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벌써 피었다 바스라져버린 매화가지가 간청재 방 안에서는 이제 꽃망울이 조금씩 벌어진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집이 얼마나 건조하고 얼마나 실내 온도가 높은지 알 만하다...
토요일 아침 6시 출발. 10시 전에 도착한다.
차가 들어서는데 무언가 달라졌다.
어? 저기 못 보던 나무가...부목까지 단단히 매어 놓았다.. 누굴까..
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간단히 쓸고 닦고 윈드차임 내다 걸고...
스님께 전화드리니 일이 있으셔서 먼길 가셔야 한다고...
잠시 가서 인사만 드리고 오려니 스님과 손님께 대접한다고 항우아저씨가 정성껏 마련해 놓은 밥상에
염치 없이 끼어 앉아 황송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갓지은 밥에 된장찌개, 김치...이것이면 모든 것이 일당 백이다.
돌아오는 길에 산내철물점에 들러 호스를 샀다.
매화나무를 심어 놓으신 분이 바로 스님이셨다. 그런데 집에 아무것도 없어 나무에 물 주기가 힘드셨다고..
그래서 호스를 샀는데 40미터..잘라야 하나 그냥 길게 써야 하나...
호스를 사고 요즘 먹기 힘들었던 유림 두부집에 어렵게 따 놓은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한다.
두부 있어요?
지금 했어요..
이게 웬 횡재냐!!
두부집 할머니가 아프셔서 두부를 잘 하지 못했고
또 그 두부집이 하루에 한 번밖에 만들지 않아 운이 좋아야 먹을 수 있다.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먹다가 우리도 가져가고...푸집하게 열모나 샀다..누가? 통 큰 너도님이..
두부는 따뜻했다.
맛난 밥 대접 받고 와서 배도 부르지만 이 따뜻한 두부를 보고 그냥 있는 것은
두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오는 길에 막걸리와 맥주를 샀다.
서울에서 가져간 김치에 따뜻한 두부를 싸서 막걸리에...크.......
낮술은 모든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물론 지나치면 애미애비도 못 알아 보지만 ㅎㅎ
따뜻한 햇살 속에서 갓 만든 두부에 막걸리...배는 부르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새벽부터 서둘렀더니 잠이 솔솔...세상 바쁜 일 없으니 용가리가 오자마자 불을 넣은 구들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아궁이 불 지피는 방법을 터득한 용가리는 득의양양하게 불을 지핀다 ㅎㅎ
사실 이 방은 골방(?) 같은 의미로 혼자 사색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만든 것인데, 즉 주 활동무대가 아닌 곳으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이 곳이 주 활동무대가 되었다.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다.
저녁에는 이웃골짜기 스님이 양손에 선물, 과일과 대추를 가지고 오셔서
너도님의 특제 김치우동으로 저녁을 함께 하시고 돌아가셨다.
우리는 낮술이 깨기 전에 밤술을 먹어야 하므로 ㅋㅋ 술 한 잔에 이야기 한 대접...
세상에 자기집 식구들 욕도 맘대로 하며 서로 쪽팔린 이야기도 맘대로 하는 이 집단(?)은 정말 복받은 사이라 생각된다.
난 밤 새며 자지 않을 거라고 앙탈을 부리다 결국 구들방으로 들어가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바람소리가 들린다. 윈드차임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잠결에 심하게 연주되는 윈드차임 소리는 아리랑 소리는 아닐지라도 타령조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
결국 아침에 윈드차임을 내렸다.
아침에 창을 여니 눈이 내렸다.
어제 볕 좋은 툇마루에 앉는다고 마루도 열심히 닦아 놨는데 눈이 쌓였다 ㅠㅠ
바람은 불고 햇님은 숨어버리고 지리산 봉우리도 보이질 않는다.
어제 산 맛있는 두부 들고 우리집 뒤쪽 둘레길 따라 둥이네 가져다 주고 오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집 안에서 꼼짝을 하기가 싫다.
이런 날은 그냥 낮술이나 마시며 뒹굴대기 딱 좋다.
꼼지락거리지 않으니 배도 고프지 않다. 그래서 어제 사 온 호스를 정리하러 나갔다.
어제 두부에 낮술 한 잔하고 용가리는 새로 사 온 호스를 써 보고 싶어했다.
마당 수도에 호스 꽂아 물 뿌려 보는 로망(?)을 가진 용가리.
술 마시고 혼자 나가 결국은 로망을 달성했다.
그러나 40미터나 되는 호스에 물이 차자 너무 무거워서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혼자 감당을 못하고 낑낑대다 정리하지 못하고 놔뒀던 것이다.
우리는 나가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호스를 정리했다. 생각보다 힘들고 무거웠다.
결론은 이 호스는 잘라야 쓸 수 있다. 아까워하지 말고 자르자.
셋이서 낑낑대며 찬 바람 맞아가며 정리한 40미터 호스
호스 정리도 일이라고 흔적을 남겼다. 이렇게 보니 대단한 노동의 흔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ㅎㅎㅎ
나가서 꼼지락거리니 이제 무언가 먹어야지...
어제 사 온 두부를 이제는 후라이팬에 구워먹었다.
두부만 먹을 수는 없지...경주법주를 따끈하게 데웠다.
그렇게 먹고 또 구들방으로 ㅎㅎ
사실 오늘은 저 뒷산으로 걷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랬지만 날씨가 자꾸 방으로 들어가란다.
날씨가 자꾸 술을 권한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이제 슬슬 이별(?)을 준비할 시간.
너도님은 일요일 저녁 6시 막차를 타고 가신다.
마천 버스정류장까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태워 보냈다.
돌아오며 용가리가 그런다.
괜히 허전하고 서운하다...우리 여기서 살면 맨날 그렇겠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남고 누군가를 먼저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로 첫경험...
그래..이제 여기서 살게 되면 누군가 와서 머물다 가면 이렇게 헤어지겠지..
누워 뒹굴거리다 뒷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예뻐서 누운 그 자세로....
다음 날은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햇살이 눈부시다.
그렇다면 돌도 좀 나르고 아궁이 주변 정리도 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 러. 나. 햇살이 좋아 마루끝에 앉아 히히덕거리고 있다.
그냥 다음에 하자....
날이 좋으면 좋다고 아무것도 안해..날이 궂으면 궂다고 안 해...
딱 굶어죽기 좋은 게으름뱅이들이다..
결국은 또 그렇게 뒹굴거리며 놀다가 간청재의 구들방과 파란 하늘과 천왕봉을 뒤로 하고 올라왔다.
다음에는 꼭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지...다짐하면서.
초딩 때 꼭 쓰지 않는가..일기나 독후감 글짓기 따위 말미에..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님 '매사에 노력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시절 그런 다짐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비훌륭한 농땡이가 되어버렸는가...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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