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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우리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2013/12/24

by jebi1009 2018. 12. 26.


       



스님과 헤어져 우리는 간청재로 향했다.
간청재 올라가는 길도 걱정이었다. 길이 좋지 않으면 마을회관에 차를 세우고 걸어갈 참이었다.
일단 마을 길은 날씨도 많이 춥지 않아 다닐 수 있게 눈은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마을에서 이백미터 정도 떨어진 외딴 곳이라 그 오르막길은 장담할 수 없었다.
마을 끝인 재실까지는 올라갔고 거기서 용가리가 내려 길을 살폈다.
누군가 눈을 치워 놓았다는 것이다.
누굴까? 마을에 제설차 같은 것이 있어 치우는 김에 길 끝나는 곳까지 쭉 밀었남?
다행히 차를 몰고 간청재까지 갈 수 있었다.

집안을 살피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장시간 고생했건만 나무가 젖은터라 종이만 타고 나무에 불이 잘 옮겨 붙지 않았다.
오늘은 아쉽지만 구들방은 포기하고 보일러 가동 안방에서 보내기로 하고 이불을 깔았다.
백장암 스님께 전화가 왔다.
길도 좋지 않고 집은 춥지 않은지 걱정이 되셨나보다.
누군가 길을 치워 놓아서 차를 타고 무사히 왔다고 하니
' 너희 마을에 그렇게 착한 사람이 누구냐...'하신다.
해가 넘어가니 금방 어두워진다. 절대 어둠. 절대 고요. 난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아침 눈을 뜨니 안방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는 지리산이 보인다.
이불 속에서 눈 뜨고 첫 인사를 지리산과 눈맞춤으로 시작한다.
털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가 뽀득뽀득 눈을 밟는다.
마당에는 하얀 눈....이제 해가 뜨면 사라질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사과를 먹고 관정 펌프를 뽁뽁이 비닐로 싸기 위해 나갔다.
뒹굴대고 놀 때는 서로 친하다가 일 같지도 않은 일 하려니 서로 손발이 안 맞는다며 싸운다..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처음 눈에 들어온 모습... 손을 더듬어 카메라를 찾아 처음 눈 뜬 자세 그대로 눌렀다.



정견스님이 오셨다.
어제 연관스님이 말씀하시던 우리 마을 그렇게 착한 사람...우리 길 눈 치워주신 분이 바로 정견스님이셨다.
청매암 눈 치우시면서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치워주셨단다.
우리가 한 번 쯤 올 것을 생각하시고 얼어 붙을까봐 치워주신 것이다.
창원마을 수호천사 정견스님...정말 심장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며칠 전 해인사 가셨는데 우리 주려고 차탁을 해 오셨다.
우리에게는 너무 넘치는 선물이다. 이렇게 매번 받기만 하니 어쩌나...

  저기다 차만 마셔야 할까? 나는 저기다 술도 먹고 밥도 먹고 싶은데...




오후에는 산내철물점으로 쇼핑갔다.
정견스님께서 강추하신 쇼핑몰이다.
산내초등학교 옆에 있는 곳인데 굉장히 넓고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곳이다.
용가리는 엄청 신나하며  바로 이런 곳이 남자들이 오면 환장하며 좋아하는 곳이란다....나는 글쎄...

  연관스님 강추로 산 장화. 정말 짱이다.

  아이젠 따윈 필요 없다~~



삽 주세요
저 문 열고 나가서 골라 오세요.
톱은 어디 있어요?
두번째 줄로 들어가셔서 왼쪽 보시면 있어요

주인 같지 않은 주인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지시한다.
여기 셀프인가봐....
삽, 집게, 도끼, 톱, 빗자루, 장화, 장갑을 샀다.
계산하려니
이런거 처음 사 보시죠?
네...
우리는 다짐했다.
단시일 내에 초짜티를 벗어버리자고...최단시일 내에 원주민 씽크로율 100퍼센트에 도전하자고..

돌아와 아궁이 불피우기에 재도전했다.
날이 맑아 나무에 불이 잘 붙었다. 어제보다 짧은 시간 내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너무 신나게 홀랑 태워버렸다.
처음 불이 붙으면 은근히 불을 지펴야 하는데 펜(? 연기 빼는 것)을 계속 돌려 불만 확 타고 방바닥은 따뜻하지 않았다. 다시 나무를 넣고 펜을 끄고 놔두었다. 처음에는 방바닥이 신통치 않더니 밤이 되니 절절 끓는다.
오늘은 구들방에서 절대 어둠을 맞는다. 밖에는 별이 미친 듯이...정말 미친 듯이 빛난다.

너무도 예쁜 소주...춘향이와 이도령...소주병에 적힌 작은 글씨는 술잔을 절로 기울게 한다.

좋이 있거라 좋이 다녀오마
간들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잠 깨어 곁에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간다고 설워마오, 보내는 내 마음도 있소
산첩첩 수중중한데 부디 평안히 가오
가다가 긴 한숨 나거든 난 줄 아오

도련님이 이제 가면 언제나 오려시오?
절로 죽은 고목에 꽃 피거든 오려시오?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땅땅 치고 꼬끼오 울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에 물 밀어 배 둥둥 뜨거든 오려시오?


아침....마당에 눈은 사라졌다.
눈처럼 시린 하늘이 쨍하다.

한쪽에는 해가 뜨고
  다른 쪽에는 달이 떴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완성되었다.

  저 작은 문으로 올라오면 작은 서재...


  말썽 부리던 욕조도 들어갔다.

현관? 다용도실? 어쨌든 문과 자물쇠가 달렸다.

  창고 문도 완성되고...

너를 두고 가니 가다가 한숨 나면 너인줄 알겠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정리하면서 가기 싫다는 말을 각자 열번씩도 더 했다.
설산으로 변한 지리산과 손바닥에 파란 물이 묻어날 것 같은 하늘과 하얗게 반짝이는 마당..
그리고 심장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
우리는 전생에 정말 나라라도 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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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도바람 2013/12/26 10:04

    너들 두고 가니 가다가 한숨 나면 너인줄 알겠다...

    우찌 올라오셨소? 아침 노을이 저리 활활 타는 풍경은 저 곳 뿐인것 같소.

    • 제비 2013/12/28 17:40

      함께 아침 노을을...

  2. 무명씨 2013/12/26 18:37

    나라를 구하신거이 아니라 인류를 구하셨을겁니다.
    그러니 저리도 아름다운 풍광을 누리시는 영광을 보는겁니다.
    그저 곁눈질만 해도 저리 좋을진데.......
    지더라도 마음껏 부러워합니다.

    • 제비 2013/12/28 17:41

      이생에서 어찌해야 이 복을 다 갚을까요 ㅎㅎㅎ

  3. chippy 2013/12/30 00:37

    이제 조금씩 집안도 채워나가네요. ㅎ...하루 아침에 번쩍하고 되는 일은 없는 듯해요. 이곳 사람들 중에는 땅을 사서 제 집을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손 재주도 있고, 시간과 돈도 있으니 하는 일이겠지만, 저희는 조금 부럽긴 해도 시도조차 못할 일이라 아예 꿈도 안 꿉니다만...ㅎ, 고단하고 번거롭긴해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즐기더군요. 만들어 간다는 것, 채워가며 완성을 기대하는 것, 과정의 의미를 실감하기엔 그 보다 좋은 것은 없긴 할겁니다.
    복을 짓는 것 만큼 즐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마음껏 누리시길요. ^^

    • 제비 2014/01/06 17:46

      맞아요..하루 아침에 번쩍 되는 일도 없고 또 계획 대로 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인생은 얻어 걸린 일들이 훨씬 더 많은 듯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