 안 해봐서도 못하겠더군요. 몹시 번거롭고 성가시기만한...미안한 말이지만. 시시콜콜 뭐하러 저런 걸 하지? 하는...저랑은 별로 안 맞다는 결론. ^^
저랑도 별로 안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기억도 안 나는 친구한테서라도 연락이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무던(?)한 하루하루네요....
그럼 제가 알퐁님께 친구인 척 연락 한 번 해야겠네요 ㅎㅎㅎ
어머어머..나 모르니? 이러면서 말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